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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혜 Sep 19. 2023

25-35 인생 치트키 보고서 by INTJ

시작하는 글

학창 시절이 참 힘들었다. 어릴 때는 집에서 가족끼리만 있으니 느끼지 못했는데, 또래가 모여있는 집단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사회성'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 왕따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선생님이 조별로 잡지 등을 오려 종이에 붙여 방을 꾸미라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 의논한 걸 보니 그게 아닌 거 같아서 말해봤지만 친구가 많은 한 아이의 주장대로 진행됐고 당시 쓸데없이 고집 있던 나는 혼자 다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하필 선생님이 잘 된 예시로 내 걸 들어 보이며 칭찬해 주셨다. 이후 아이들은 조별 발표에 나를 잘 껴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축구를 하는데 상대편 남자애가 드리블할 때 운동을 좋아하던 나는 열심히 마크해 공을 빼앗았다. 그래서 그 남자애를 좋아하던 똑 부러지고 예쁘던 반장이 울고 다른 애들이 그 애를 위로하며 내가 남자에게 꼬리를 친다는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자발적 아싸였지만 비자발적 아싸로도 진화하게 되었다.


이후 여중여고에서도 그런 비슷한 일들의 반복이었다. 중학생 때는 청소하는데 멀리서 짝이 울면서 뛰쳐나가길래 쫓아가서 무슨 일 있냐고 계속 물어봤다가 다음날부터 그 애의 주도하에 다들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다른 애가 와서 귀띔해 주길 그냥 기분이 안 좋았는데 눈치껏 혼자 둬야지 쫓아와서 물어본 게 기분 나빴기 때문이었다고.


고등학생 때는 매년 있는 체육대회를 앞두고 핸드볼 반 선수를 뽑기 위한 연습 경기가 있었는데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내가 골을 넣었다. 체육선생님이 반 선수를 몇몇 뽑고 나에게는 골대 앞에 있다가 패스를 받아 골을 넣은 역할을 하라며 따로 골 넣는 연습을 시켜주셨다. 이후 뽑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연습하여 경기는 팀 워크가 중요한 것 같다며 나를 후보 선수로 바꿨다고 통보했다.


이런 일을 무수히 겪으며 나는 깨달았다. 아주 아주 특출 나지 않은 이상 혼자인 건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나를 쉽게 대했던 건 내가 작게라도 무리 안에 속해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저 사회에서 내 자리를 지켜내고 올바른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는 걸 알게 되었다. 불합리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양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구성한 사회의 특징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위에 친구들이 생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나처럼 사회성을 학습해야 하는 부류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항상 '나는 뭔가 모자란 사람인가'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최근 MBTI가 유행하면서 '아 나는 그냥 이렇게 분류되는 사람이고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더 있구나' 알게 되었다. 나는 흔한 INTJ였을 뿐이고 분명 세상에는 나같이 사회화를 조용하지만 필사적으로 학습하여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동지가 있을 거란 생각에 큰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결심한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일정한 패턴을 찾고, 일상에 적용하고, 실수를 피드백해 가며 이윽고 무난하고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사회생활을 영위해나가게 되었다.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회사 생활을 거쳐 2만 명이 넘는 블로그와 여러 톡방을 운영하며 책 내고 강의하는 모습에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그 시기에 아쉬웠던 건 가이드가 없다는 점이었다. 자존심에 부모님께는 묻지 못하고(그리고 대체로 부모님도 자녀와 비슷한 성향과 고민을 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밥 먹는 법'같은 책이나 강의가 없는 것처럼 이런 분야를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딱히 없었다. 이게 맞나 아닌가 불안해하며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내고 나니 한 명 정도는 기록을 남겨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올해로 마흔이 되었다. 지금 나와 내 주변 4~50대들을 둘러보니 25세부터 35세 사이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뭘 하든 용납되는 학생시절과 다르고, 잘 고쳐지지 않는 36세 이후와도 다르다. 25세~35세 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겪으며 하나둘 정립되는 나의 가치관과 습관들이 36세 이후에 첫 열매를 가져다준다.


36세 이후부터는 그 열매를 먹고 다시 씨앗을 심으며 첫 10년 사이클의 변주곡을 연주한다. 무의식적으로 첫 10년을 기준으로 효과가 좋았던 건 강화하고 아닌 건 수정해 가면서. 주어지는 환경은 계속 변하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형성 되었기에 인생의 결이 크게 변하는 일 드물다.


이렇게 중요한 25-35 시기에, 누군가에게 내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사회 보호색을 띄고 인생 꿀 빠는 소소한 '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앞으로 맥주 한 캔과 함께 하나씩 썰을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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