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압기 #마사지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왼쪽 목덜미가 아팠다. 시선을 돌릴때마다 목을 고정한채 허리를 틀어서 확인했다. 좌우로 목을 돌리고 뒤로 제껴 운동을 해봐도 나아지지 않았다. 잠이 들면 통증이 심해 깨곤 했다. 그렇게 2주를 방치했다. 젊어서는 어디가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을 갔다. 나이들어 경험이 쌓이다 보니 그냥 방임을 하면 저절로 낫곤 했다.
교회 수련회 날짜가 다가왔다. 물놀이 해야 하는데 목이 아파서 어쩌지. 그제야 병원 갈 결심이 섰다. 재활의학과를 갈까, 한의원을 갈까. 아니야 요가를 해서 유연성을 키울까 춤을 배울까 태권도를 할까 고전무영을 할까. 목이 아픈데 왜 배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동네 친구 말이 자기는 카이로프로텍을 해서 목 아픈걸 해결했다며 침을 튀며 효과본 얘기를 했다.
지인들은 목이 아픈것은 자세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턱을 내리고 허리를 펴고 걸으라고 했다. 왜 목이 아프기 시작했을까? 더운 여름 사주명리 책을 보느라 과도하게 앉아 있고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모니터를 봐서 그런것 같았다. 결국 동네에서 시경 고전 수업을 이끄는 한의사를 찾아갔다. 은은한 살구색톤의 한의원답게 약 냄새가 베어 있었다. 원장실에 들어서는 나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저 좀 살려주세요' 했다.
커튼으로 가려진 진료실 침대에 오른쪽으로 돌아 누우라고 하더니 왼쪽팔을 진맥했다. 곧바로 등 뒤를 제껴 볼펜처럼 생긴 스프링 사혈침으로 사정없이 표피에 찌르고 압력기로 피를 뽑았다. 눈으로 안보였지만 그런것 같았다.
농담을 한 건데 몸가짐이 조심스러운 그분은 놀란 토끼눈을 뜨며 그건 아니라고 하셨다. 평소 나를 관찰하며 얼굴에 '화기'가 많으니 쌀밥 대신 보리밥을 권했었다. 그분의 진단은 내가 긴장도가 높고 깜짝깜짝 잘 놀란다는 것이다. 변비도 있냐고 물었다.
놀람은 일상 생활이 불편하다. 산책중에 발목 위치에 시커먼 솜뭉텅이 같은 강아지가 다가오면 괴생명체인줄 알고 과도하게 놀란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형체에 놀라 위험 물체가 아닌 것을 알고 안도한다. 남편이 운전할 때면 앞차와 부딪힐 것 같아 놀라 소리를 지른다.
의사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것 더욱 그런 것 같았다. 그는 왼쪽 손등 위 10cm 위를 사혈해 피를 뽑았다. 왼쪽 목덜미 아래도 사혈을 했다. 양쪽 발목 뒤 다섯개씩 침을 놨다. 약침도 놨다. 왼쪽 배꼽 어딘가를 눌렀는데 아파서 자지러졌다. 그날은 당장 효과가 없었다. 집에 와서 3시간을 까무라치게 잠이 들었다. 약이 왼쪽 몸체부터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틀을 더 가서 침을 맞았다. 좌우로 목을 돌리는 것은 금새 부드러워졌다. 대각선으로 고개를 제낄때는 아파서 차도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침을 맞고 싶었는데 '금방 나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목인데 그분은 체질에 역점을 뒀다. 환자는 당장의 통증인데 의사는 체질 치료니 손발이 안 맞았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는데 친구들은 병원을 가라, 다른 한의원이 있는데 거기를 가라, 어디가서 대침을 맞아라 등 다양한 처방을 내렸다.
집에 와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는데 손 지압볼이 눈에 띄었다. 그걸 연신 주무르고 만족이 안돼 지압기 쇼핑이 시작됐다. 목덜미, 손바닥, 귓볼, 수지침 효과가 있다는 지압기를 샀다. 선배 김미영에게도 은동 괄사 마사지기를 선물로 보냈다. 유방암 투병후 건강을 되찾은 선배에게도 황동 손집압기를 선물했다. 어느새 책상 위는 필기구 대신 지압기와 안마 도구가 놓였다.
가방에도 작은 손 지압기를 넣고 다녔다. '반려 지압기'라며 지인들에게 보여줬다. 며칠동안 호들갑을 떨며 들여 놓은 지압기 구입비가 이십만원 가까이 됐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어느새 '목덜미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유난 떠는 동안 어느새 떠나버린 목덜미 통증이 좀 아쉬웠다. 나는 아픈데 의사는 별 것 아니라는 듯한 반응에 실력이 없나 의심도 했다. 1주일 침 맞을 각오로 갔는데 세 번만에 오지 말라고 하니 말이다. 정서적 충족을 위해 충동구매 사고를 치는 동안 목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