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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Jul 13. 2019

짝사랑에 무너진 그대에게

읽어도 된다. 당신을 일으키려고 쓴 글이다

이 제목을 보고 들어왔다면, 혹시? (야 너두?)




낯선 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동지를 만나게 되어 반갑다. 다행히도 우리는 세상속에 혼자가 아니었다. 길거리에 널린 게 커플이다만 분명 우리같은 짝사랑러들도 많을 줄로 믿는다. 동지애를 느끼며 위로받고, 파이팅을 다지는 의미로 이 글을 쓴다.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길 바라면서.




이야기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 간략한 자기소개를 하겠다. 나는 서른 살, 모태솔로다. 대학교 교양수업 첫 날, 옆자리에 앉은 조그만 여학생의 예쁜 미소에 첫눈에 반해 6년 넘게 짝사랑 중이다. 남중-남고-군대-공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지도 않았다. 공학-공학-군대-인사대의 비주류 코스로 여기까지 왔다. 학사장교가 투스타 된 격이다. 이 정도면, 이 바닥에서 고스펙이다.




모태솔로라고 무시하지 말자. 한 여자만 진중하게 오래 사귄 놈이나, 이여자 저여자 다 만나고 다닌 놈이나, 혼자 짝사랑에 빠진 놈이나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결국 답은 하나로 통한다. 답은 마지막에 공개한다.



짝사랑의 증상



아침에 눈 뜨는 순간 그 아이가 생각난다. 주고받은 카톡을 읽고 읽고 또 읽어 내용을 암기하고 있다. 하릴없이 사진을 들여다본다. 이쁘다. 이쁘다. 미치게 이쁘다. 수지, 아이린이 이쁜 건 알겠지만 이 아이에는 약간 못 미친다. 내가 미친다. (카톡을 하나 보내 보자!) 그 아이가 했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기억한다. 그게 무슨 뜻일까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궁금하다. 머릿속으론 이미 내 여자친구다. 같이 먹고싶은 거, 가고싶은 거, 하고싶은 거 다 정해져 있다. 생각만 해도 신난다. 신난 김에 구체적으로 인터넷에서 찾아본다. 이 근처에 뭐가 맛있을까.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할인하는 곳 없나? 근데 그 아이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갑자기 슬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신났었는데 한순간에 기분이 나쁘다. 친구가 PC방 가자고 한다.(보낸 카톡은 아직도 읽지 않았다) 싫다 집에 갈란다. 오늘 저녁밥은 제낀다. 배가 고픈지도, 뭐가 먹고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심장에 호스를 꽂고 차가운 감촉의 액체가 줄줄 새는 느낌이 든다. 잠이 안온다. 그 아이는 지금 뭐할까? 예쁜 미소가 떠오른다. 그 미소로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을 그 아이의 모습이 상상된다. 해야 할 일도, 다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시간낭비다. 아깝다. 싶으면서도. 방법이 없다. 사진이나 한번 더 보자. 이쁘다.


답장은.. 언제?


위와 같은, 혹은 유사한 증상이 지속된다면 당신은 짝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짝사랑의 위험성



짝사랑은 위험하다. 이불 밖은 다 위험하지만, 이건 특히 더하다. 짝사랑의 양상이 심화될수록, 자기 파괴적 성향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내까짓 게 무슨' 이다.




너무나 완벽하고 매력 넘치는 그 아이에 비해, 나는 한없이 초라하다. 그 아이 주변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잘 웃고 이야기도 잘 하고 멋져 보인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어쩌다 말이라도 한 번 할 기회가 생겨도, 어버버 저버버 똑바로 말도 하지 못한다. 그 아이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한심하다.




똑같은 사람일 뿐인 그 아이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그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원망한다. 이것이 짝사랑의 가장 큰 위험이다.




대개 사람은 자신감 넘치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물론 외모도 중요하다. 공부나 돈이 아니더라도, 작은 것이라도 자기 계발을 통해서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해야 하는데 짝사랑의 구렁텅이에 빠진 가련한 중생들은 그것을 알든 모르든, 자기비하의 악순환에 빠져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내가 해서 되겠어? 10CM의 ‘스토커’, The nuts의 ‘사랑의 바보’같은 노래 들으면서 혼자 의미 모를 미소 짓지 말자. 그거 하나도 안 멋있다.



소라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조보아 씨를 예로 들어 보자. 내가 정말 진심으로, 정말정말X100 진심으로 조보아 씨를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그녀와 사귀게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기회를 좀 조보아라

사람을 볼 때 고려할 사항이 많다. 외모, 경제력, 성격 등. 보통 외모가 예선전, 나머지가 본선이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진심'은 어디쯤 있는 것일까? 외모처럼 보는 순간 바로 알게 되는 게 아니니까 '예선'에 속하지 않는다는 건 알겠다. 불행하게도, 내가 얼마나 그녀에게 진심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서울대학교에서 한 명을 특별입학 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두 명의 학생이 찾아왔다. 한 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이 얼마나 진심으로 서울대에 합격하고 싶은지 이야기한다. 나머지 한 명은, 말 한마디 없이 만점짜리 수능 성적표, 어학 성적표, 각종 수상경력을 담은 종이를 내민다. 더 볼 것도 없겠다.




진심으로 서울대에 합격하고 싶었던 학생은 좌절한다. 내 진심도 몰라주고, 겉치레에 불과한 저런 것들에 속다니. 근데, 과연 그런가? 말로만 진심을 부르짖은 A보다, 어쩌면 말없이 공부해서 만점 성적표를 가져온 B가 더 진심으로 서울대에 입학하고 싶었던 거 아닌가? 진심을 말에 담느냐, 결과로 가져오느냐의 차이다.



그러니, 진심을 담자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복수가 돌아왔다]의 한 장면이다.




"손수정, 나랑 데이트 할래?"



"난 멍청이는 안 만나"



"..."



그럼, 국어성적 한번 올려보든가


기대할게, 국어성적


교복과 학생이 나오는 드라마에서 반드시 나오는 필수 클리셰다. 이후의 장면은 안 봐도 뻔하다. 경쾌한 배경음악과 함께 생전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주인공 강복수(유승호)의 학구열이 불탄다.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집에서도.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조카가 깜짝 놀라 엄마에게 달려간다.




"엄마, 삼촌 이상해! 공부해!"




시청자들은 뻔하디 뻔한 이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왜 그럴까? 가장 순수한 동기부여, 가장 강력한 원동력인 '좋아하는 그 아이를 위한 무언가'에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공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와 잘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고, 이 힘은 그 사랑이 '진심'일 때에만 발휘된다.



당신은 그 아이와 잘 될 수 있다




헛된 희망고문을 하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짝사랑의 감정은 방치해 두면 스멀스멀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를 억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주문이다. 나는 그 아이와 잘 될 수 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 아이도 당신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자신감' , '자존감'이다. 기대했던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서 실망했는가?




이 자신감을 되살리기 위한 레이스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가장 강력한 원동력인 '진심'이다. 강복수가 손수정과의 데이트를 위해 하루종일 공부에 빠지는 그 순수한 열정. 우리는 이 진심을 활용해 나를 무너뜨리려는 간교한 목소리를 전복시키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당신이 미래에, 그 아이와 만나게 될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작은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하고 있는 것이 공부라면, 공부를 열심히 하자. 영어공부도 해보자. 외모를 가꾸는 것도 자신감 회복에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고 감각 있는 친구와 예쁜 옷을 사러 가자. 아, 머리를 바꿔보는 건 어떤가? 당신이 가장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를 100점이라고 할 때, 당신은 지금 몇 점까지 와 있는가?



당신을 일으킬 이야기



시를 한 편 소개한다


[상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 받는것보다 행복하다는 진실을 깨닫게 될 때, 당신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짝사랑을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 문장은 가슴에 극딜이 박힐 수도 있으니 이 문단은 손가락으로 가리고 넘어가자. 당신은 그 아이를 좋아하니까, 바라만 보아도 생각만 해도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당신에게 별 감정이 없으니, 당신으로 인해 행복할 일도 불행할 일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한 사실임에 틀림없다 (물론 서로 좋아하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느낌을 모른다. 단지 추정할 뿐이다.)


이제부터 봐도 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랑’이라 함은, 단순히 연인 사이가 되었다거나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조금 더 큰 의미다. 지금 사귀고 있거나, 결혼을 한 부부 사이라면 진정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데이트 폭력’이니, ‘이혼’이니 하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런 관습적인 것 보다 한 단계 너머를 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순위를 매겨 보겠다.




1.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연애)한 경우

2.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결혼(연애)하지 못한 경우

3.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결혼(연애)한 경우

4.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결혼(연애)도 하지 못한 경우




내가 진정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자체로 우리는 행복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결혼했거나 연애중인 사람들과도 한두 잔 술을 먹고 이야기하다 보면, 이 사람을 만나고는 있지만 그렇게 막 좋아 죽겠고 마냥 행복하고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나는 몇몇 보았다. 오히려 한 사람을 그렇게 깊이 좋아할 수 있다는 내가 부럽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돌려까기인가?). 무작정 덮어놓고 커플들을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커플들이 정신승리 하냐고 비웃어도 우린 우리 갈 길을 가자. 우린 2순위다




그러니 힘 내자



눈물을 줄줄 흘리는 '마음만 서울대생'이 되지 말자. 말없이 성적표로 모든 걸 증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이 당신 스스로 완벽히 준비되었다고 느낄 때, 그 아이는 당신을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자. 당신은 이전처럼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은 나에게 달린 것 아니겠는가.




당신은 당신 의지대로 눈을 깜박일 수 있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심장을 잠시 멈춰 세울 수 있나? 심장은 당신 뱃속에 든 당신의 장기이지만, 당신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당신은 지금 그냥 드러누워 잘지, 내일 볼 시험에 대비해 조금 더 공부를 할지 당신 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는 당신 생각에 달렸다 (짬짜면은 남자답지 못하다. 확실히 하나를 고르자).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이끌리는 마음은 당신의 의지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이 아이를 좋아해야지, 이 아이를 좋아하지 말아야지’라고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니, ‘짝사랑 잊는 법’, ‘짝사랑 끝내는 법’ 따위나 검색하면서, 어떻게 그 아이를 내 마음속에서 내려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지 말자.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베르테르는 권총을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 마음을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 돛대 부러진 통통배처럼 표류할 것인지, 강력한 원동력으로 삼아 항공모함을 건조해 깃발을 높이 달고 항해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뿐이다.




수년의 시간을 허비하고 최근에야 정신을 차린 내가 공개한 노하우치고는, 써놓고 보니 특별한 건 없다. 요약해보자. 양 날의 칼인 짝사랑의 마음을 추진력으로 쓸지, 자기를 파괴하는 데 쓸 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다. 그러니, 힘 내자 제군들. 참고로 마지막에 알려주겠다고 했던 답은 ‘결국 진심이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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