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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호 Jul 09. 2019

일본과 정면승부, 승산은?

있을까?

격투기 시합을 보면 체급이라는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체급이 높을수록 때리는 힘에서도, 맷집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나 극복하기 힘들다. ‘체급이 깡패’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한번 생각해 보자. 체급이 높은 상대와 싸워 이기는 방법이 있다. 총으로 쏘면 된다. 확실하다. 아니면 듬직한 친구들을 여럿 불러 수적 우위로 밟아버릴 수도 있겠다. 그리고 실제 세상의 룰은 격투기 시합보다는 이런 무법천지 뒷골목의 그것과 유사하다.




물론 일본 얘기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관한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뉴스에서 지겹도록 나오고 있으니 생략한다. 위에서 예로 든 체급은 인구수, 영토의 크기, 경제력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총은 군사력, 듬직한 친구들은 우방국 정도로 바꿔 볼 수 있겠다. 일본과 정면승부, 우리에게 승산이 있나?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최정상 수준이고 인구도 우리보다 월등히 앞선다. 해상자위대의 전력도 우리 해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그나마 믿어볼 만한 우리의 동맹국 미국은, 우리 편을 들기는커녕 중재조차도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한국의 한-미-일 3자 구도 복귀를 위해 미-일이 공조해 이번 보복을 기획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에, 미국의 묵인은 당연해 보인다. 심지어 국제사회를 움직여 여론전이라도 해 볼 만한 확실한 논리, 명분조차도 없다. 축구 한-일전은 객관적 전력에서 불리해도 투혼을 발휘해 볼 여지가 있지만 이번 국가 간의 정면승부에 우리 측 승산은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질 정도다. WTO에 제소하겠다고 한다. 제소를 통해 이기고 지고를 떠나, 당장 닥친 문제에 너무 한가한 대책 아닌가. 수입 금지 품목에 대해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품 자체 개발을 하겠다고 한다. 급하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근본적 대책도 아니다. 까짓 거 대체품을 찾고 말지, 일본과의 관계는 계속 이대로 두겠다는 것인가. 설마 하니 그렇게 넘겼다고 해도 일본이 또 걸고 들어올 것이 정녕 없겠는가? 10일에 문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한다고 한다. 대기업들을 그렇게 적폐로 몰고 법인세 올리고 압수 수색하고 뚜드려 패더니 만나자고 한다. 정부 대 정부 사이에서 일어난 외교 이슈를 정치로 풀 생각은 않고, 대책 마련하느라 바쁘디 바쁠 기업 총수들은 왜 또 부르는가.




국민들의 반응을 보자니 첩첩산중이다. 일본 불매 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일본 여행 안 가고, 일본 제품 안 사겠다 한다. 우리 제품 생산 중단으로 일본 완성품 업체에도 피해가 간다고 하니, 일본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정말 가슴 아프게도, 본때 보여주기 힘들 것이다. 일본과 우리의 경제력 차이로 미루어 볼 때, 서로 죽자고 출혈경쟁을 벌이면 누가 먼저 쓰러지겠는가?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이번 일로 인해 일어나는 기업의 손해 정부 세금으로 메꿀 작정으로 붙으면 체급이 약한 우리의 패배는 자명하다. 그러니 제발, 별 효과도 없는 불매운동으로 힘 빼지 말고 민간 차원에서라도 우호 여론을 형성하는 게 어떻겠는가? BTS 오사카 공연은 지난 토, 일요일 각각 5만 석을 매진시켰다고 하지 않는가. 실리 없는 맹목적인 국민들의 반일 감정 분출은, 승산 없는 전투에 발조차 빼지 못하게 문 대통령을 압박할 수도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베 총리가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을 거론했다.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니, 대북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한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프레임 덮어 씌우기에 완전히 옥죄어진 느낌이다. 내 돈 떼먹고 달아난 놈이, 다른 곳으로 도망가 착실하게 일하며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 일본의 논리 자체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의 대북 목매기 정책, 유류 등 금수품 무단 반출은 이 억지 주장에 일말의 신빙성을 제공하고 있지 않나.




‘국제적인 약속’ 위반이라 함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합의된 징용 피해자 배상금 문제와, 최근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말하는 것이다. 협정에 국가뿐 아니라 양국 국민 간 청구권도 해결됐다고 명시되어 있다. 적지 않은 보상금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은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깔고 국가 기간산업을 다지는데 썼다. 그러니 따지려면 우리 정부에 따져야 하고, 보상금을 받으려면 우리 정부에서 받아야 한다. 내가 알바비 받아온 돈을 책상 위에 뒀는데 동생이 그 돈으로 치킨 시켜 먹었으면, 돈을 받아도 동생이나 부모님한테 받아야지 그 돈 없어졌다고 사장한테 다시 달라고 할 건가. 보상금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주체가 틀렸다는 말이다. 감정적 대응은 어느 면으로도 우리에게 득 될 것 하나 없다. 일본에 숙이고 들어가자니 자존심 상하는가? 하지만 일본이 우리 주권을 침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우리나라가 받은 돈 다시 못 주겠다는데. 국가 간의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일본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우리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일본을 비난할 명분조차 마땅하지 않은데, 내가 나라 팔아먹는 매국노 발언을 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일본 측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제3국에 의한 중재위원회 설치에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의 최종 답변 시한은 18일까지다. 그리고 아베 내각은 야당으로부터 비판도 받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는 일본의 중재위 설치 제안을 수용해 이번 일을 수습해야 할 것이며, 한-일 관계 파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본 의원들, 미국 인사들을 부지런히 접촉해야 할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 김에, 업종별 차등 없는 주 52시간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도 덤으로 같이 알아준다면, 더 바랄 것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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