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chovy Nov 22. 2020

32. 바이, 나의 자궁. 하이, 나의 미래.

다시 시작한다. 힘내자!

최근 내 바디 스펙이다.

나는 요새 하루 두 번, 체중계에 오른다.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자기 직전.

평균 몸무게는 42. 6kg.

음, 많이 날씬하군. ^^


생경한 몸무게와 체지방률에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수술 후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된 학부모들도 부쩍 수척해진 내 모습에 놀라곤 한다. 자궁적출과 방광요관재문합술이라는, 연이은 두 번의 수술로 수업 재개가 예상보다 늦어지며 내 수술 과정과 상태를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나를 본 후에는 더 놀라워하는 모습들이다.


반면 내 홀쭉한 모습에 놀라지 않는 이도 있다. 20대에도 이 정도의 몸매였던 나를 기억하는 사람. 바로 내 인생에 동반자, 우리 남편이다. 그는 마른 내 몸보다 잘 먹지 못하는 입맛 없음을 걱정할 뿐, 체중계 위 숫자 따위는 대수롭지 않아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지만!


처음에는 매일 내 몸무게를 체크하고 걱정하더니 밥을 아무리 먹여도 살이 안 찌고 과식을 하면 체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더 이상 음식 먹기를 강요하지 않고 있다. 그냥 그대로 잘만 살아라. 이런 생각인 것 같다.


어제(11월 20일)는 의료사고 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결코 내가 납득하고 만족할만한 보상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보상을 더 받아내기 위해 소요해야 할 시간과 그동안 받게 될 스트레스를 생각했을 때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그게 합리적 선택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속 한켠, 속상한 마음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렇게 속상한 마음이기도 했지만 손해사정사를 앞에 두고 서류 3장에 서명을 하며 합의서를 읽어보는데 내 인생에서 이런 경험도 하고 살게 됐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의료사고 합의서에 내 이름 석자를 쓰게 되다니!


나는 손해사정사에게 보상 금액에 대한 것 중 가장 납득이 안 됐던 부분, 내 경제적 손실분을 요관 스텐트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1주일 만을 계산했던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이냐고. 퇴원하고 바로 일을 할 수 있다고 의사들은 판단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냥 얼버무리며 대충 대답을 하셨는데 결국 대답의 요지는 의사들은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술 두 번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텐데 그들은 환자가 잠시라도 일선에서 물러나 쉬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보상 금액을 궁금해하는 분께 살짝 귀띔해 보자면


제 통장에 입금된 금액은 샤넬 클래식 백 가격도 안 된답니다. 검색해 보세요. 그 금액에는 못 미치는 액수예요. ^^


이 돈을 받고 이젠 완벽히 이 일을 잊자고 다짐했다. 이젠 예전에 나로 돌아올 때가 온 것이다. 물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보이진 않지만 내 자궁과 난소 하나가 사라졌고 방광은 호리병 모양이 되었으며 40대인 주제에 걸그룹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흐린 날에는 수술 부위가 아파오고 오늘은 몸에 담까지 들어 오른쪽 몸이 쿡쿡 쑤시는 것이 아주 난리도 아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

나라는 사람은 예전 그대로이다.


쓸데없이 잡다한 고민이 많은, 까칠한 외모인 주제에 남들에게 호구인, 몸이 아파도 일을 하고 싶어 죽겠는 나는 예전 그대로이다. 몸속이 병신이 됐을지언정, 방광 용량이 바뀌어서 화장실에 자주 갈지언정 예쁜 척 멋 내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40대 딩크족 아줌마인 나는 예전 그대로이다.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수술의 무서움이나 병원이 얼마나 나쁜지 알리고자 한 것이 아니다. 나의 극복기를 서술했을 뿐, 그 누구에게도 내 의료사고를 읽고 수술을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누군가 말하길


사람이 죽을 확률은 100퍼센트이다.


라고 얘기했다. 그 확률 때문에 모험도 선택도 망설인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에 했던 나의 선택이 현재의 나를 힘들게 해도 미래의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롯이 나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잘 가, 나의 자궁.

어서 와, 나의 미래.








매거진의 이전글 31. 의료사고, 얼마면 되겠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