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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적 사회주의자 Nov 23. 2019

유시민·홍준표의 정치? 지겹다, '부머'들의 말잔치

by 김창인(민주적 사회주의자 대표)

                         ▲  kbs 시사교양프로그램 정치합시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미디어에서는 '청년 정치'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그렇듯 말뿐이었던 걸까. 정치를 말할 수 있는 무대는 언제나 '그때 그 사람들'에게 주어지니 말이다.

 최근 KBS는 정치토크쇼 '정치합시다' 방영을 예고했다. 유시민(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홍준표(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출연한다. 나름 '막강한 라인업'이라고 구성한 것이겠지만, 진부하다. 둘 다 유명한 사람들지만, 그 '유명세' 말고 한국 정치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점이 무엇일까.

 유시민은 1988년 민주평화당의 이해찬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홍준표는 1996년 국회에 입성하면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각각 정치경력이 31년, 23년 정도 되는 것이다. 20~30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지냈다. 정치에서 이들이 바꿀 수 있는 만큼은 진작 바뀌었다. 앞으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동안 자신들이 했던 정치를 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작업일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50대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시점이다. 60대인 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젊은 세대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원로로 물러나 인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는 삶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공중파 TV에 나와 정치예능을 선택한 행보가 아쉽다.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파급력 있게 다뤄지고, '즐겁고 유쾌한 이미지'로 둔갑된다는 것이다. 미디어에 나오는 청년 정치인들은 청년들의 삶의 힘듦을 토로하기도,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대해서 날 선 비판을 하기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책임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정치는 누군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반면 유시민과 홍준표는 정치를 '놀이'로 다룬다. 그들은 정치판의 '프로'로서 이번 주의 뜨거운 이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손쉬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청년정치가 발랄하고 신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왜 유시민·홍준표에게는 유쾌한 정치가 누군가에게는 즐겁지 않은지에 대해 되묻고 싶은 거다.


말이 통하는 사이? '그들만' 통하는 사이  


 '정치합시다'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틀에 박힌 정치가 아니라, 정치의 본질과 시민의 정치참여가 갖는 의미를 되짚어본'다는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예고를 통해 유시민과 홍준표는 서로를 '말이 통하는 사이'라고 소개했다.

 각자의 정치색은 다르지만, 대화가 가능하고 그래서 토론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유시민과 홍준표는 서로 말이 통한다고 했는데, 누군가는 이 둘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정치는 세상을 바라보는 일종의 안경을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세상을 다시 재구성해내는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한국정치가 제공하는 대표적인 안경은 민주당 대 자유한국당 구도의 진영논리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정치를 이러한 진영논리로 대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계급정치, 젠더불평등에 대해 말하는 페미니즘 정치, 다양성을 포괄하는 소수자정치 등 각자의 현실에서 말할 수 있는 정치는 훨씬 폭넓다.

 그런데 87년 체제 수립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의 권력을 번갈아가며 가져온 기성 정치판은 이 모든 정치를 진영논리로 뭉개고 있다. 민주당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으로서 유시민과 자유한국당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홍준표가 선택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유시민과 홍준표가 서로 다르지만, 말이 통하는 이유는 이 둘이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둘이 공유하는 무언가는 바로 보수 양당체제라고 불리는 한국정치의 뿌리 깊은 병폐다. 이 구조 안에서 보수 양당 정치가 대변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소외되고 배제된다.

 지난 '조국 사태'를 거치며 유시민은 조국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국 사태를 보며 누구나 구속당할 수 있다고 느꼈다"고 말하는 등 조국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진영이 탄압받고 있다는 주장을 전했다. 아직도 자신들이 민주투사이며, 독재의 잔흔인 자유한국당이라는 거악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나 조국도 유시민도 그리고 이들이 대표하는 86세대도 이미 기득권이다. '조국의 행동이 위법이 아니니 문제가 아니다'라는 논리는 부와 권력, 학벌의 합법적 세습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청년세대의 박탈감은 민주 진영에 의해 너무나 쉽게 부정당했다. 유시민이 진영논리에 기반한 86세대의 입장만을 반복할 뿐, 그 이상의 정치적 언어를 펼쳐낼 수 있을까.

 홍준표와 그가 몸담은 자유한국당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합시다'의 예고에서 홍준표는 '상남자'로 묘사되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사회는 기존의 낡은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성찰과 청산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상남자'가 논하는 정치 이야기를 TV에서 봐야 한다니. '꼰대'의 모습은 직장 혹은 일상에서 보는 것만으로 지친다. 


▲  뉴질랜드 녹색당 소속 클로이 스와브릭(25) 의원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언급하면서 기성 정치가 기후 위기를 숨겨온 행태를 꼬집었다. 이에 주변에 있던 기성 의원들이 야유를 퍼붓자, 스와브릭 의원은 "OK, Boomer(베이비부머, 알겠고요)"라며 유쾌하게 대응했다.


"오케이, 부머" 우리라고 못할게 무언가

 

 얼마 전 뉴질랜드 녹색당 소속 클로이 스와브릭(25) 의원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언급하면서 기성 정치가 기후 위기를 숨겨온 행태를 꼬집었다. 이에 주변에 있던 기성 의원들이 야유를 퍼붓자, 스와브릭 의원은 "OK, Boomer(베이비부머, 알겠고요)"라며 유쾌하게 대응했다.

 "OK, Boomer"는 어린 학생들이 꼰대들에 대응하는 일종의 제스처다. 소위 자본주의 황금기의 수혜를 받으며 살아온 기성세대를 비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3저 호황과 함께 20대를 보내고, 학점이나 스펙 걱정 없이 취업할 수 있었던 86세대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그들은 20대에도 한국사회의 주역이었고, 아직까지도 한국사회의 주역이다. 그렇게 주인공의 위치를 점유하는 동안, 그들이 대변하지 못하는 수많은 계급과 계층, 세대는 정치에서 조연이나 엑스트라를 자처해야 했다.

 물론 그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놔주지 않는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유시민과 홍준표가 공유하는 87체제는 이미 그 수명이 다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우리는 그 한계를 목격했다. 100만이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목 빼고 기다리는 광경은, 그 자체로 87년 체제의 헌정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87년 체제는 더 이상 수호하고 지켜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대변하는 낡은 정치인들 또한 그렇다. 유시민·홍준표가 제안하는 정치가 이 시대에 부적격인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미이뉴스 기사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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