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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Apr 21. 2023

괜찮지 않은 우려

최근에 집 앞에 어린이 전용 스포츠 센터가 문을 열었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축구교실에 다니던 태율이는 친구와 함께 그곳으로 센터를 옮기게 되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학원 등록을 위해 나와 라윤이도 동행했다. 내가 손뼉 치고 웃으며 태율이 경기하는 걸 지켜보는 동안 라윤이는 빈 농구 코트에서 골대에 공 넣기를 시도했다. 지나가던 코치님 한 분이 보시고는 라윤이에게 몇 가지 요령을 알려주셨다. 그걸 계기로 어찌어찌해서 라윤이는 농구반 체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같이 수업을 듣게 될 아이들이 라윤이와 같은, 4학년 남학생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남학생들과는 체급 차이가 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먼저 됐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괜찮겠냐고 라윤이에게 연거푸 물었지만, “재밌을 것 같은데.”라는 경쾌한 답만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저녁, 체험 수업이 있었다. 해당 농구반의 첫 수업이기도 했는데, 수강생인 두 남학생 모두 농구를 배운 지 2년 된 경력자들이었다. ‘괜찮을까?’ 하는 물음이 더욱 강하게 떠올랐다. 축구 연습하는 태율이에게 공을 던져주면서도 나는 내내 곁눈질로 농구장을 살폈다. 아이들이 차례로 통통통통 장애물을 피해 점프를 하고 탕탕탕탕 반원을 돌며 드리블을 하고, 골대 앞으로 달려가 슛을 했다. 라윤이는 뾰족한 눈을 한 채 점프를 하고, 공을 튕기고, 팔을 하늘로 길게 뻗어 슛을 했다. 흐트러짐 없는 라윤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안절부절못했다. 골을 넣으며 안도했지만, 공이 골대 높이에 못 미치고 바닥에 되튕길 때마다 주눅이 들지나 않았는지 라윤이의 표정을 살폈다. 수업 후반부, 나의 조바심은 더욱 유난해졌는데 1단계, 2단계, 3단계, 단계를 5개로 나누어 여러 위치에서 골을 넣는 게임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아악, 이런 게임은 피하고 싶어!’ 나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탕탕, 한 남학생이 던진 공이 백보드에 그려진 사각형 위쪽을  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라윤이 차례였다. 라윤이는 긴장되어 보이긴 했지만 침착했다. 무릎을 구부려 천천히 몸을 낮추고, 팔을 쭉 뻗으며 가볍게 뛰어올랐다. 공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통~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1단계를 통과하고, 자리를 옮겨 2단계를 시도했다. 다시 몸을 살짝 낮추고, 공을 잡은 손의 위치를 조정한 뒤 뛰어오르며 슛! 하지만 이번엔 실패였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성공하고, 또 실패했다. 역시, 내 우려 대로 다른 두 친구에 비해 라윤이의 슈팅 폭발력은 약했다. 하지만 우아했다. 두드러지게 우아했으며 단단하고 견고했다. 라윤이가 가진 강점을 눈으로 확인하며 '나의 우려와 걱정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부끄러워졌다. 운동 능력에 성차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작동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선을 넘어가려는 아이를 ‘보호’라는 이름으로 걱정하고 통제하려 든 것은 아닌지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마 속내를 다 드러내지 못하고 라윤이에게 말했다. 

“라윤아, 너 오늘 정말 멋있더라. 엄마였으면 주눅 들었을 것 같아. 다른 친구들은 농구를 2년이나 배웠는데 너는 오늘 처음이었잖아.”     

“그 친구들 정말 잘하더라. 사실 골 넣을 때 조금 긴장 됐지만, 그래도 재밌었어.” 라윤이가 답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이번에야 말로 내 무의식 안에 자리 잡은 차별의식을 뿌리 뽑아낼 기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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