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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blue Mar 19. 2018

첫 번째 잡념 #이방인

_한번도느끼지못했던시선들  ㅣ  you의 리투아니아 생활기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항이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환승 게이트까지 쭉 걸어가는 동안
한국인, 아니 동양인은 오직 나 혼자였다




                                                                                   리투아니아에서의 첫 번째 잡념 #이방인



시선.


나는 누군가를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큰 민폐가 될 수 있기에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

무서웠고 싫었다.


하지만 사실 한국에서 나는 특별한 시선을 받지 못했다.

나는 어디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한 그저 평범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평범한 외모에 적당히 평범한 옷차림, 적당히 평범한 느낌

나는 어디를 봐도 특별한 쪽 보다는 보편적인 쪽에 속했고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그동안 나는 시선에 둔감해져 있었다. 




처음으로 혼자 외국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은 여행과는 또 다른 일이다. 

둘의 마음가짐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과 하루하루를 즐기는 것


인천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로 들어가는 그 순간,


나는 한국에 남겨진 나의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는다는 설렘과 두려움,

나를 이미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맞이해야 한다는 기대와 씁쓸함,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과 함께 약 10시간 동안 하늘을 떠다녔다.




시선.


경유 공항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은근하고도 직접적인 시선들.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항이었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환승 게이트까지 쭉 걸어가는 동안

한국인, 아니 동양인은 오직 나 혼자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공기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의 귀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언어가

너무나도 낯설었고,

갑자기 훅 들어오는 생경함에 무섭기까지 했다.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는 태아가 세상에 훅 내던져진 것 같은 느낌




외국으로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가깝게는 일본, 중국, 대만부터 멀게는 호주, 미국까지


그저 똑같은 상황에 단지 두 가지만 달랐을 뿐인데

혼자라는 것과, 여행이 아니라는 점

이 두 가지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고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왜 나를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지?'


처음엔 그저 궁금했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신기한가?

롱패딩 패션을 처음 봐서 그런가?

키도 작고 어려 보이는 여자애가 혼자 낑낑 거리는 게 가엾나?


그러다가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아무리 신기해도 그렇지 너무 대놓고 쳐다보는 거 아니야?

차라리 나한테 와서 말을 걸지 그래?

참 나! 나도 너네랑 똑같은 사람이거든?


그러다가 해탈.

내가 작고 오밀조밀해서 귀엽나 보지 뭐!

솔직히 롱패딩 한 번 입어보고 싶지?

혹시...방탄소년단 좋아하세요?




보통 특정한 의도가 담긴 시선은 특정한 집단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특정한 집단에 대한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 편견, 신념이 어떠냐에 따라

그 시선이 특정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호의가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특정한 집단에 대한 시선이 노골적일수록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의 집단을 더욱 인식하게 되고

개개인이 아닌 그 집단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을 판단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난 특정한 의도가 담긴 시선을 받는 편이 아니었다.

23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내가 속한 집단이라고 하면 고작 한국인, 여자, 대학생이 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매우 광범하다고 생각했던 '한국인'이라는 집단이

헬싱키에서는 처음으로 매우 특정한 집단이 되어버리는 신기한 경험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노골적인 시선들과 맞닥뜨린 나는

더욱더 시선에 조심하기로 했다.


하나의 개인이 특정한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바라보기보다

그 사람이 가진 고유성과 온전함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2018.01.18~ KAUNAS, LITHU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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