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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blue Mar 19. 2018

두 번째 잡념 #내려놓음에 대하여

_서울과 카우나스, 그리고 나의 변화 ㅣ you의 리투아니아 생활기

그래서 도망쳤다
서울이 아닌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카우나스에 와있었다




                                                                    리투아니아에서의 두 번째 잡념 #내려놓음에 대하여




난 서울이 싫다.

사실 서울이 싫어서 여기로 도망쳐왔다.

여기가 어디든 서울이 아닌 곳이라면 될 것 같았다.


20살이라는 경계에 서있던 나에게,

서울에서의 생활은 하나의 로망에서 현실이 되었다.

대학생, 캠퍼스, 서울, 자취, 독립이라는 달콤한 단어들이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랬듯이.


어쩌다 보니 처음 계약했던 나의 자취방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이제 서울은 나에게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도시가 되어버렸다.


아니,

서울은 한국에서 너무나도 특별한 도시라서

항상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끊임없는 비교와 끊임없는 변화, 끊임없는 사람들

서울에 끝은 없었다.

덩달아 나도 끝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서울에 벌써 질려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아마 나의 성향이 서울이라는 장소와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도망쳤다.

서울이 아닌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카우나스에 와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서울이 아닌 곳에 와있어서 좋았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공기.

동유럽 특유의 칙칙한 건물들도 좋았고

서울에 비해 다소 불편한 교통체계도 좋았고

음식 주문을 하는데만 거의 15분이 걸리는 식당도 좋았다.


지금은 

카우나스라는 곳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어서 좋다.

솔직히 삶의 질로 따지자면 서울이 훨씬 높다.

하지만 삶의 행복으로 따지자면 

글쎄, 나는 카우나스를 선택하겠다.




옛말에 터가 중요하다는 말이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 간다.

서울에서의 나와 카우나스의 나는 미묘하게 다르다.

카우나스에서 나는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향해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한 발걸음을 내려놓고.


아직 내 앞에 펼쳐저 있는 삶은 아주 긴데

그렇게 까지 조급해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원하지 않는 바쁨과 

원하지 않는 강박

내키지 않는 시간 절약과

그만두고 싶은 비교와 자책


이러한 것들이 모두 사라진 카우나스에서

나는 내가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단순히 나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솔직히 막막하다.

나는 어쨌든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로 가면

나는 다시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되겠지

그저 무뚝뚝한 표정과 무의미한 스크롤과 멈출 줄 모르는 발걸음을 가진.


그래도 괜찮다.

이제 나만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지금의 내려놓음을 잊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면 된다.






                                        2018.01.18~ KAUNAS, LITHU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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