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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삼열 Jun 06. 2024

우리에게 필요한 건 꿈일지도 몰라

  할아버지: 손자야, 너의 꿈은 뭐니?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손      자: 음... 포켓몬스터가 되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이 다음에 뭐가 될 거예요?

  할아버지: ...!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고 손자도 없지만, 저와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돌한 학생에게서, 순수한 중학생에게서 받은 질문을 소개해 볼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영향 받아 쓴 시 한 편도 소개해 보려 한다.      


  공교육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분들, 혹은 현재 학부모님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요즈음은 교과목 중에 ‘진로’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나의 적성 및 앞으로의 진로를 탐색하고 고민해 나아가는 교과 시간이다. 하나의 교과목인 만큼 진로 담당 교사가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한다.

  한 번은, 진로 선생님이 병가를 내셔서 진로 시간에 보강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진로 관련 활동지를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작성하게 한 후, 걷어 오면 되는 평이한 보강 수업이었다.

  활동지를 대충 살펴보니, ‘’에 관해 탐색하는 학습지였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 ‘나의 장단점’, ‘선호하는 직업군’ 등을 묻고 있었다. 나는 프린트물을 들고 중1 교실로 향했다.     

  국어 수업과는 무관한 진로 시간, 그것도 보강으로 들어간 것이었으므로, 사실상 내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활동지를 작성하게 하고 하릴 없이 교실을 순회했다. 4월의 봄볕이 따사롭게 교실을 비추었다.   

  학생들이 서로 재잘대며 학습지를 채워 나아갔다. 학기 초의 교실은 조금 들떠 있었고, 기분 좋을 만큼의 긴장감이 아지랑이처럼 공기 중에 떠 다녔다. 

  “저... 선생님!”

  그 애가 나를 부른 건,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프린트물을 막 걷으려고 하던 때에, 개구진 남학생이 나를 불렀다. 평소 같지 않게 목소리가 어쩐 지 좀 조심스러웠다.     

  “**아, 왜?”

  “저기...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요.”

  유난히 키가 작고 개구진, 초등학교 7학년 같은 남학생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선생님은 꿈을 어떻게 꾸세요?”

  순간, 나는 어리둥절했다. 추상명사 ‘꿈’. 그것을 어떻게 꾸냐고? 어른인 나에게 꿈을 묻는 당돌한 아이. 진로 교사도 아닌데, 뭐라고 답해야 하지? 갑자기 날아든 질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꿈 속에서도 잘 안 보이세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고르는데, 그 애가 이어 물었다. 나는 그제야 질문의 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애는 진로와 관련한 꿈을 묻는 게 아니었다. 동음이의어로서의 꿈, 밤에 꾸는 꿈을 물은 것을 두고, 나는 괜히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야, 그런 걸 여쭈면 어떡해!”

  옆에 앉아 있던 짝이 그 애를 탓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실례되는 질문을 했다고 여기는 듯했다.

  “앗! 그런가?”

  그 애가 배시시 웃으며 민망해했다.   

  “아니, 괜찮아. 잘못된 질문은 아니야. 근데 넌 시력이 몇이야?”

  내가 말했다. 

  “1.0이요.”

  “그러면 너는 꿈 속에서도 1.0인 시력으로 세상을 보겠지? 갑자기 3.0으로 세상을 보지는 않잖아, 꿈이라도.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야. 선생님 같은 시각장애인은 아주 흐릿하게 꿈 속 세상을 보고, 선생님보다 더 안 보이는 분들은 딱 그만큼의 시력으로 세상을 보겠지? 어떤 분들은 소리로만 꿈을 꿀 수도 있고.”

  나는 진로 시간에 나올 법하지 않은 시각장애인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중1 학생이 충분히 물을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게 실례되는 질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제가 어떻게 보이세요?”

  “목욕 같은 걸 하면 거울에 김이 잔뜩 서리지? 그 거울에 비친 네 모습을 본다고 생각해 봐. 그거랑 비슷해.”

  “아하! 뿌연 거울로 저를 보면... 아주 잘생겼어요.”

  “그거야! 그때 너는 시각장애인처럼 너를 봤던 거야. 시각적으로 왜곡해서!”    

  옆에서 그 애를 말리던 학생이 크게 웃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웃다 말고, 짝꿍이 물었다.

  “무슨 말이야? 꿈에서?”

  내가 물었다.

  “아뇨, 옛날에 선생님 꿈은 선생님이었어요?” 

  “아, 그 꿈! 나는... 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글을 쓰는 작가도 되고 싶었고... 한마디로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어.”     


  아닌 게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담임선생님들이 으레 꿈을 물으실 때면, 나는 항상  

  “저는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하고 대꾸했다.

  “평범하게? 어떻게?”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물으셨다.  

  “그냥 회사 다니면서... 평범하게... 비장애인들처럼요.”

  “알았다. 너는 아직 꿈이 없구나!”  

  내가 기억하기로, 나의 어릴 적 생활기록부에는 종합 의견란에 ‘꿈이 없음.’ 이런 문구가 늘 포함되어 있었다. 그게 대략 90년대 초중반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평범'이라는 건 꿈이 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

  ‘역시 평범하게 직장 다니며 결혼해서 산다는 건... 부모님 세대 때나 가능했던 일이야. 평범하게 사는 건 어려워!’

  이런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그 당시 담임선생님들은 요즈음 젊은이들을 향해서도 ‘쯧쯧, 너는 꿈이 없구나!’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 도저히 그럴 수 없겠지. 세상이 변했으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시대를, 트렌드를 앞서 갔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한 30년 정도??? 아니겠지, 뭐!      


  “안 평범해요.”

  개구진 남학생이 말했다.

  “저는 공부가 싫고, 글 쓰는 것도 어려워요. 선생님은 안 평범해요.”

  “고맙다!”

  그 애와 잠시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종이 쳤다. 수업이 끝났다. 

  프린트물을 걷어 교실을 나오는데, 그 애가 따라 나오며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꿈은 어떻게 꾸는 거예요?”

  꿈. 꿈. 이쯤 되니,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했다. 

  “시각장애인이 꿈을 어떻게 꾸는지 아까 말했잖아?”

  “아뇨, 그 꿈 말고요. 저는 꿈이 없거든요. 어떻게 하면 꿈을 꿀 수 있어요? 꿈이 꼭 있어야 돼요?”  

  개구진 녀석이... 속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았다. ‘너의 꿈은 뭐니?’라는 질문에 그 애는 ‘꿈은 어떻게 꾸는 거예요? 꿈이 꼭 있어야 하나요?’ 하고 대답한 셈이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이었다.

  그나저나, 진로 선생님은 참 극한 직업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내가 말을 골랐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너무 많은 말이 떠오르는 듯도 했고, 단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는 듯도 했다.

  한참 후, 나는 그 애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시를 한 편 지었다.                  



우문현답     


내일의 꿈은 

몽정처럼 뻐근하다.      

삼억 개의 꿈은

세계지도 같아서     

너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대략난감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청청한 너의 

내일을 묻는다     

어제의 꿈은

율리시스처럼 불가해하다     

3억 개일 수 없는 꿈은

우주 같아서     

나는

심해 물고기되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도대체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꿈을 꾸냐고

묻는 너     

그래 꿈은 어떻게 
 꾸는 거지     

심해에 파문이 일고

세계지도가 바람에

펄럭이고     

꿈은 꿈일 뿐이라고 

너에게 말해야했는데

물고기는 입만 뻥긋뻥긋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는데

너는

없다     

우리의 꿈은 

몽정처럼

율리시스처럼     

뻐근하고

불가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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