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나오는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17
주역(13-3)에는 망(莽)자가 나온다.
망(莽)은 ‘수풀이 우거지다, 우거진 수풀’을 뜻한다.
망(莽)자가 쓰인 단어로
초망지신(草莽之臣)이 있다.
초망지신은 신하가 자기를 낮추어 말할 때
종종 쓰는 말이다.
풀떨기 같은 신하로
이름 모를 잡초 더미 같은 신하란 뜻이다.
수풀로 우거진 곳은
풀 숲에 몸을 숨길 수 있어
군대를 매복시키기 좋은 장소가 된다.
주역 13-3은 다음과 구절이 있다.
“구삼 씨, 풀이 우거진 곳에서
오랑캐를 숨어 살피는군요.
그 높은 큰 언덕에 올라갔으나
삼 년 동안 일어나지 않는군요.
[구삼(九三) 복융우망(伏戎于莽)
승기고릉(升其高陵) 삼세불흥(三歲不興)]”
이 구절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풀어쓸 수가 있다.
‘구삼 씨는 들어 보세요.
풀이 잔뜩 우거진 곳이어서
군대를 매복시키기 좋은 장소이나
오랑캐 같은 적을 일거에 무너트리지 못하고
숨어 살피고만 있군요,
또 공격하기 좋은
높은 큰 언덕을 선점하였으나
먼저 일어나 공격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지켜보기만 하는군요.’
주역은 구삼 청년에게
기회만 엿보지
실제 공격은 못하고 있다는
정황을 지적하고 있다.
구삼 청년은 왜 적 앞에서
오랫동안 공격은 못하고
숨어 살피고만 있을까?
싸워 보았자 명분도 없고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그저 미움에 차서
혼자 속으로 적을 만들어 놓고
‘반드시 이겨야지, 이길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장소를 확보해야지!’라고
끊임없이 싸울 준비만을 완벽히 하고 있다.
왜 이 청년은 미움으로 가득 차있을까?
책임자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후배에게.
더군다나 여자 후배에게.
그래서 짙은 수치심에 어쩔 줄을 모른다.
짙은 수치심은 미움을 낳고
급기야 증오심으로 커져
싸우려고만 한다.
주역은 그 청년에게
‘그렇게 준비만 완벽하게 해 놓을 뿐
삼 년 동안 아무 일도 만들지 못하고
기다리고만 있지 않느냐?’라고
가슴 아프게 직면시키고 있다.
아마도 주역은 아래와 같은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싸우려고 자기 자신에게 다그치지만
실제는 싸우지도 못하고
스스로 가슴만 쥐어짜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몸을 상하게 할 것이니
빨리 접고, 또 다 잊고
모험의 세계로 떠나라고.’하며.
증오심이 심해지면
감정 분출로 필히 싸움으로 연결될 것이니
현실에서 고민하지 말고
새 삶을 찾아
더 큰 세상으로 나가라고 이르면서.
우리는 현실이 괴로우면
아등바등 현실과 싸우려고만 한다.
싸우는 상황을 빨리 매듭지으려 서두른다.
싸움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생각보다 어렵고
해결 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는 눈을 바꾸어
현실의 세상이 아닌
미래의 세상,
고달플 것 같지만 꿈이 있는 세상을
향해 모험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주역은 13괘 괘사에서
‘넓은 들로 나가 힘차게 뻗어나가라.
큰 개천을 건너면 이롭다.
[우야(于野) 형(亨)
이섭대천(利涉大川)]’라고 말한다.
그 청년은 중요한 삶에다
에너지를 쏟으려면
현실의 고통에 붙잡혔던 에너지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
대신 올곧이 그 에너지를
앞으로 중시해야 할 삶에 쏟아야 한다.
왜? 삶의 에너지는 유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