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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Jul 07. 2019

지하철 여행담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일곱 번, 한 달에 서른 번 지하철을 탄다. 구일역에서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서 신촌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사실 집에서 역까지 걷는 시간과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지하철을 타는 일은 매번 더 오래 걸린다. 그러나 날마다 반복되는 이 작은 여행이 꼭 지겹지만은 않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매일 같은 역에서 같은 행선지의 열차를 타도 몇 시 몇 분 어떤 열차의 어느 칸에 타느냐에 따라서 매번 다른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과 동행하는지, 어떤 광고가 벽면에 붙어 있는지, 서서 타는지 앉아서 타는지, 사람이 많은지 적은 지, 냉난방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어떤 행상인이 들어와서 어떤 물건을 파는지, 술주정뱅이가 있는지 없는지, 어떤 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타는지, 기사 아저씨가 어떤 멘트를 남기는지... 이 모든 산발적이고도 동시다발적인 우연성에 따라 나는 매일 새로운 모험을 한다.


예를 들어 매일 다른 이 작은 여행은 지하철을 타기 전부터 시작된다. 보통 나는 지하철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기보다는 매일 그때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집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그 때문에 막 들어서는 지하철을 타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또 간신히 놓치기도 한다. 그러면 다음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예상외로 조금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지하철이 보통 5-10분 간격으로 온다 하지만, 내가 놓쳐버린 지하철을 탔더라면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할 텐데, 그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그냥 보내버린 듯한 기분이다. 집에서 조금만 덜 꾸무적 댔더라도, 지하철역 오는 길에 조금만 더 서둘렀어도 아까 그 열차는 충분히 탔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늦었다. 


지하철을 기다려야 한다면 선로에 서있는 순간부터 모험은 시작된다. 일단 전광판을 통해 다음 열차가 어디쯤 와있는지를 확인하고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계산한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의자를 찾아 앉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문 어귀에 선다. 어느 문에 서서 기다려야 할 것인가, 어느 쪽에 타야 사람이 그나마 적을까, 그래서 그나마 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을까. 내가 아무리 젊다 하더라도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앉고 싶은 욕구는 매번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가능하면 노인석과 가까운 열차칸의 앞과 끝, 즉 x-1 혹은 x-4로 끝나는 문에는 서지 않는다. 노인석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어르신들이 일반 좌석에 오면 나는 그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자리를 양보할 것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은 열차의 중간 쪽을 노린다. 열차에 좌석이 넉넉히 남아있어 앉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아주 이르거나 늦은 시간을 제외하고 지하철은 대부분 비어있는 좌석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있을 경우에는 누가 언제 내릴 것인지 내 일을 하는 척 무관심해 보이면서도 자리에 대한 경계를 놓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운 좋게 앞에 자리가 나면 마다하지 않고 덥석 앉는다. 자리에 앉아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면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다른 승객들을 관찰한다. 


지하철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지수로 표현할 수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패션, 관심사, 관계, 그리고 생활 등등 많은 것을 반영할 것이다. 2015년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지하철 승객이 갑작스레 줄어든 것으로 나는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내심 편안해했지만 그것 또한 사회의 이슈를 반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또한 굉장히 서민적이다. 흔하지는 않지만 지하철을 타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은 우리에게 언제든지 마주칠 것만 같은 친근감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지하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다양한 경험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다양한 구경을 하고 오니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에 다녀오는 길이 항상 지치게 느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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