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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Nov 29. 2019

11월의 어느 주말, 부다페스트 - 1

베를린에서 부다페스트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평소에 잠이 많은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다. 그런데 무리해서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일정이 있으면 제시간에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새벽에 여러 번 깨고 잠을 깊이 못 잔다. 오늘이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 이른 비행기 시간에 나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공항으로 향해야만 했는데 그 덕에 잠은 거의 못 잤다. 


베를린 테겔 공항에서 아침 7시 반 비행기를 타고 오전 9시쯤 부다페스트 페렌츠 리스트 공항(BUD)에 도착했다. 저가 항공인 이지젯(easyjet)을 타고 터미널 2에 도착했는데 공항 건물이 공사 중인 건지 승객들은 황량한 아스팔트 한복판에 떨어졌고 비행기에서 내려 대략 5-10분 정도 바깥을 걸어 공항 건물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 공항은 그렇게 크지는 않아 보였다. 짐 찾는 곳을 통과해 입국장에 도착했고 바닥에 표시된 안내를 따라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까지 걸어가는 길.


공항에서 시내로, 그런데 망할 티켓 머신!


나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대중교통을 통해 움직이기로 했다. 택시도 있고 벤도 있었지만 나는 짐도 거의 없고 한 푼이 아쉬운 여행객이기 때문에. 시내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버스 100E와 200E가 있다. 버스 200E번을 타면 중간에 지하철로 한번 갈아타야 한다고 해서 나는 100E번을 타고 곧장 시내로 가기로 했다. 사실 100E번 버스정류장에서 호텔이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게 큰 이유였다. 


100E번 버스 티켓은 900 포린트 (헝가리 통화 단위). 티켓은 티켓 머신에서 살 수 있고 내가 공항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티켓 머신 앞에 줄을 서 있었다. 긴 줄이 쉽게 줄지 않는 데는 헝가리에 익숙지 않은 관광객들이 티켓 머신 앞에서 애를 먹고 있었던 탓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기계가 지폐를 잘 먹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내가 900 포린트 티켓을 사려 1000 포린트 지폐를 넣으니 최대 500 포린트 지폐만 받는다고 화면에 나왔다. 다행히 500 포린트 지폐가 두장 있어서 이걸 써야지 했는데 500 포린트 지폐 한 장을 먹은 기계가 그다음부터는 최대 200 포린트 동전만 받는다는 안내와 함께 500 포린트 지폐를 자꾸 뱉어내는 거다. 갈수록 적은 액수만 받는다는 기계 시스템은 실용성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문제로 앞의 사람들이 애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뒤에서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던 나 또한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니 당황스러웠다. 티켓 사기를 포기해야 하나 싶을 지경이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은데 짜증이 난 채로 지갑을 뒤졌는데 다행히도 200 포린트 동전이 2개 있었다. 우여곡절 티켓을 사고 나는 부랴부랴 버스로 향했다. 오전에 도착한 탓인지 버스는 15분 정도 간격으로 있었다. 나는 티켓을 사느라 버스를 몇 개 놓치고 그다음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앞 입구로 탑승을 하면서 기사에게 표를 보여주면 기사는 표 한 모퉁이를 찢어서 검표했다.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움직이려는 사람들은 잔돈이 있어야겠다. 크레디트 카드로 구매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미리 바꿔온 돈이 있어서 그걸 쓰려고 했다.


현금을 잘 먹지 않는 부다페스트 대중교통 티켓 머신.


구 공산주의 도시 속으로


다행히 북적이는 버스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도시의 풍경을 마음에 담아본다. 나는 동유럽 나라에 올 때마다 특이한 감정을 느낀다. 시외로 나갈수록 빌딩들은 주로 70-80년대에 지어진 10층 정도 높이의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이다. 공산주의 시대에 지어진 이 큼직하고 네모난 건물은 그 후에 보수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외부 벽에 긴 금을 가진 채로 같은 자리를 유지한다. 시내로 다가갈수록 이런 아파트들은 줄어들고 건물은 고풍적이고 화려 해지지만 그럼에도 뭔지 모를 특유의 우울함이 배어있다. 남북한의 정치적인 상황 때문인지 나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을 방문할 때마다 흡사 금기된 장소에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부다페스트에 오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전에 친구와 놀러, 그다음에 일 때문에 한번, 또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거점으로 한번 온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가 5-6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공항도 시내도 많이 변해 있었다 



슈퍼에서 물사놓기


공항에서 애를 먹고 오전 10시 반쯤 힘겹게 호텔에 도착해 나보다 하루 먼저 와있던 친구를 만났다. 일단 방에 짐을 놓고 우리는 근처 슈퍼에서 물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빵을 샀다. 호텔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말이다. 수돗물을 마셔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슈퍼에 가면 1.5리터 물병을 천 원 미만의 가격으로 살 수 있기에 한 번에 가서 여러 병 사다 놓고 며칠을 마셨다. 다른 동유럽 나라들과 비슷하게 헝가리에도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이 많이 진출해 있었다. 골목마다 리들(LIDL) 혹은 알디(ALDI)가 있었고 그곳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렇듯 부다페스트의 슈퍼 물가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지만 외식물가는 그리 싸지만은 않았다. 



외식물가


슈퍼에서 산 것들을 호텔에 놓고 나와 구글에서 보고 별점이 많은 근처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음식에 실망을 했다. 인테리어만 좋지 가격이 비싸고 음식 맛이 특히 별로였다. 친구는 햄버거를 시켰는데 햄버거가 크림이 담긴 소스 안에 나온 모습이 흡사 햄버거를 크림수프에 넣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친구도 생각보다 맛이 별로라고 했다. 이 햄버거의 가격은 3890 포린트. 나는 약간 매콤한 맛 치킨 윙스를 먹었는데 반 정도 먹다가 남겼다. 치킨이 잘 튀겨진 것 같긴 했는데 매콤하다는 소스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이 치킨 윙스 7조각의 가격은 1990 포린트. 그리고 총가격에 12%의 서비스료가 더 추가되었다. 이렇듯 부다페스트에서 외식을 하면 서비스료가 10% 정도 더 붙어서 나왔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지만 이전에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 서비스료가 없었으니, 이건 비교적 최근 도입된 시스템인 것 같았다. 특히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이 서비스료를 많이 붙이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저렴한 음식점에서는 서비스료가 없거나 있어도 5% 정도만 했다. 저녁에는 태국 음식점에 가서 팟타이를 사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서비스료가 없었다. 이 팟타이의 가격은 1950 포린트,  대략 6유로, 혹은 7,500원 정도. 맛도 아까 점심때 먹은 것보다 나았다. 외식 물가는 현지 사람들의 평균 수입(한 달에 대략 400-700유로)을 생각했을 때 터무니없이 비싼 편이었다. 이 정도면 한 달에 평균 2000-2500유로를 버는 베를린 물가에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베를린에서는 고정된 서비스료가 없다. 


대략 8,000원인 치킨 윙스 7조각.


헝가리 국립 박물관 (Hungarian National Museum)


헝가리 국립 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2600 포린트, 대략 8유로, 한화로는 만원 정도이다. 표를 사면서 물어봤는데 학생 표 할인은 없다고 했다. 박물관은 크지 않았고 전시를 보는데 대략 3시간 정도 걸렸다. 사실 잠을 못 잔 탓에 뒤로 갈수록 체력이 방전돼서 꼼꼼히 챙겨보지 못한 탓도 있었다. 박물관은 헝가리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시대별로 전시관이 나뉘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물은 베토벤의 피아노를 리스트가 선물 받고 박물관에 기증해서 남아있는 방이었다. 


홈페이지: https://mnm.hu/en



이날 아침에 무리해서 일찍 일어난 탓인지 너무 피곤하고 속도 안 좋아서 박물관 한 개 보고 호텔로 돌아와서 좀 쉬다가 저녁 먹고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렀다. 크리스마스 마켓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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