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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Dec 15. 2019

11월의 어느 주말, 부다페스트 - 2

지하철 타기

부다페스트에서의 두 번째 날. 나와 친구는 어제 슈퍼에서 사 온 빵으로 호텔에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시내에 사람이 많았다. 오늘은 시내를 본격적으로 돌아볼 생각이라 대중교통 티켓 1일권을 1650 포린트에 구매했다. 싱글 티켓 한 장이 350 포린트니깐 5번 이상 이동하려면 1일권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 무엇보다도 이 티켓은 24시간 유효하기 때문에 구매한 시간으로부터 다음날 그 시간까지 쓸 수 있다. 지하철에 개찰구는 없었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표 감시원들이 한 명씩 서있었는데 그분에게 표를 보여주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에스컬레이터 밖에 없는데 그건 너무 깊기 때문에 건축설계 시 계단으로 걸어서 간다는 건 생각지도 못 한 듯하다. 부다페스트의 지하철 시스템도 다른 동유럽권 나라들과 비슷하게 핵전쟁에 대비해서 깊은 곳에 설계했다고 한다. 지하철 외에도 중간중간 버스를 탔는데 부다페스트 대중교통은 복잡하지 않고 잘 정비되어 있어 여행하기에 편리했다. 우리는 몇 정거장 지나 곧 국회의사당이 있는 역(Kossuth Lajos Tér)에 도착했다. 


뒤에서 바라본 헝가리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 방문 실패

국회의사당은 부다페스트를 비롯해 헝가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웅장한 크기와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유명하다. 티켓은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하는데 좀 번거로워서 현장에서 구매하려고 했다. 유럽연합의 시민이 아니면 입장료는 1인당 6700 포린트이다 (유로로 대략 20유로, 한화로 대략 27,000원). 방문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투어당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티켓을 국회의사당에 직접 방문해서 미리 사 두려고 했는데 국회의사당에서는 당일 투어 중 남은 티켓만 판다는 거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영어 가이드 티켓은 오늘은 물론 내일도 동이 났고, 내일 아침 8시 반 투어에 빈자리가 몇 개 있으니 아침에 일찍 오면 티켓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얻었다. 게으른 우리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내일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부다페스트에 오는 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우리는 과감히 국회의사당 들어가기를 포기했다. 사실 내가 부다페스트에 여러 번 왔으면서도 아직까지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에 들어가지 않은 데에는 항상 이런 이유가 작용했다. 다음에 오면 들어가지 뭐.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그다음이 또 한 번 미뤄졌다.  


Hungarian National Assembly 티켓 구매:

https://www.parlament.hu/en/web/visitors/purchasing-tickets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러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나는 쌀국수를 먹었는데 1490 포린트에 팁이 5퍼센트 붙었다.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과 비슷하게 부다페스트에서도 아시아 음식점들이 인기가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간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가 일수였다. 또 부다페스트 시내에 한국 음식점도 몇 개 있는 것 같은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부다 언덕 위에 올라가서 바라본 도시 전경. 국회의사당과 다뉴브 강이 보인다.


부다 지구: 부다 캐슬, 군사 역사박물관, 그리고 핵벙커 박물관

국회의사당 들어가기에 실패한 우리는 점심이나 든든히 먹고 부다 성 지구에 올라갔다.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가 합쳐진 도시인데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서쪽이 부다, 동쪽이 페스트 지구이다. 대부분 관광지들이 페스트 지구에 몰려 있는 듯 하지만 부다 지구에는 부다 성을 비롯해 다양한 박물관과 온천이 있다. 부다 성은 세계 2차 대전에 부서진 곳을 제외하고 나서라도 헝가리에서 가장 큰 건물이고 과거 헝가리의 왕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부다 지구에는 부다 성 외에 여러 박물관도 있고, 또 대관식과 결혼식 등 왕족의 행사가 진행되던 마차시 성당이 있다. 부다 성은 언덕 위에 있는데 올라가는 길은 계단으로 잘 되어 있어 힘들지 않게 도착했다. 성 근처 인적이 드물어 보이는 이곳에 아직도 사람이 살까 싶기도 하지만 일반 가정집으로 보이는 건물들도 많았다. 우리는 성에는 들어가지 않고 마차시 성당 근처 전망 좋은 곳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좀 보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군역사 박물관 (Military History Museum)에 갔는데 입장료는 1500 포린트였다. 부다페스트도 과거 유럽 역사에서 전쟁의 무대가 된 적이 많은 만큼 많은 다양한 무기와 전시내용을 기대하고 갔다. 그런데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군복 전시가 더 많았다. 군역사 박물관을 마친 후에 우리는 언덕 아래쪽에 있는 핵벙커가 있다는 병원 박물관(Hospital in the rock)에 갔다. 이곳은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는데 1인당 입장료는 4000 포린트이고 투어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린다. 투어는 매 시간마다 있는데 처음에 10분 정도 안내 비디오를 보고 가이드를 따라 내부를 돌아다닌다. 병원 박물관은 자연 동굴 속에 지어진 병원으로 20세기 초에 전쟁에 대비해 지어졌으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비밀리에 핵전쟁 대피소로 보수되었다가 최근에서야 일반에 공개되어 박물관으로 개장했다고 한다. 박물관 내부에는 실제 수술실과 입원실에 마네킹들을 설치해서 세계 2차 전쟁 때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그 마네킹들이 오히려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Military History Museum Budapest

http://www.militaria.hu


Hospital in the rock, Nuclear Bunker Museum

https://www.sziklakorhaz.eu/en/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저녁이 늦어가면서 우리는 어제에 이어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았다. 어제는 저녁 늦게 가서 구경만 하고 왔기에 오늘은 조금 일찍 가서 저녁으로 뭔가 먹고 마셔보자고 했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마켓으로 밀려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것보다도 더 놀라운 건 음식값이었다. 서유럽보다 싼 물가를 기대한 우리는 어떤 메뉴는 10000 포린트, 대략 30유로, 혹은 4만 원 정도까지 하는 걸 보고 기겁했다. 이 정도면 베를린에서도 보기 힘든 가격인데. 그리고 대부분의 마켓 방문자들은 영국식 영어, 스페인어, 혹은 독일어를 쓰는 외국인인 듯했다. 과거에 부다페스트에 몇 번 왔지만 예전과 달리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과 그에 따른 관광 관련 산업의 가격도 더 늘었음을 이번 방문에서 느꼈다. 우리는 마켓에서 헝가리 전통음식 랑고쉬 하나를 사서 나눠 먹고 금방 근처 다른 카페로 들어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다가 호텔로 향했다. 


헝가리 전통음식 랑고쉬. 튀긴 도우 위에 사우어크림과 치즈 등을 얹어 먹는 것이다.


부다페스트 동물원

부다페스트에서의 셋째 날, 오늘도 아침은 호텔에서 가볍게 먹고 점심 먹기 전에 시내로 나갔다. 어제 사놓은 대중교통 티켓이 아직 유효해서 시간에 맞추어 오전에 전철을 타고 동물원에 갔다. 왜 동물원이냐면, 친구가 동물을 너무 좋아해서 나는 같이 가줬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입장권은 한 명에 3300 포린트인데 그룹 티켓으로 3000 포린트에 끊었다. 우리는 그룹으로 온 게 아닌데 티켓을 파는 사람이 귀찮은 건지 다른 입장객들과 섞어서 우리에게 그룹 티켓을 주었던 것이다. 동물원은 생각보다 컸고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원도 있어서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동물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괜찮아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다페스트의 동물원은 역사가 깊었다. 1860년대에 문을 열어 역사가 150년도 넘은 곳이었다. 역사가 깊은 만큼 꽤나 멋스럽게 솟은 건물들도 있었다. 겨울이라 동물원은 오후 4시에 문을 닫았고 3시가 넘어서 부터는 건물에서 나와서 야외 우리만 구경할 수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바깥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도 슬슬 춥고 머리가 아파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동물원에서 나왔다. 


부다페스트 동물원

https://www.zoobudapest.com/en


우리는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서 떠날 준비를 했다. 3일이라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나름 잘 휴양을 하고 간다. 관광이 주된 목적이라기보다는 친구를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간다는 목적이 더 컸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싼 물가에 지출이 많았다. 공항으로 돌아갈 때도 100E번 버스를 탔는데 만차였다. 그래서 40분 내내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서서 왔다. 이 글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부다페스트에 가면 온천이나 그랜드 마켓에도 가보기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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