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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Jan 11. 2019

상트페테르부르크 리포트 1

시작하며. 도착과 공항에서 시내 가기.

시작하며.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을 파악하기 위해 나름대로 패턴을 만든다. 우리가 새로운 무언가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패턴을 찾는 건 어쩌면 지극히 일반적이고 본능적일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모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언하건대, 이 시리즈는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담에 근거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달간 살아보기 리포트이다.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펼쳐진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내에서도 가장 유럽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는 만큼 러시아의 다른 지방과 도시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통해 일반화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또 나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곳에 가면 짧은 시간에 많은 장소들을 둘러보는 것보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면서 현지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엿보고 왜 그럴까 추적해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학교 교류 프로그램으로 얻게 된 한 달간의 체류가 나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 혹은 러시아의 일부분을 알아가기에 좋았다. 그렇게 한 달간 머물면서 시내 관광도 하고 학교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현지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소개하게 될 나만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리포트를 완성해갔다. 나의 리포트를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찾는 관광객이 많은 만큼 여느 유명한 유럽의 대도시와 많이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또 많이 다른 곳이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몇몇 사람들이 걱정하는 바와 다르게 도시 내 치안도 괜찮은 편이었다. 또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편한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기본적인 생활을 하기에 아주 힘들지는 않았다. 새로운 곳을 알아간다는 것은 가치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러시아에 오기 전 인터넷 후기를 통해 정보를 많이 얻었는데, 그 후기들은 대부분 영어로 쓰여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리포트를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는 한국분들이 기회가 되어 내 경험담을 읽게 되었을 때 그분들께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도착. 공항에서 시내 가기.

2018년 10월 1일 오후 2시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러시아라는 큰 나라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곳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Pulkovo Airport)의 한 구석이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 건물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는데 공항 건물에 크게 붙어있는 러시아어 팻말(Санкт-Петербург)을 읽어보고 나서야 내가 러시아에 왔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공항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점은 중국어 팻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도시를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불과 몇 년 전 공항에 중국어 팻말까지 설치되었다고 한다. 내가 체감하기에도 시내에서 중국인 관광객과 중국어 팻말이 흔히 보였다. 

공항 건물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다 보면 입국심사를 하는 곳에 도달한다. 러시아 자국민을 위한 심사관과 외국인을 위한 심사관이 따로 분류돼 있으니 러시아 국기가 아닌 지구 모양의 표지판을 찾아서 줄을 선다. 한국인은 한 번에 최대 60일까지 비자 없이 러시아에 머물 수 있기에 입국 심사에서 여권만 보여주면 된다. 입국 심사는 미국처럼 사진을 찍지도 않고 지문을 채취하지도 않고 단순한 인터뷰로 쉽게 끝났다. 왜 왔냐고도 안 물어보고 어디에 사느냐 그리고 러시아가 처음이냐고만 물어봤다. 그러면 여권에 휴지만큼 얇고 작은 이미그레이션 카드를 끼워주는데 이 카드를 출국하는 날까지 잘 간직해야 한다. 


풀코보 공항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고 한 번에 가거나 버스를 타다 전철로 갈아타서 두 번에 갈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짐을 찾고 입국장 문을 나오면 이름을 쓴 팻말을 든 사람들 외에 목에 TAXI라는 카드를 매단 남자들이 수없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홀로 걸어가는 나에게 “택시?” 하며 따라왔는데 나는 이미 버스를 타기로 마음을 먹어 아니라고 짧게 대답하고 일단 공항 밖으로 빠져나온다. 

러시아에서는 길거리에서 일반 승용차를 세워 돈을 주고 히치하이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로변에 서서 손을 앞으로 뻗어 지나가는 자동차 중 한대가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 운이 좋게 한대가 멈추면 멈춘 차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릴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가려는 곳을 말하고 가격 흥정을 시작한다. 보통 시내 안에서 움직일 경우 500에서 1000 루블을 지불한다고 하는데 운전자가 부르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으면 차를 그냥 보내기도 한다. 이 경우에 중요한 점은 요금은 꼭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외에 공식적인 택시도 있지만 일반 승용차에 올라타는 것보다는 가격이 좀 더 나가고 외국인 승객의 경우 운전사가 미터기를 작동하지 않고 운행을 한다던가 처음에 요금을 합의하고 탔더라도 나중에 잔돈이 없다는 핑계로 요금을 더 받는 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가격을 올려 받아 불만을 산 사례가 많이 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일률적인 요금을 보장한다는 택시회사 서비스가 많아졌다고 한다. 또 우리가 흔히 들어본 Uber를 비롯해 Gett 혹은 Yandex와 같은 앱을 통한 택시 서비스도 많이 이용되고 있으나 나는 이 서비스는 사용해 보지 않아서 후기를 남길 수 없다. 


나는 짐이 많이 무겁지 않고 무엇보다도 돈을 절약하기 위해 버스와 전철을 이용해 호텔에 도착하기로 한다. 공항이 크지 않아서 건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공항버스는 39번과 39Ex번이 있는데 둘 중 어느 하나를 타도 40 루블의 요금에 (2018년 10월 기준 금액) 20분에서 40분 사이면 2호선 모스코브스카야 전철역(Moskovskaya metro station)에 도착한다. 버스는 새벽 5시 반 정도부터 새벽 1시 반 정도까지 운행하니 아주 이른 새벽 시간이 아니고서는 공항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내가 공항을 나섰을 때 마침 39번 버스가 서 있어서 급히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표를 사려고 운전기사가 앉아있는 앞좌석에 가서 막혀있는 칸막이 사이의 창문을 두드리니 뒤로 가라고 한다. 내가 이때 러시아어를 감각으로 알아들은 건지 그가 영어를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짐을 끌고 뒤로 주섬주섬 간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 중간에 사람들이 몰려있고 그 중심에 어깨 부분에만 형광 연두색 천이 덧붙여진 네이비색 조끼를 입고 검은색 앞 가방을 멘 아주머니가 서있다. 그는 기억력도 좋아서 사람들이 도착한 순서대로 표를 구매하도록 하는데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One ticket please.”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나와 내 짐가방을 훑어보고선 “아딘?”이라고 했고 나는 러시아에 오기 전 단어책에서 보았던 숫자 1(일 혹은 하나)이 아딘이었던게 생각나 “아딘(один)”이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나는 그에게 100 루블 지폐를 건넸고, 곧 거스름돈 60 루블과 버스표를 건네받았는데 그 표는 얇고 크기가 너무 작아서 주머니에 쑤셔 넣으면 곧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에게 표를 건네준 아주머니는 그 뒤로 새로 탄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표를 판매하거나 충전식 교통카드 사용자의 경우 그들이 카드를 리더기에 잘 찍는지 검사했다. 한마디로 그는 버스 안의 표 판매원인 동시에 검표원이라고 해야 할까. 승객이 카드리더기에 교통카드를 찍는 것을 자신이 미쳐 보지 못했으면 그는 검은색의 휴대용 검사기를 승객에게 들이대었고, 그러면 승객들은 각자의 카드를 검사기에 가까이 대어 교통비를 지불했음을 증명했다. 사실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내가 탔던 모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버스에 한 명씩 있었다. 그래서 버스에 탄다면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탄 39번 버스는 대략 7 정거장 정도 후에 종점인 모스코브스카야 전철역(Moskovskaya metro station)에 도착했다. 이 버스에서 제때 못 내릴까 봐 걱정은 덜어도 된다. 버스 안에서 안내방송과 다음 역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영어로도 되어 있어서 쉽게 알아들었다. 또 내려야 할 정거장이 버스의 종점이라 사람이 다 내리니 그때 주저하지 말고 같이 따라 내리면 된다. 버스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니 지하철역 입구가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전철역과 세계 최초의 스크린 도어를 비롯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풀코보 공항의 약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전 명칭인 레닌그라드에서 따서 LED이다. 

https://pulkovoairport.ru/en/


+독자님! 러시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데 현지 발음을 최대한 고려하려 하나 제가 잘 몰라서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개선할 점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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