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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Jan 26. 2019

상트페테르부르크 리포트 2

지하철 타기와 유심칩 사기

지하철 타기.

공항버스에서 내린 나는 일단 지하철표를 사기 위해 역 입구에 있는 개표기 앞에 선다. 개표기는 러시아어 외에도 몇 개의 다른 언어로 작동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화면 왼쪽 아래 국기 그림을 눌러 시스템 언어를 영어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개표기를 사용하는데 크게 애먹지는 않았다. 한 달 동안 지내려면 대중교통카드를 하나 사서 충전해 쓰면 저렴하다는 정보를 미리 인터넷으로 보고 온 터라 일단 60 루블을 넣고 충전식 카드를 산다 (화면에서 첫 번째 버튼 Buy a Card).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며칠만 머무는 것이라면 60 루블을 지불하고 굳이 교통카드를 사는 것보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마다 40 루블씩 요금을 지불하는 것도 좋다 (2018년 10월 기준 금액). 그러기 위해선 잔돈을 미리 챙겨 다니는 게 편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경험한 바로 교통카드 충전은 지하철역 개표기에서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게 될 경우에도 카드를 충전하러 굳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머무는 동안 버스 승객을 위한 카드 충전소가 따로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카드를 충전해서 쓰면 좋은 점도 있는데 그것은 대중교통을 많이 타면 탈수록 매번 지불하는 요금이 조금씩 할인된다는 것이다 (매월 카드를 쓰는 빈도에 따라 32 루블에서 36 루블까지 할인. 자세한 요금 정보는 http://www.metro.spb.ru/en/pricetickets.html 참조). 

처음 교통카드를 사고 크레디트를 충전하려는데 조금 헤매는 것 같으니 역 안에 있던 안내원이 다가온다. 안내원이 나에게 러시아어로 뭔가 물어봤는데 나는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대략 어떤 표를 사려고 하십니까 뭐 그런 말인 것 같다. 대답 대신 나는 행동으로 내가 산 교통카드를 보여주고 100 루블 지폐를 꺼내 카드에 넣고 싶다는 듯이 손짓을 한다. 고개를 끄덕인 안내원이 내 의도를 이해했는지 알아서 화면에서 버튼을 눌러주고 이때 돈을 넣으라는 듯이 지폐 투입구를 가리킨다. 그렇게 카드에 100 루블을 충전한다. 나중에 습득한 사실이지만 카드를 리더기에 올려놓고 메뉴에서 세 번째 버튼(Top up the unified E-Purse)을 누른 후 지폐를 기계에 넣으면 충전이 되고, 그 크레디트로 전철과 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러시아 지하철은 한국과 비슷하게 개출구에 표(혹은 토큰)를 넣거나 카드를 찍고 들어가지만 내릴 때는 따로 체크아웃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하철역 내에 입구와 출구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체크아웃을 하지 않는 건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건 한국과 같이 환승할인 같은 제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하철역 입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승강장으로 가는 길이 무지 깊다. 러시아 지하철 계단 빨리 오르기 대회 이런게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길다. 실제로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지하철은 깊은 곳에 위치하기로 유명하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지하철이 팽창하던 시기가 냉전 시절이었고, 그 시절 핵전쟁의 위험에 대비하여 지하철역을 대피소 목적으로도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은 모스크바보다 20년이 늦은 1955년에 개통되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 가장 깊은 역은 아드미랄테이스카야(Admiralteyskaya) 역인데 그 깊이가 지하 86미터 까지 된다. 한 번은 고르코브스카야(Gorkovskaya) 역에서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 시간을 재봤는데 무려 2분 16초였다. 러시아 지하철에서 또 눈에 띈 건 경찰과 같이 감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전철역 입구에서부터 승강장까지는 물론, 그 기나 긴 에스컬레이터 끝자락에도 경비실 같은 작은 집에 누군가 하나씩 마냥 앉아있다. 그래서 괜히 내가 뭘 잘못하지는 않을까 태연한 척하게 되는데 이것은 20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이후에 더 강화된 보안조치의 결과라고 현지인들이 귀띔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은 러시아 문자를 읽지 못해도 쉽게 탈 수 있다. 내가 지나쳐온 모든 역의 이름이 알파벳으로도 적혀있었다. 또 다른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의 특징은 수평 엘리베이터(horizontal lift)라고 부르는 스크린 도어이다. 세계 최초로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가 설계된 곳이 이곳이기도 하다. 서울 지하철 스크린 도어가 지하철이 역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한대에 반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크린 도어는 승강장과 선로가 건축자재 벽으로 완벽히 차단되어 있어 문이 열릴 때야 비로소 전철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문이 열리기 전 전철이 역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그게 어느 선로에서 오는 소리인지 구분하는 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공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로 간다면 이러한 수평 엘리베이터를 모스코브스카야(Moskovskaya) 역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다 (커버사진 참조). 처음에 이 독특한 스크린 도어를 보고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고 러시아의 모든 지하철 역이 이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16개의 전철역만이 이런 스크린 도어와 함께 건축되었다고 한다.


짧은 기간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 머문다면 사실 지하철보다 전차나 버스가 더 유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출퇴근 시간에 서울 못지않게 차가 많이 밀리는 것을 보았다. 또 시내 건널목에 신호등이 없이 보행자 보호 표시만 있는 곳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차가 오는지 주의하며 조심히 건너가면 된다. 하지만 내가 지나가는 걸 알면서도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아 무서울 때가 많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운전자들은 속도를 내서 달리다가 사람 바로 앞에서야 속도를 과격히 낮추어 멈춘다. 그래서 신호등이 없는 길을 지날 때마다 마음을 졸였다. 그래도 마음을 졸이지 말고 당당하게 건너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차가 나를 위해 먼저 멈출 일은 없으니깐. 


유심칩 사기.

러시아에는 Tele2, MTC, Мегафон(메가폰) 등과 같이 몇 개의 통신사들이 있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러시아의 영토가 넓은 이유에서 인지 지역에 따라 특정 통신사가 시장을 조금 더 많이 점유하고 있는 성향이 보이며 그에 따라 각 통신사마다 서비스 질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대도시인 만큼 여러 통신사들이 골고루 시장을 나눠가지고 있으며 어느 통신사를 선택하던 서비스 질에 있어서도 많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Tele2 가맹점에 가서 프리패이드 카드를 사기로 한다. 가맹점에 들어가서 판매원에게 프리패이드 카드를 달라고 여행 러시아어 책자에 쓰인 대로 무작정 읽는다. 번역이 잘못되어 있나 아니면 내가 잘못 읽는 건가. 안내데스크에 서 있는 판매원 두 명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나는 러시아어 책자를 그 둘에게 들이 대고 손가락으로 “프리패이드 카드를 하나 사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을 가리킨다. 그 둘은 책자의 문장을 읽어보지만 그래도 내가 뭘 원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듯하다. 판매원 둘 중 한 명이 대뜸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Do you want a phone card?” 나는 다행이다 싶었고 그제야 프리패이드 카드를 사고 싶다고 영어로 다시 말한다. 금방 알아들은 그는 자신이 런던까지 가서 얼마 동안 영어를 배우고 왔다고 으스대며 자신들의 상품을 영어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러시아의 모바일 요금은 대체로 저렴한 편이다. 예를 들어 Tele2의 상품은 한 달 동안 250 루블을 내면 150분 통화에 문자 50개를 보낼 수 있고, 5GB 모바일 인터넷을 쓸 수 있다. 판매원은 나에게 좀 더 값이 나가는 상품을 권유하지만 나는 가장 저렴한 상품(250 루블)을 선택한다. 판매원은 먼저 신분확인을 위해 여권을 요구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여권에 쓰여 있는 대로 내 이름과 생년원일을 적고 주소를 적을 차례가 오자 지금 머무는 호텔이 어딘지 주소를 묻는다. 그런데 나는 내가 머무는 호텔의 주소를 암기한 상태가 아니라 호텔 이름만 알려준다. 그러자 판매원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주소 란에 호텔 이름만 덩그러니 쓴다. 아마도 프리패이드 카드 계약서에 쓰는 주소는 그냥 형식적인 절차인가 보다. 그래도 혹시 나중에 호텔로 예상치 못한 영수증이 날아오는 게 아닌가 불안해서 이거 한 달만 쓰고 그냥 버려도 되는 거 맞냐고 되묻는다. 그는 그렇다고 한다. 추가로 영수증을 보내려면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요구하겠거니 싶어 나도 금방 수긍을 한다. 런던발 영어를 하는 판매원은 친절했다. 그는 내 핸드폰을 조작하며 카드를 개통해주고 크레디트 밸런스를 체크하는 앱까지 깔아주려 했는데 그 앱이 내 폰 세팅에서 지역제한을 받아 다운로드를 못하게 되어 포기한다. 나는 전화가 가능한지 또 인터넷이 잘 되는지 확인을 한 뒤 Tele2 가맹점을 떠난다. 이것이 러시아에 와서 호텔 체크인 다음으로 한 일이다. 다음 리포트에서는 내가 경험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숙소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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