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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Feb 15. 2019

상트페테르부르크 리포트 3

어디에 머물까

어떤 곳에 머무는 가에 따라 객지에서의 경험은 간직하고 싶은 추억 혹은 잊고 싶은 기억이 되기도 한다. 고급 호텔은 내가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호스텔 혹은 저가 호텔 투숙은 한 나라 문화의 일부분을 반영해 방문자에게 독특한 경험을 하도록 한다. 그건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러시아에 오기 전 숙소와 관련해서 불미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잔뜩 겁이 나 있었다. 이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외국인이 러시아에 7일 이상 머물면 호스트가 직접 관청에 가서 투숙객을 등록해야 한다. 이것은 소련 시대의 잔재로 사람들의 이주를 관리하게 위해서 도입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러시아의 법적 의무이다. 이 등록은 무료이지만 호스트가 직접 관청에 가거나 우편으로 서류를 보내야 한다는 수고를 동반한다. 등록을 하면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데 그 증명서를 여권과 함께 지니고 다녀야 한다. 왜냐하면 시내에서 경찰의 불시검문 시 이 등록증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불법체류 등과 비슷하게 복잡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이 좋지 않을 경우 2,000-4,000 루블에 해당하는 벌금도 물게 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문제없이 지내다 돌아간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나는 한 달이란 시간을 불법체류라는 불안함에 떨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러시아 출국이 확정되고 나서 일찍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하나 잡았었다. 예약 전 홈페이지에 안내된 바와 같이 이 등록은 호스트의 몫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10월이 다가오고 출국 준비를 하던 중 숙소 주인에게 등록절차를 확인차 문의했다. 그런데 그는 갑작스럽게 무료인 이 절차를 위해 6,000 루블 이상의 요금을 더 내라고 했다 (대략 10만 원 정도). 이 숙소의 주인이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의 약점을 이용해서 나에게 부당한 부가요금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에어비앤비에 공시되어 있는 규정을 알려주고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이 주인은 내가 영어로 물어보면 답장을 하지 않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어로 물어봤을 때에만 짧게 답장을 했는데 그로 인해 나의 속은 더 타들어갔다. 여러 번 외국인 친구를 초대한 적이 있는 내 러시아 친구 또한 이런 요금을 부당하게 생각했으며 가능하면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예약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예약만 한 상태에서도 이런 요금이 더 붙는데 실제로 입주해서 한 달을 보내게 되면 또 어떤 요금이 더 추가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예약 취소 절차는 그다지 쉽지 않았다. 약 2주 동안에 걸친 절차가 복잡했지만 다행히도 처음 예약한 숙소를 취소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다른 곳으로 숙소를 다시 예약할 수 있었다. 새로 찾은 숙소에는 예약 전 이 등록 절차에 관해서 미리 문의했고, 두 곳 모두 등록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안내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했다. 러시아에 7일 이상 머무는 다른 관광객들은 이러한 점을 잘 유의하여 나와 같은 불편함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10월 한 달 중 처음 10일은 관광지에서 가까운 3성급 호텔에서 머물고 나머지 21일은 학교에서 가까운 구역의 개인 아파트에 머물렀다. 나중에 내가 자주 가야 할 학교 사무실이 그 근처가 아니라 도시 반대편 캠퍼스인걸 알고 낭패를 봤지만 사실 머무는 곳이 모두 시내 중심가였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관광을 왔다면 니예브스키 대로(Nevsky Prospekt)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기를 권한다. 주로 전철역 Admiralteyaskaya, Nevsky Prospekt/Gostiny Dvor, 혹은 Ploschad Vosstaniya/Mayakovskaya 근처를 추천하는데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머물면 주요 관광지에 쉽게 도달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주변에 음식점과 카페 혹은 상점들이 많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숙박비는 유럽의 다른 유명한 도시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보통 하룻밤에 2-3만 원 정도 지불하면 화장실이 딸린 기본적인 개인실에 머물 수 있는 것 같다 (2018년 10월 기준). 


내가 처음 머문 호텔은 주요 관광지를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Spasskaya/Sadovaya/Sennaya Ploschad 역 근처였다.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관광지를 돌고 시내를 익혔다. 모두는 아니지만 몇 명의 호텔 직원이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체크인, 체크아웃, 혹은 문제가 있을 때 의사소통이 빨랐다. 내가 머물었던 침실은 더블침대가 하나 있는 작은 방이었는데 침대를 제외하면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스트레칭 같은 운동을 하기에도 힘들었다. 그래도 개인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딸려있는 것에 만족했다. 호텔의 장점은 내가 밖에 나간 사이 누군가가 매일 침대를 정리해주고 타월을 갈아주며 바닥을 쓸어준다는 것. 청소하는 아주머니께서 나의 무질서함에 놀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호텔에 머무는 동안 진심으로 이 서비스를 만끽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러시아 호텔이나 아파트 호텔을 보면 방은 개인실이지만 주방이라던가 화장실을 공용하는 곳이 많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련 시대 일반 가정집들도 이런 형태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공동 주방이나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익숙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머물었던 이 호텔에도 아침식사가 따로 제공되지는 않지만 층마다 공용 주방이 있어 간단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시설을 질서 지켜 서로 방해 주지 않고 자기 것처럼 깔끔하게 사용하고 정리하는 러시아 투숙객들이 인상 깊었다. 그들이 무엇을 요리해 먹는가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아침에는 오트밀을 우유에 끓여 먹고 저녁에는 도시락(Доширак) 컵라면을 먹는 투숙객도 보았다. 또 이 공용 주방에는 세탁기도 하나 달려있어서 필요한 세탁을 하기에도 좋았다. 


러시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국 도시락 컵라면


10일을 호텔에서 보내고 Ploschad Vosstaniya역 근처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넓어진 공간과 자유로움에 내가 그동안 작은 곳에 갇혀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복층 구조에 거실에는 소파와 식탁이 놓여 있고, 개인 욕실은 물론 부엌까지 설비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 부얶을 같이 사용하다 보면 접시 닦기나 타인과 식탁에 같이 앉아서 먹기 등이 신경 쓰이기 마련인데 이제 적어도 그런 걱정은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아파트만의 단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옆방 가족이 전기세를 오랫동안 지불하지 않아서 전기공사에서 나와서 전기선을 끊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까지 하루 동안 전기 없이 지내야 했다. 또 공용 세탁기가 고장 나서 일주일간 세탁을 하지 못하고 손으로 빨래를 빨아 입기도 했다. 내가 겪은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던 사건은 배수관 고장이었는데 덕분에 욕조와 변기는 물론 부엌의 물을 며칠간 사용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들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집주인은 금방 달려와서 문제를 해결해주려 노력했다. 그의 그런 태도가 고마웠지만 애초에 아파트가 부실하게 설비되어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또 호텔과 비교해서 일률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시설도 불만이었다. 예약 당시 사진에서 보는 바와 많이 다르게 침대 매트리스가 더럽고 형편없었으며 욕실에 배수가 너무 느려 샤워를 하다 보면 씻은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이런 문제들을 예약을 할 때 미리 알 수 없었는데 만약 호텔이었다면 방을 바꿔달라고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 아파트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했다 (이미 5,000 루블이나 되는 deposit도 지불하기도 했기에 무작정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힘들었다). 다음에 러시아에 가게 된다면 조금 돈이 더 들더라도 개인 아파트보다는 호텔에 머물고 싶다. 하지만 이런 사건 하나하나를 겪고 해결해 나가면서 현지인들과 교류할 기회도 늘어났고 러시아 사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인 집주인과 옆방에 살고 있던 우즈베키스탄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같은 현지의 사회문제들을 체감했다. 다음 편에는 러시아에서 내가 겪은 인종차별, 치안, 그리고 러시아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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