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꺽정 Feb 04. 2023

우리, 오늘부터 1일. 1일기야

매일 일기를 쓰는 직장인이 되었다



새해 목표에 늘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일기 쓰기'

처음에는 작은 결심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 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매년 12월 31일에 한 해 동안 빼곡하게 적은 일기를 읽으면서 지난 1년의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을 한 번 더 음미하는 나만의 리추얼도 생겨났다.


나는 원래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자칭 문학소녀였고, 학창 시절 내내 플래너나 노트 필기에도 진심이었지만, 매일매일 쓰는 일기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초등학생 시절, 개학 전 날 밀린 일기를 쓰느라 괴로웠던 아련한 기억. 5학년때였나, 일기를 쓸 때, 그날 날씨에 대해서 꼭 서술형으로 쓰라는 담임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때는 매일매일 일기를 쓸 자신이 없어서 엄마가 방학 내내 신문을 모아주시곤 했다. 그리고 날씨를 알 수 없는 날에는 "날씨가 어떤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내 마음이 흐림" 정도로 나의 불성실함을 얼버무리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튼 나에게 일기란 매일매일 써야 하는 너무너무 귀찮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중, 고등학교 때, 그리고 대학교 때는 아무도 일기를 쓰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참 좋기도 좋았다.




일기는 나에게 하루치의 기쁨과, 하루치의 슬픔

하루치의 고민과, 하루치의 결심을 상자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정리가 되어 나는 말끔하게 비워진다.

내일을 또 열심히 보낼 수 있도록,

내일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씩씩할 수 있도록


- 2019년 12월 31일 이꺽정의 일기 中




그렇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눈뜨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엇비슷한 하루들을 반복하게 되면서 시간이 훌쩍훌쩍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차올랐다. 이날은 뭐 했었지? 저 날은 뭐 했었지? 생각하다 보면 플래너에는 업무적인 일정만으로 가득하고, 그날 나에게 있었던 기억하고 싶은 일이나 감정들을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분명 새로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데, 의미 없는 반복처럼 느껴지는 게 참 슬펐다. 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는 사회 초년생의 하루하루가 너무 고달파서 슬며시 기댈 곳이 필요하기도 했다. 힘든 걸 친구에게 말하자니, 나만 힘든 게 아닐 테고, 가족들에게 말하자니, 걱정할 것 같아서 그냥 혼자서 슬슬 풀어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건조하고 바싹 마른 일상에, 예쁜 추억들을 하나씩 더하기 위해, 소중한 하루하루를 더 영롱하게 기억하기 위해, 그렇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게 벌써 7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개학 전 날, 밀린 일기를 몰아 쓰던 초등학생은 매일매일 일기 쓰는 직장인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추울 땐 추어탕을 먹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