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하루 Dec 20. 2020

‘이터널 선샤인’의 여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

찰리 카프먼이 각본을 쓰고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이터널 선샤인>. 이 영화는 ‘기억 삭제’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이용해 사랑을 정의하고 있다.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착하고 차분해서 좋았던 조엘(짐 캐리)이 따분하고 고리타분해서 싫어졌고, 조엘은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진 클레멘타인이 자기 멋대로여서 싫어졌다.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인 ‘라쿠나 사’에서 조엘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이에 화가 난 조엘도 이윽고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로 마음을 먹는다. 기억을 차근차근 지워나가는데, 최근의 기억일수록 다투고 상처를 주는 나쁜 기억들뿐이다. 그리고 오래된 기억일수록 즐겁고 행복한 좋은 기억들이다.

그러나 조엘은 기억들을 지우는 과정에서 이내 깨닫는다. 한순간에 지워버리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추억이라는 것을. 그래서 사라져 가는 추억들 밖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는 조엘은 “이 기억만은 남겨 달라”라고 절규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엘의 바람과는 달리 기억들은 삭제되고 만다.


“여자를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고 중얼거리던 조엘은 ‘몬탁’에서 클레멘타인을 만난다. 연인이었던 과거를 모른 채 둘은 다시 사랑에 빠져들지만, 이내 상대방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해한다. 그러나 둘은 주저하지 않고 그 길을 한 번 더 걷기로 한다. 단지 “okay”라고 말하면서. 다시 만난 둘은 이젠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빛을 지켜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설령 또 다툴 일이 생기더라도, 그런 삐걱거림조차 안고 갈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에 있어서, 되돌아보기가 요구되는 시기가 있다. 첫 만남의 설렘은 어느새 빛이 바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원망스러워 차라리 모든 기억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영원히 지워지는 건 이별보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그리고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의미일 지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