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제품이 국내에 수입되는 모습을 보면, 보통 국내 총판 계약을 한 에이전트가 있고 그 에이전트가 허가나 신고 등 필요한 절차를 하고 국내 마케팅을 책임지는 대신 일정 기간 독점 수입을 보장하는 형식이 많다.
그런데, 본사에서 아무리 독점 수입을 보장해주어도 직구나 구매대행, 타 업체에 의한 병행수입이 성행하여 수 년간 공들인 총판 에이전트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기 일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정상품인 이상 독점수입권자의 수입 뿐만 아니라 병행수입업자의 수입도 허용하는 것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경향이다.
진정상품의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우리 법원은 상표제도는 원래 상표의 기능보호를 통하여 상표권자의 신용과 영업질서를 보호하려는 제도이므로 상표의 기능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진정상품병행수입이 허용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병행수입을 금지하는 경우 결과적으로는 다국적 기업만 보호하는 격이며, 소비자의 상품선택기회를 확대할 필요도 있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병행수입을 허용하더라도 원 상표권자의 이익을 해하지 않으며, 소비자들에게도 상품의 출처 (원상표권자)에 대한 오인ㆍ혼동 우려가 전혀 없으므로 상품 출처 표시라는 상표의 본래적인 기능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책적으로도 병행수입을 장려하여 경쟁을 촉진하여 소비자의 상품선택기회를 확대하고 물가 조정에도 기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진정상품
진정상품(genuine goods)이란 정당상표권자에 의하여 상표가 부착되어 배포된 상품을 말하는데, 좀더 정확하게는 i) 실질적으로 출처의 동일성이 만족되면서 ii) 또한 국내외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말한다. 진정상품인 이상 병행수입은 허용된다.
‘실질적으로 출처가 동일하다’는 의미는 국내외 상표권자가 동일하거나 또는 법률적ㆍ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계열회사-주식의 30% 이상을 소유하면서 최다출자자인 경우-거나 수입대리점 관계인 경우 등) 경우를 말한다.
반대로 출처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란 예를 들어, 국내에 외국 상표권자와 전혀 무관한 별도의 상표권자가 존재하는 경우이다. 상표는 선택의 문제이므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가 우연의 일치로 국내와 외국에서 서로 다른 상표권자에 의해 선점될 수 있다.
이때에는 속지주의 원칙상 자국 상표권자 보호가 우선이므로 당연히 진정상품으로 보지 않으며, 외국 상품 수입이 국내 상표권 침해가 될 수 있다. 병행수입도 아니다.
‘국내외 동일한 품질(quality의 개념이 아니라 속성의 의미)의 제품’이라는 의미는 외국 본사의 제품이 그대로 국내에 수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국내외 제품의 품질이 다른 경우’란, 예를 들어 국내외 상표권자가 동일하기는 하나 국내에는 전용상표권자가 있고 그 자가 국내 전용 제품을 직접 제조까지 하여 판매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때에는 국내와 외국의 제품이 서로 다르고, 국내 전용사용권자의 보호가 우선하므로, 외국 제품의 병행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K.SWISS는 외국 본사에서 상표사용에 대한 허락만 받고 국내 상표권에 대한 전용사용권을 설정한 후 국내용으로 따로 제품을 만들어 국내에서만 판매했다. 이런 경우는 외국 제품과 국내 제품이 다르고, 국내 전용사용권자 보호가 우선이므로 병행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편, 위조상품인 경우에는 어떤 경우에도 병행수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수입업자의 국내상표등록
국내외 상표권자가 다른 경우에는 병행수입이 금지된다는 것을 이용해서, 한때 많은 독점수입업자들이 본사와의 합의 하에 국내에는 독점수입업자 명의로 상표등록을 해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국내 상표권자가 겉으로만 상표권자일 뿐 실질적으로는 수입대리점에 불과하여 외국의 상표권자와 동일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병행수입을 저지할 수 없다.
본사와 국내 독점수입업자가 공동으로 상표권을 등록한 경우에도 공동상표권자인 국내업자는 수입업자에 불과하여 실질적으로 동일인 관계에 해당하므로 역시 병행수입을 저지할 수 없다.
가끔 국내 독점수입업자의 존재를 알면서도 상표가 미처 등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틈타서 상표등록을 해놓고 국내 독점수입업자에게는 상표권 침해 금지를 요청하는 한편 본사에는 독점계약을 강요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모방상표등록은 정당상표권자인 외국 본사의 이의신청이나 등록무효심판을 통해 등록이 저지될 수 있으며, 또한 상표등록이 무효되기 전이라도 국내 상표권자가 단순 수입업자라면 독점수입업자의 수입을 막을 수 없다.
병행수입업자 행위 제한
다만, 병행수입업자의 모든 행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i) ‘매장 내부 간판, 포장지 및 쇼핑백, 선전광고물’은 영업표지로서의 기능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여기에 상표를 표시하는 것이 영업주체혼동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ii) ‘사무소, 영업소, 매장의 외부 간판 및 명함’은 영업표지로서의 기능을 갖는 것으로 보아 상표 표시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Burberry 사건에서 병행수입업자가 Burberry를 외부 간판으로 달아 영업하면서 명함에도 Burberry를 표시하는 등 마치 독점수입업자나 본사의 국내 대리점인 것처럼 영업한 경우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하여 금지하였다.
또한, 진정상품을 구매해서 임의로 그 상품을 소분하여 재포장 후 판매한 경우 비록 그 내용물이 상표권자 등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상품의 출처표시 기능이나 품질보증 기능을 해칠 염려가 있으므로, 상표권 내지 전용사용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적도 있다.
병행수입을 부당하게 저해할 경우 불공정행위에 해당
이렇게 진정상품의 병행수입이 상표권 침해가 아니고 통관 보류도 안 되는 것만으로도 독점수입업자로서는 충분히 억울한데, 공정거래위원회의 <병행수입에 있어서의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고시>는 여기에 더 나아가서, 병행수입업자의 행위를 부당하게 저해하는 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여 독점규제법에 위반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병행수입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독점수입업자가 병행수입을 방해하거나 저지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래의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본다.
1. 병행수입권자가 진정상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경우 외국상표권자의 해외거래처에 대하여 외국상표권자로 하여금 제품공급을 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2. 병행수입품의 제품번호 등을 통하여 그 구입경로를 알아내어 동제품을 취급한 외국상표권자의 해외거래처에 대하여 외국상표권자로 하여금 제품공급을 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3. 독점수입권자가 독점수입상품을 판매함에 있어 부당하게 병행수입품을 취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자기의 판매업자와 거래하는 등 판매업자에 대하여 병행수입품을 취급하지 않도록 하는 경우
4, 독점수입권자가 독점수입상품을 판매함에 있어 자기의 판매업자중 병행수입품을 취급하는 판매업자에 대하여는 타판매업자에 비하여 현저하게 불리한 가격으로 거래하거나, 수량·품질 등 거래조건이나 거래내용에 관하여 부당하게 차별적 취급을 하는 경우
5. 독점수입권자가 독점수입상품을 판매함에 있어 병행수입품을 취급하는 사업자와는 거래개시를 거절하거나 그동안 계속 거래하여 오던 자기의 판매업자중 병행수입품을 취급한 사업자에 대하여 병행수입품을 취급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제품의 공급을 중단하는 경우
6. 독점수입권자가 자기의 판매업자(도매업자)로 하여금 부당하게 병행수입품을 취급하는 소매업자에게는 독점수입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