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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Apr 09. 2021

폐막식 축포처럼 꽃비가 내렸다

세상어디에도 무의미한 존재는 없지

불을 끄고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목구멍이 불타오르고, 눈물이 흐르는 날이 종종 있다. 아이가 들을까 숨을 죽이며 잠자는 아이의 작은 등짝에 얼굴을 파묻고 자기도 했다. 가끔 팬티에 똥도 묻히고 치과 가기 싫다고 떼 부리는 철딱서니 없는 그 애가 뭐라고 든든하고 위로가 되었다.

센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여린 꽃잎들은 하늘하늘 춤추며 떨어져 나왔다. 나는 '바람에 꽃 잎이 더 이상 붙어있질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날 여기저기 날리는 꽃 비를 보고 있으니 그것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폐막식의 축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어김없이 배가 고팠고, 달이 뜨면 잠이 왔다. 단지 내에 쪼르르 같은 날 심은 조경수 중 하나가 적응을 못하고 뽑혀 나갔지만 나머지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무성해져 어느 자리에 죽은 나무가 있었는지 흔적도 없었다. 죽음으로 삶이 흔적 없이 지워지고, 생명으로 또 다른 삶이 시작되거나 지속되는 것이 이처럼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적이 있었던가? 

슬픔은 또는 죽음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삶과 죽음을 진실되게 들여다보게 한 선물이 되었다. 때로 나는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고 조급해하기도 했고, 어차피 인간은 죽으니.. 하며 손을 놓기도 했다. 어떻게 살면 좋을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며 두렵고, 외롭고,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된다.


아빠의 주민등록증을 갖고 싶었지만 반납을 해야했다.

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를 하고, 주민등록증을 반납했고, 아빠의 재산을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빠 스스로 가장 많이 결제했던 것은 병원비, 검사비였는데 평생을 벌어 온 돈의 일부는 전세 보증금으로 넣어두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사용하며 줄어드는 잔고를 보며 조마조마했을 마음이 느껴진다. 

'이제 3년 치 쓸 돈이 남았구나''이제 2년 치 쓸 돈이 남았구나' 그러다가 병원비와 검사비가 많이 나간 그 달 '이제 1년치네. 빨리 가야겠네' 하며 무남독녀 외동딸에게 꼭 남겨주고 싶었던 돈은 병원비로 안쓰고 통장을 헐기 직전 줄 수 있게 되었으니 안도의 한 숨이 마지막이었겠지. 

죽은 나무가 뽑힌 자리엔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생명을 피웠다. 의미 중독자인 내가 또 중얼거렸다. '세상 어디에도 무의미한 존재는 없지'


세상 어디에도 무의미한 존재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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