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문화 전성기-3
<디지몬 테이머즈>는 <파워디지몬>, <어드벤처>와는 판이하게 다른 노선을 택하면서도, 이전 시리즈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디지털 세계와 상호작용’ 혹은 ‘생각하는 데이터와 소통’을 주제로 전면에 내세운 것이 바로 <테이머즈>인 것이다. 때문에 만화적 모험서사의 전형적인 구조를 차용한 이전 시리즈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좀 더 사실주의적 성격에 가까운 서사를 내세운다.
디지털 월드를 감시하기 위해 세워진 인간집단 ‘휴프노스’와 디지몬의 반목은, ‘생각하는 데이터와 소통’이라는 주제를 확대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선택받은 아이들과 파트너 디지몬과의 사적인 관계양상으로 축소되었던 주제를, 인간-디지몬 전체로 확장한 셈이다. 무엇보다 <테이머즈>에서는 악당이 이전처럼 단순한 ‘절대악’으로만 다뤄지지 않는다. ‘데바’를 운용해 인간세계를 침탈하게 만든 ‘주작몬’은 디지몬이 인간의 실험도구로 여겨지는 현실에 반동한 것이다. 카토 쥬리(황주연)의 레오몬을 살해한 ‘베르제브몬’은 극중 쥬리를 위해 회심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테이머즈>는 인간세계에서 배격된 ‘타자’를 주체화하는데 주력한다. 공포적 존재로만 상징되던 바이러스 디지몬에게도 입체성을 부여해, 인간과 ‘생각하는 데이터’의 거시적인 정치관계까지 그려낸 것이다.
그러나 이전 시리즈와 <테이머즈>는 ‘디지몬’을 그저 인간처럼 생각하는 존재, 혹은 그 사고방식이 충분히 인간감수성으로 ‘공감’가능한 존재로 그렸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기술적인 발전 이후에 탄생한, ‘데이터’로 구성된 생명체가 인간 혹은 다른 생명체와 비슷한 사유구조를 갖고 있을 것인가, 그 목적성과 생태계가 유기체와 판이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는 작품에서 여전히 제외되고 있다. 그렇게 ‘소통’의 주체들은 사유구조가 ‘인간’과 유사해야함을 무의식 중 드러낸다.
그렇다면 <테이머즈>는 이전 시리즈에서 미약하게 드러났던 주제를 구체화한 작품일 뿐일까? 만약 거기서 그쳤다면 <테이머즈>는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프로그램의 목적성으로만 존재하는 ‘데-리퍼’를 등장시킴으로써 <테이머즈>는 기술혁신 이후에 다가올 ‘새로운 프로그램’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뛰어나게 구현했다. 심지어 디지털 혁명에 따른 디지몬의 출현은 누가 의도했는지 불분명한 반면, 데-리퍼는 목적이 뚜렷하게 창조되었다.
데-리퍼는 창조자인 아버지(인간)를 살해하려는 창조물이다. 그러나 신화 속이나 타 창작품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창조물과 달리, 데-리퍼는 아버지를 뛰어넘어 ‘재창조’하려는 목적 따윈 없다. 데-리퍼는 명확히 ‘반생명’을 목표한다는 점에서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의 생동방식을 위배한다. 카토 쥬리의 자기파괴 욕망을 매개삼은 이유 역시, 데 리퍼의 의지가 생명파괴에 있기 때문이다.
데-리퍼는 ‘생명’을 반하는 완전히 다른 사유개체로서 의미를 갖기도 한다. 데-리퍼는 프로그램으로 생산되었기에 인간과 같은 유기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통양식을 갖춘 데이터인 디지몬 같은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디지몬과 인간이 감성과 이성을 복합한 판단능력을 따른다면, 데-리퍼는 자신에게 최초로 주어진 목적을 끊임없이 확충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인식은 정확히 생명활동과 반대되는 지점에 있다.
20세기 철학자 아도르노는 일찍이 '도구적 이성'이라는 개념으로 세계대전과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설명했다. 효용적인 목적성에만 다다르려는 근대의 정신이, 인간을 도구화하고 끝내 비극적인 학살을 낳았다는 것이다. 권력을 차지하고 국가를 기능적으로 통치하려는 결과가 전체주의와 수용소를 만든다. 데-리퍼 역시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효용적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데-리퍼는 디지몬을 홀로코스트 하기 위해 창조되었으며, 종국에는 홀로코스트 개념 그 자체가 된다. 목적을 위한 기능적 효용성만을 증대시킨 세상은 반생명적 공포만 남을 것이라고, <디지몬 테이머즈>는 데-리퍼의 모습으로 토로하고 있다.
<어플몬>에서는 디지몬 대신 ‘어플몬’이라는 존재가 새로이 등장한다. 어플몬은 어플리케이션과 인간을 연결하는 정보의 바다 틈에서 거주하는 존재들이며, 공식설정상 ‘인공지능’을 갖춘 생명체이다. 디지몬이 디지털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대상이라는 설정뿐, 인간이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크게 연관성이 부각되지 않은 반면, 어플몬은 각자 맡고 있는 어플에 걸맞은 특기와 속성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커다란 주제가 ‘어플몬과 파트너 인간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어플몬은 기존 디지몬의 노선을 따라간다. 이 시리즈를 결정적으로 차별화하는 존재는 최종악당이자 인공지능 결정체인 ‘리바이어던’이다.
데-리퍼가 기술적 효용성만을 증식시켜 파괴만을 열망하는 것과는 달리, 리바이어던의 목적은 인간을 더 진보된 개체로 ‘진화’시키는데 있다. 그리하여 리바이어던은 ‘포스트 휴먼’ 세계를 주인공들 앞에 현상하는데, 이 세계에서 인간 전부는 완벽한 정보전달을 수반하는 개체로만 남는다. 리바이어던이 구축한 ‘인간이 데이터화된 세상’은 각 개체가 결국 리바이어던의 정보전달체로 통합되는 세상인 것이다.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인간 위에 군림할 때, 인간 역시 진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리바이어던은 역설하고 있다.
리바이어던은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을 취약점이라 판단하고 그것을 제거한 인간형태가 진화된 개체임을 강조한다. 감정은 인간의 통합을 가로막고 끊임없이 마찰과 대립을 생산한다. 이는 마치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서 ‘진화된 인간이 하나의 통합된 정신체’로 그려지는 결말이나, 미셸 우엘벡이 『소립자』에서 묘사한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게 된 신인류의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어플몬과 두 작품의 공통점은, 바로 ‘현생인류의 실패’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일자리 침탈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는 한편으로 인간이 그저 ‘인적자본’화 되어 있다는 것, 경제적 활동만이 인간 활동의 전부를 짊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경제활동이 인간 전부를 차지한다는 건, 결국 인간이 효용성과 이익증대의 대상으로만 판단된다는 것이며, 인간의 활동 역시 물질적 이윤 추구에 매몰됨을 의미한다.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경제활동을 대체했을 때, 인간 그 자체가 대체될 수밖에 없다.
리바이어던의 세계에서 인간은 주체가 아닌 물화된 개체에 머문다. 진정한 주체는 리바이어던 자신뿐이며, 인간은 초월적 인공지능인 리바이어던의 사고에 복종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정보전달체로 통합된 인간은 그저 리바이어던의 사고확장을 위한 '어떤 물질'일 뿐이다. 리바이어던은 ‘호모 이코노미쿠스’만 남은 세계에서 한 발 앞으로 더 나아가, 인간이 정보전달체로서만 행위 하는, 인간이 완전히 물질화된 세상을 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