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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밤 Nov 03. 2021

마왕의 욕심

'15년 해양경찰 가거도 헬기 추락

 숭고한 희생을 곁에서 겪고 보니 지금도 제자 사랑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붓지 못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어린아이 한 명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사랑과 열정 본받겠습니다. 지금도 해무, 거친 파도와 싸우고 계시는 여러분, 힘내십시오. 그리고 감사합니다. - 편지글 일부




‘15.03.13(금) 19:30 서해본부 상황실로 접수된 응급환자 신고.

국토 최서남단인 가거도에서 맹장염에 걸린 어린이 응급환자가 발생했다.

구름은 2,000ft보다 낮았고 기상이 나쁜 상황에서도 목포 해양경찰 소속 헬리콥터는 구조를 위해 출동하였다. 같은 시각 1박 2일로 출장을 다녀온 나는 장거리 운전에 녹초가 되어 일찍 잠들었다. 깜박하고 난방을 계속 틀어놓았는지 건조한 공기는 목을 긁는 것만 같았다. 깨어나니 3시간이 지나있었고 저녁 10시쯤이었다. TV 리모컨을 조작하던 나는 몸이 굳어버렸다.


 ‘가거도 인근 해상 해양경찰 소속 헬리콥터 추락’ 불현듯 스치는 생각들 때문에 가거도를 검색해보았다.

서해에 있는 작은 섬 그렇다면 해양경찰 목포항공대에서 출동했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현재 헬리콥터 동체와 승무원들을 수색 중이지만 기상이 나빠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정비사는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정비사의 사진과 이름이 나온다. 믿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이틀 전까지 통화하던 선배의 사진과 이름이다.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선배는 지난해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순간 연결음은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처럼 들렸다.   

 




어두운 늦은 밤, 바람을 가르며 말 타는 이 누구인가?

그는 아이를 품에 안은 아버지다. 안전하고 포근하게 안고 말을 달린다.

아들아, 왜 그렇게 무서워하며 얼굴을 가리느냐?

아버지,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망토를 두르고 왕관을 쓴 마왕이요. 아들아, 그건 그저 엷게 퍼져있는 안개란다.

(마왕)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구나

모래사장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있고, 우리 어머니는 황금 옷도 많이 있단다.

아버지 저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진정하거라, 아들아. 걱정 말아라, 단지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란다.

(마왕) 너무 사랑스럽구나, 너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단다.

만약 오기 싫다면 억지로라도 데려가야겠다!

아버지 마왕이 제게 상처를 입히고 있어요

아버지는 공포에 질려 말을 더 빨리 몰아댄다. 신음하는 아이를 팔에 안고서,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랑하는 아들은 이미 품속에서 죽어 있었다.


  가곡이 끝나고 절박한 부르짖음에도 선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인양된 동체사진





  며칠 뒤 청와대 국민신문고 게시판에 가거도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글이 올라왔다. 아픈 제자가 헬리콥터를 타고 잘 갔을 거로 생각했던 담임교사는 사고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방파제로 뛰어나왔다고 한다. 아이는 헬리콥터 대신 배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이후 사고현장이 내려다보이는 학교에서 쓴 담임교사의 손편지는 슬퍼하는 사람들과 나에게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담임교사의 편지글 일부

 비통한 아픔을 겪게 되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사고 당일 늦은 시간까지 학교 업무로 인해 근무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마을 항으로 향했습니다. 너무나 긴박하고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 복통을 호소하는 제자와 함께 군함으로 이동하면서, 거친 파도와 싸우며 현장을 수습하고 계신 많은 해경 대원과 해군을 보았습니다. 고생하시는 분들 덕분에 아이는 무사히 병원으로 이송되어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중략)


 이곳 가거도초 아이들은 지역적인 특성으로 인해 유난히도 해양경찰과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양경찰에서 응급헬기로 위급한 부모님을 이송하던 중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한 아이, 임신한 어머니가 악천후로 이해 헬기 대신 경비정을 타고 가다가 출산해서 바다가 고향인 아이, 멀고도 아득한 섬마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과 사연이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중략)


 숭고한 희생을 곁에서 겪고 보니 지금도 제자 사랑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붓지 못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인 어린아이 한 명을 살리기 위한 숭고한 사랑과 열정 본받겠습니다. 지금도 해무, 거친 파도와 싸우고 계시는 여러분, 힘내십시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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