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해준다는 건 말이지
아이의 축구경기가 토요일마다 있다. 아이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뛴다. 축구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아이는 게임도 축구게임, 인생의 교훈도 축구에서 찾는 편이다. 축구에서 이기면, 특히 내가 골인하어 득점을 얻으면 그 날은 최고의 날이 된다!
그 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그래도 축구 경기는
진행되었고, 처음 만나는 팀이라 전반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아이는 수비수로 열심히 막았고 전반전은 0:0
후반전부터는 미드필터로 뛰었는데 공을 보면 다가가서 적극적으로 하기보다 몸을 사리는 느낌이었다.
“더 더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라고 말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아이는 더 다가가려고 했다.
“쫌 만 더, 적극적으로! 쫌 만!”
또 말했더니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아차차.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 그저 말로 조언처럼 포장한 지적을 하고 있는 꼴이라는 걸 확 깨달았다.
그저 예뻐해준다는 건, 자기답게 살아가는 아이를 그저 받아주는 거였다.
엄마 이거 이쁘지? 하고 가져온 아이의 그림을 두고
여기에 좀만 더 이쁘게 색칠했음 좋았겠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물개박수로 참 이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라고 물으면서 아이의 그림에 담긴 마음과 정성, 생각을 알아차려주는 거다!
내가 어릴 적, 내가 뭔가 해오면 부모님은 바쁘셔서시쿤둥한 반응을 보이거나 좀 더 뭘 하면 좋겠다는 조언를 해주셨다. 내가 조금만 더 잘 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조금만 더, 이것만 더 의 요구는 늘 다가왔다. 늘 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금만 더 잘 할 걸! 하는 후회. 하지만 그 때도 지금도 그게 최선을 다한 것이 많다.
아이를 예뻐해준다는 건, 더 요구하지 않는거다. 그 자체를 받아주고 기뻐해주는 거다. 축구 경기가 4:0으로 마치고 가장 속상한 건, 경기를 뛴 우리 아이다. 내 아무리 섭섭해도 아이만큼 할까. 그래서 고생했다고, 최선을 다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다.
다음에 더 잘 해서 이기자는 말은 접어두었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를 그저 예뻐해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