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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May 28. 2024

저기요, 지나가는 사람들 다 누구세요?

제작 PD로 살아남기 11 :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씬에서 살아남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군중들이 많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지하철을 탈 때나, 아니면 큰 놀이공원을 가서 많은 사람들과 즐긴다던지, 길거리에서 추격전을 벌인다던지,

사극에서는 전쟁을 하거나 저잣거리가 나오는 장면이 그렇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지나다니는 저 많은 사람들은 주인공이 무엇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갈 길만 가기 바쁘다.

또는 자기 할 일을 하던가, 아니면 주인공 뒤에서 자기가 해야 하는 역할에 충실할 따름이다.

바로 옆에서 연예인이 지나다니고 있는데도 흘끗 곁눈질로 볼 법도 한데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간혹 이벤트가 발생해 큰 소리가 나면 가끔 돌아는 보지만,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지 싶을 정도다.


저기요, 지나가는 사람들 다 누구세요?

그렇다. 그들은 ‘보조출연자‘다.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 앞에서 폰 보는 사람 모두 보조출연자. / 출처 :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리가 극 중에서 보는, 주인공 옆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보조출연자’다.

흔히 예전에는 ‘엑스트라’(Extra)라고 불렸는데, 요새는 엑스트라라는 말 대신 보조적 의미의 출연을 맡는다고 해서 ‘보조출연자’라고 부른다.

(엑스트라는 말 그대로 주조연 외 나머지 잉여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해서고, 현장에 존재하는 모든 출연자를 존중하기 위해서도 있다.)


현장에 도착하면, 보조출연자들은 극에 맞게 옷을 갈아입는다.

사극이라면 사극에 맞게, 시대극이면 시대극에 맞게 입기도 하며,

현대극이라도 현재 극 중 시점에 맞게 (여름이면 여름, 겨울이면 겨울)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보조출연자들은 흔히 ‘보조출연 반장’이라는 사람에 지시에 움직이게 되는데,

이들은 반장의 지시에 따라 동선을 맞추고 행동을 맞춘다.

길거리라면 걸으면서 통화하기도 하고, 커플 혹은 친구로 설정해 서로 이야기하면서 가기도 하고

놀이공원이라면 가족으로 보여서 같이 걸어가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친구들처럼 놀면서 가기도 한다.

사극이라면? 장군님을 둘러싼 모든 병사와 병졸들이 전쟁을 위해 모두가 한 편이 되어 싸우기도 하고,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행상에서 물건을 사는 아낙네, 지게꾼, 주모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이 보조출연자들 덕분에,

극의 장면을 자연스럽게 받쳐주면서 동시에 주인공이 있는 장면을 실제처럼 보여줄 수 있다.


보조출연자들이 많이 나오는 날은 제작 PD가 바빠진다.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감독과 조연출, PD가 함께 모여 보조출연자들을 몇 명을 쓸 것인지 심도 있는 토론을 한다.


“100명을 쓸까? 200명이 낫겠지?”


보조출연자들은 1명당 돈이 나가기 때문에,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제작비가 나가게 된다.

하지만 PD들도 충분히 알고 있다.

배경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장면이 풍성해지고 더 멋있게 보인다는 사실을.

하지만 PD로서 한도 끝도 없이 용납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해진 예산을 거기다 몰빵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감독님, 100명으로 하시면 어떨까요?”


화면에 나오는 주인공을 제외한 모두가 보조출연자 / 출처 : 넷플릭스 <닭강정>


-

가까스로 100명으로 감독과 타협했으니, 이제는 보조출연 반장과 타협할 때다.

사극인지 현대극인지에 따라서 콜타임 (Call Time : 현장에 도착해서 준비하는 집합시간)을 정해야 한다.

보조출연자들은 1명당 시급으로 인건비(출연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1분 1초가 모두 돈이다.

100명을 현장으로 부르려면 차량도 빌려야 한다.

차량은 버스를 부를지, 승합차량을 부를지, (차량마다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

해당 차량을 부른다면 또 몇 대를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이 돌아간다.

보조출연 반장과의 밀당 끝에 중간 지점에서 타협했다.

이제 촬영일이 가까워온다.



당일이 되면 보조출연자들 집합에 맞춰 현장을 방문한다.

100명의 의상과 메이크업과 소품을 준비해야 하는 의상팀과 미용팀, 소품팀을 위해 간단한 식사도 준비한다.

100명이다 보니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꽤 걸린다.

정해진 촬영 시간에 맞춰야 하다 보니 의상팀, 미용팀, 소품팀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준비 시간 덕분에, 아직 촬영도 시작하기 전인데 모두가 벌써 탈진 직전이다.


드디어 모든 스탭과 배우, 보조출연자들이 모두 스탠바이가 완료되었다.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보조출연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반장의 큐 사인도 함께 떨어진다.


“움직여!”


그전에는 마치 영화 속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있던 보조출연자들이 갑자기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동선이 겹치지도 않고, 모두가 드라마 속 한 장면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모니터를 같이 바라보고 있던 순간, 나도 모르게 ‘멋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정신 차리자.

모니터 안에 있는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돈이라는 사실을.


보조출연자들의 기본 시간이 점점 가까워온다.

(**보조출연자들은 일 8시간이 기본시간이며, 이후 시간당 추가 금액을 지불한다.)

부디 보조출연자들을 기본 시간 내에 촬영을 끝마쳐,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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