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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Watney Sep 05. 2023

미국 박사 과정으로의 도약 (1)

모든 게 서투른, 그리고 모든 게 처음인 

[출국 및 미국 도착]

 2023년 7월의 끝자락, 그 날의 나는 정겨운 집을 떠나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헤어짐, 그리고 유학을 준비하는 와중 많은 조언을 구했던 친척 분들과의 짧은 만남과 식사, 그리고 헤어짐의 장이 있었다. 그로부터 수십 여 시간 후, 나는 여전히 같은 7월 31일이었다. 한국은 이미 8월 1일이 되었지만, 내 시간은 내가 한국에서 출발했던 7월 31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제는 정말 미국에 왔음을, 날짜변경선을 지나왔음을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의 1초나, 미국에서의 1초나 같은 1초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미국에서의 1초가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느리게 흘러간 느낌이라고나 할까.


 학기 시작이 3주 정도 남았을 시점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나를 pick-up하러 나와주신 선배 덕에 차량으로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고 빠르게 짐만 두고 학교로 이동하여 학생증을 발급받은 후, 한민마트와 시중 마트에 들려 필요한 생필품들을 구매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드넓은 미국에 도착한 이후 다시 혼자가 된 순간이었다. 적막이 흐르는 아파트 내에는 literally 아무것도 설치되지 않은 방 뿐이었고 당장 필요한 침대 조립부터 옷장, 책상 조립 등 고난의 시간이 이어졌다.



[Mission -  Meetings with professors]

 미국에 도착한 이상, 가장 중요한 스텝은 교수님들을 만나뵙고 연구실 서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또 연구실 구성원 중 한국인이 있다면 최대한 적극적으로 찾아가 질문하고 정보를 얻고자 했다. 가장 치명적으로 느껴진 건, 한국에서 영어를 못 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여기서는 정말 영어를 잘 하지 못 한다고 진심으로 느낀 순간이 매일매일 이어졌다는 것. 한국인 선배들을 만날 때는, 그나마 익숙한 언어로 편하게 많이 물어볼 수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에 있던 시절부터 가장 관심을 갖고 컨택을 해왔던 교수님과의 약속을 잡았다. 기존에 ZOOM으로 뵌 적이 있기는 하나, 대면하는 건 처음이었고, 무엇보다도 내 짧은 영어 실력과 부족한 전공 실력이 염려되었다. 특히 석사 때 했던 것과 분야를 바꿔서 가져가려다 보니 해당 연구실에서 수행하고 있는 연구 관련 백그라운드가 부족하다는 건 좀 아쉽게 느껴졌다. 석사 졸업 이후, 어차피 미국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니 그냥 마음편하게 놀자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기는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니. 딱히 후회가 되지는 않았지만, 당장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좀 막막하긴 했다.


 약속 시간보다 살짝 일찍 도착해서 교수님 오피스 위치만 확인하고 딱 시간 맞춰서 들어가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피스 위치를 잘 확인했고, 나오는 길에 교수님을 떡하니 마주쳤다. 얼떨결에 악수를 하고 예정된 시간보다 빠르게 면담을 시작했다. 내가 기존에 했던 연구들을 소개해 달라고 하셨다. 여기서 살짝 당황했다. 기존 경험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예감했지만, 이전에 한번 연구 내용을 설명드렸던 바 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혹시 몰라서 해당 자료들이 들어있는 랩탑을 챙겨가기는 했지만, 따로 발표 준비를 하지도 않았고, 몇 달 동안 공부를 놓은 건 물론이고 석사 졸업한 지도 시간이 꽤 흘러 과연 설명을 잘 할 수 있을 지도 걱정되었다. ZOOM으로 면담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몇 달 전의 일이니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도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다소 버벅이면서 입을 열었다. 그 교수님 역시 석사와 박사 연구 주제가 매우 달랐고, 그 분의 석사 분야가 내 석사 분야와 일정 부분 겹치는 영역이 있어서 그 부분을 언급하면서 시작했다. 두 번째 슬라이드 즈음 넘어갈 때, 연구실 학생들이 들어와 같이 참관했다. 내가 갖고 있는 skillset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학생이 내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어려운 질문은 아니고 그냥 개관적인 질문이었던 지라 편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한창 미국 박사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의 나였다면, 이 자료를 수 십번은 활용하며 인터뷰 때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받았던 지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을 부분들도, 기억이 긴가민가 하면서 순서가 조금씩 꼬이거나 물리적 설명이 곧잘 원활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교수님이나, 그리고 연구실 학생들이나 현재 쌓고 있는 백그라운드가 내가 석사 때 해왔던 것과는 달라서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는 것 정도. 


 우여곡절 끝에 내 백그라운드 설명을 끝마칠 수 있었고, 교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우리 연구실은 computation보다는 experimental approach 위주인 데 이 쪽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애초에 박사 과정을 하면서는 실험 쪽 연구를 염두에 두면서 왔기 때문에 당연히 it is my expectation for my degree라고 답변하고 내 연구 발표 자체는 끝을 맺었다. 그러고 나서는, 연구실 학생들의 발표를 참관하게 되었고, 정말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완벽하게 아는 게 없었다. 석사 때 공부하고 연구했던 scale과 이 곳에서 다루는 scale이 완전히 다르다보니, 내가 알고 있던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게 보편적일 뿐더러, 내가 공부해야할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학생들의 발표가 다 끝난 이후에는 그 중 두 명을 따라 실험실 구경을 나섰다. 접해보지 못 한 장비들이 굉장히 많았고, 아는 부분이 없었기에 그냥 별 생각없이 지켜보았다. 그 중 한 학생이 매우 친절해서, 자기 박사 첫 학기 때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많이 알아듣지 못해 다소 의기소침해 있던 나를 엄청 북돋아 주었다. 


"이 학교에 온 모든 학생들은 smart하다. 너 역시 당연히 smart할 거다. 네가 여기서 만나게 될 모든 학생들이 smart하고 그들과의 collaborative work를 통해 엄청나게 배울 거다. 네가 어떤 백그라운드를 가졌든, 네가 어떤 연구 분야를 맡게 되든, 결국 점점 더 잘 알 게 될 거고, 좋아하게 될 거고, 끝내는 잘하게 될거다"라는 말을 해줬다. 


 그때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는 나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 데, 처음 보는 이 백인 학생이 나를 치켜세워주고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말을 해주니 나도 모르게 착각에 빠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 자체가 굉장히 친절하고 남들을 잘 띄워주는 말을 많이 한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이후 참석한 여러 미팅들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so sweet!", "yeah, that certainly makes sense!"와 같은 리액션을 받다보니 크게 진정성(?)이 있든 없든 많이들 으레 하는 말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물론 내가 정말로 나중에 점차 성장해서 진정으로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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