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에게는 ctrl+z가 없다.
그렇다. 유행은 돌고 돈다. 이건 불변의 진리이다. 이것은 마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나팔바지나 김병지 머리가 다시 유행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매번 그래 왔듯이 '설마 저 유행이 다시 돌아오겠어?'하는 의문을 들게 하는 것들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디지털 홍수 속에서 아날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도 그중 하나이며 오늘 말해보고 싶은 것은 필름 카메라이다.
내가 기억하는 필름 카메라에 대한 기억은 '절대로 뚜껑을 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싫증을 느낄 때쯤 '있어'보이는 취미를 하나 만들고 싶었고 필름 카메라뿐이 생각나지 않았다. 순간 장비병이 발동한 나는 그대로 '필름 카메라 추천'을 초록 네모 안에 처넣고 여러 블로그들을 방문했다. 하지만 인기 있는 모델들(예를 들어 FM2(니콘), AE1(캐논) 등)은 이미 단종이 되었고 그런 탓에 가격이 상상을 초월해서 대학생인 나는 더 이상 필름 카메라 구입을 위한 검색은 그만둘 수 있었다.
아빠 혹시 옛날에 쓰시던 필름 카메라 아직 갖고 계세요?
옷장 찾아보면 있을 거야
그렇게 운 좋게 나는 아버지 방의 붙박이장에서 필름 카메라 두 대를 찾을 수 있었다. 한 대는 어렸을 때도 자주 보이던 똑딱이 카메라이고 다른 한 대는 DSLR의 외형을 가졌지만 디지털의 D가 빠진 SLR이었다. 아직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현저히 낮았던 나는 자연스럽게 SLR보다는 모든 것이 오토로 작동되는 똑딱이에게로 마음이 갔다.
Canon Autuboy3(위)와 Nikon f601(아래)
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델들을 검색해 보았고 사용법을 익혀나갔다.
필름 카메라는 보통 36매를 찍을 수 있는 필름을 사용한다. 이 말은 즉슨 36장을 찍기 전까지는 절대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일정 매수를 찍기 전까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36장이라는 것은 잘 몰랐을 것이다.)
필름 카메라를 선택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뽑는 필름 카메라의 매력들 중에 하나는 '감성'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필름 카메라의 느낌을 내주는 애플리케이션은 많을지라도 원조는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한 장씩 찍을 때마다 고민하는 시간의 깊이와 질도 스마트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카메라들은 모두 오래됐기 때문에 배터리부터 시작해서 필름들까지 모두 구입을 해야만 작동이 가능했다. 사용되는 배터리들이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것을 보고 수요가 꽤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에서 우리가 손으로 휙휙 넘겨가며 사용했던 필터들이 현실에서 필름 카메라에게는 모두 다른 '실제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필름들이었다.(시대가 발전하면 손발이 편해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렇게 필요한 모든 부품들을 구매하여 기다리는 시간조차 설렜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한 설렘이었다. 필름과 배터리들을 넣어서 불빛이 들어올 때는 왠지 모르게 돈이 굳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사실 배터리를 넣어도 작동하지 않을까 봐 걱정도 많이 됐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들이 끝난 후 나는 무엇을 찍을지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찍을지에 대한 고민만 하면 됐다.
디지털의 등장으로 인해서 한동안 아날로그는 '구식'과 '촌스러움'이라는 단어들로 대신 불리기도 했었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다시 많아질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대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비교할 때 그것을 소비하는 속도를 예로 들며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디지털은 빠른 만큼 순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말 그대로 손이 많이 가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날로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행복한 순간에 더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이유로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들에는 최대한 오랫동안 마물러 있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진을 찍고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날로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필름 카메라에게는 ctrl+z가 없다. 디지털 영역에서는 수많은 사진들 중 최고의 사진을 뽑는 과정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에게 있어서는 모든 사진들이 최고가 된다. 필름 카메라를 통해서 사진을 찍을 때는 카메라로 빛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과 추억이 곁들여 어우러진 복합체가 담긴다고 생각한다.
나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고민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 마치 내가 정말 고대하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 열심히 검색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만큼 설레고 기대되고 실제로 내 손에 쥐어져서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과 어떻게 같고 또 다를지 가늠이 되지 않는 그 기분이 정말 좋다. 그렇게 고민하는 시간도 나는 사진을 찍는 행위에 포함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요리를 할 때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고 재료를 사는 모든 과정을 포함해서 '요리'라고 말하듯이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찍어보고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는 행위가 불가하다. 첫 시도가 결과물이 되는 것이 누군가에겐 불편함일 수 있으나 적어도 나에겐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다. 스토리가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 그러한 사진은 굳이 이쁘거나 멋있게 찍을 필요는 없다. 나에게 있어서 의미가 있는 순간일 수 있고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일 수도 있다.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사진을 찍고 싶다.
인간은 기억의 회상에 있어서 후각이 가장 발달해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즉슨 특정한 음악을 듣거나 눈으로 보는 것보다 특정한 향을 맡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향이 나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내가 보는 건 비록 한 장의 사진일지라도 그때의 공기 향, 함께 있었던 사람, 내가 떠올린 추억의 향들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고 싶다.
나는 비록 '감성'이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이유 때문에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들었지만 그 과정은 절대로 단순해지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 36장을 다 채우지 못해서 필름 한 통조차 현상하지 못했지만 내가 담고 싶었던 순간들이 아직 카메라 안에서 보관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많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의 매력이 '감성'이라고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필름 카메라의 정말 큰 매력은 '추억 되감기'라고 생각한다. 36장을 모두 찍고 사진관에서 현상을 하고 나면 한 장 한 장 보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손에 만져지는 촉감을 통해서 접하는 것은 단순히 액정화면을 통해서 보는 것과는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마치 미식가들이 음식의 재료 하나하나들을 모두 음미해 가며 맛을 느낀다면 우리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 향, 느낌 들을 모두 음미해가며 감상해보자. 우리가 보는 결과물은 단 한 장의 사진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무한할지도 모르는 추억에 잠긴다. 사진을 찍었던 시간, 장소, 인물, 감정 등을 모두 떠올릴 수 있도록 구도를 잡아보자. 손에 들린 것은 멈춰있는 순간이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영화가 펼쳐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