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의 삶을 디자인한다는 것
퇴직한 선배가 사라졌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가 퇴직한 날,
인사 메일 한 줄 남기고 사라졌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딱 그 말 한 줄이었다.
사무실 어딘가 늘 앉아있던 자리도,
회의 때마다 정리해 주던 말도,
그리고… 그의 삶도 갑자기 꺼진 것 같았다.
퇴직은 마치 '어딘가로 사라지는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잠시, 나도 느낀다.
어디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나를.
[퇴직] : 현직에서 물러남
[은퇴] :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
'퇴직'이라는 말에는 끝이라는 느낌이 있다.
'은퇴'는 좀 더 품위 있어 보이지만,
여전히 '일에서 물러남'을 뜻한다. '퇴장'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이 든다는 건
퇴장이 아니라 재배치다."
일터에서 빠져나온 당신은 물러나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삶의 무대가 바뀐 것이다.
그동안 각자의 다양한 삶의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하루하루 존재감을 뿜었다.
단지 조명이 꺼진 게 아니라 조명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단지 조명이 어두워진 게 아니라 조명의 기능이 달라졌을 뿐이다. 조명의 방향에 맞게, 기능에 맞게 나를 잠시 이동시켜 보자.
얼마 전 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종영되었다. 16화 마지막 편, 노인 애순이는 요양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장면이 나오고 이후 딸 금명이 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금명: "요양원은 뭘 그렇게 열심히 다녀?"
애순: "늙어도 세상에서 한자리 좀 하고 싶지, 깍두기 취급만 하면 더 싫어"
"근데 나 사실은 신나서 가는 거야"
"가면 나보고 다 애순이 선생님이래"
금명: "엄마는 지금 또 봄이야?"
애순: "또 봄이지, 봄"
"인생이 수만 날이 봄이었더라"
애순이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시대는 그녀에게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병든 남편을 돌보며 살아온 인생. 글을 쓴다는 건 사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양원에서, 노인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그녀는 ‘선생님’이 되었다. 비록 무대는 작지만, 그녀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녀가 보여준 건 단지 글쓰기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다.
“인생을 끝까지 재배치하며
살아가는 자세”였다
공공정책은 이제 ‘돌봄’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시니어는 ‘도움받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무대를 찾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요즘 주목받는 것이 바로 ‘인생이모작’ 정책들이다.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
시니어 창업육성 지원 정책
50+캠퍼스 (서울시 50 플러스재단의 모델)
이런 정책들은 단순한 복지에서 벗어나, '어디에 다시 배치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 후 ‘공간’을 다루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지금의 나의 목표 중 하나는 사람들의 '일상의 리듬'에 귀 기울이고, '그 리듬에 맞는 환경'을 디자인하고 싶어졌다.
내 나이가 더 많아졌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어떤 동네에서 누구와 식사를 할지, 어떤 길을 산책하며 어떤 이름을 가진 공간에 앉아 쉬어갈지를 그려본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상상이 아니라, 공공정책과 공간디자인이 만나야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시니어산업’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건 퇴직 후의 준비가 아니라, 인생 후반전을 위한 설계 도면을 그리는 일이다.
그 선배는 지금, 공예작가가 되어가고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선배가 어느 날 SNS에 글을 올렸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여유롭게 책도 읽고 텃밭도 일구며,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공예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거듭나고 있다. 나중에는 막걸리도 빚어본다고 한다.
'퇴직 후 작가가 되어버린 나의 두 번째 인생'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나는 확신했다.
우리는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무대를 선택하는 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