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da 린다 Sep 27. 2023

노룩육아의 기술

나도 가끔은 전남친이 보고싶다

세 아이들이 중이염 돌림노래를 부를즈음 밤잠을 잃은 나는 신경이 있는대로 곤두서있었다. 시럽 가득한 커피를 퍼부어도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고 돌아가며 어린이집을 못가는 통에 며칠째 밤낮육아의 진수를 맛보았다. 육아를 경험한 4년간 이렇게 열이 맹렬하게 달려든 일이 없었다. 냉수마사지에 아이가 깰까봐 젖은 손을 아이의 가슴과 목을 식히다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아차 싶은 새벽 1시, 아이의 체온이 40도를 육박한다. 집나간 정신 줄이 바짝 당겨졌다. 아이가 아프면 나는 없는거다. 실제상황이다.


며칠을 힘든 나날을 보내니 아픈 곳이 늘어가는건 별수 없었다. 며칠전 우는 딸아이를 남편처럼 누운채로 배위에 얹었다. 허리가 아파 도통 안을수가 없어서였다. 잠깐을 재운다는게 깜빡 잠에 들어버렸다. 13키로 짐을 얹은 셈 이었다. 숨쉴때마다 갈비뼈 사이 통증이 느껴졌다. 서러웠다. 그 뿐이랴, 한달전에 걸린 기침감기는 통 나을 생각이 없다. 병원에 가니 약으로 낫기가 쉽지 않으니 따뜻한 물 먹고 많이 자란다. 만병통치약은 우리 어린이들이 다 낫고 등원하는 일 이라는 소리.


어느날 저녁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낮에는 아팠던 2번을 외동놀이를 시켜준다고 길을 나섰다. 며칠 밤을 지샌 다음 날이었다. 동네의 유명한 물고기까페와 도서관에도 찾았다. 미열은 아랑곳않고 신나해하는 2번. 삼형제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아파야 오롯이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는 걸 안다. 아파도 즐길 줄 아는 아이들로 큰다면 다행 중 다행이지만 엄마 마음은 편치않다.


그 와중에 피곤에 찌든 남편도 할말은 많다. 우리 가족을 사실상 부양하는 나의 전 남친, 현 남편은 일이 너무 많아 고생이고 그 좋아하는 일들을 더 벌리고 싶은데 몸이 하나인 게 애석한 사람이다. 20대부터 늘 그러하였다. 학생 일때에도 백수일 때에도 밑천 없는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공사가 다망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설득해 결혼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워할 일도 빚질 일도 많다. 며칠전 힘들어하는 그에게 평일 육아를 빼주겠노라 호기롭게 선언 했다. 그가 얼마나 꿈꾸는 일이 많은지 알아서다. 일을 해야 행복한 남자라는 것도 안다. 일이라면 진절머리나 하는 나와는 두뇌구조가 다름에 틀림 없었다.


평일 루틴은 조부모님과 내가 할테니 일에 몰두하라는 뜻이었다. 평일에는 아이들의 책육아와 루틴을 위해서도 그게 나을 것 같았다. 우리집 세 아이들에게 아빠는 놀이동산 같은 존재다. 아빠가 함께하면 뭐든 즐거워하는 흥분의 도가니탕 그게 우리집의 분위기다. 연애할 적 내가 그러했기에 할말이 없었다. 그때의 남친과 있으면 뭘 하든 재밌었다. 지겹도록 만나면 질릴 줄 알고 몇날 며칠을 붙어다녔지만 소용 없었다. 몇년을 보내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새벽이슬을 밟으며 퇴근하는 일이 잦아지자 생각이 달라졌다. 어느 날은 쿨한 척도 해보고 어느 날은 건강을 이유로 눈치도 줘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있었다면 더 참았을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다르게 아프기 시작하자 나는 급격히 좌절해갔다. 토로할 존재도 의지할 존재도 없었다. 세상 외로웠다.


저녁 밤 비교적 이른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칭얼대는 딸아이에게 짜증을 내자 몸안의 울화가 쳐올랐다. 두뇌의 처리 속도보다도 빠른 샤우팅 이었다. 내 몸이 이때다 공격지시를 내렸다. “나는 매일 밤 겪는 일인데 당신은 이것도 못참아?”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 셋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화를 내는 남편 뒤로 말귀가 밝은 1번이 처음 보는 이 사태가 뭔지를 파악하려고 웃었다 울었다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랑곳할 내가 아니었다. 이판사판 나는 남편에게 살쾡이처럼 달려들었다. 방안의 공기가 살기로 가득했다. 짧고 굵은 다툼을 뒤로 화장실로 들어가 우는데 1번이 쪼르르 따라들어왔다. 바깥의 아빠에게 엄마가 우니 사과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닭똥같은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는 나와 남편을 닮은 작은 사람을 보니 눈물이 더 쏟아져내렸다.


1시간쯤 지났을까 정돈된 몸으로 잠이 든 아이들 사이에 누웠다. 화가 난 남편은 딸아이를 데리고 옆동의 시댁으로 가버렸다. 실망과 후회로 서글픈 밤, 침침한 방안에서 옆에 누운 아이에게 혼잣 말 하듯 말을 꺼냈다. 엄마가 있잖아 아빠가 있잖아- 실은~ 깊이 잠들었는지 대답 없는 1번을 등지고 실눈으로 핸드폰을 켰다. 검색어 :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 어떻게


내가 1번 나이, 다섯살쯤 이었을까 나의 엄마 아빠는 거실에서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빠, 큰 언니가 나와 작은언니의 손을 붙잡고 작은 방의 피아노 의자 밑에 셋은 숨어있었다. 그 작은 피아노 의자 밑에 우리가 다 들어갈 정도였으니, 무척 어린 시절이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때의 공기. 아찔했다. 625 전쟁이 따로 없었다. 다음 날은 더 했다. 자다깨어 아무 일 없던냥 벌건 얼굴로 신문을 보시는 아빠, 여지껏 화가 안풀린 엄마는 말없이 아침 밥을 차리고 계셨다. 밥상앞에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강렬한 기억을 되물림 한 것인가?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서른 아홉이 되었을 때에도 오늘 일이 기억이 나겠지? 타임머신을 탈수 도 없고, 돌아간다 한들 그때의 울화를 잠재울 묘안도 없었다. 그냥 나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대신 나는 더 나은 다음 날을 만들기로 하였다.


새벽 2시 생생한 그날의 다툼이 아직 마르기도 전이지만 용기내어 카톡을 했다. 평소라면 다투고 하루 이상 텅 비었을 우리의 채팅창에 육아라는 팀프로젝트를 위한 공적인 대화가 채워졌다. 아이들이 트라우마가 생기지않게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했다. 말그대로 화해쇼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끔찍이 여기는 남편이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와 남편은 서로를 향해 1도의 체온도 느끼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사랑스럽게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함께 쿠키를 만들고 먹다 남은 빵을 꺼내 동생들이 좋아하는 생일축하합니다를 불렀다. 노래가 다 끝나고 아이들 앞에서 엄마 아빠의 사정을 말하며 화해를 청했다. 실기시험을 앞둔 사람처럼 안절부절 하는 나와는 달리 천연덕스레 말을 이어가는 남편. 긴가민가해 하는 1번과 달리 순진한 두돌 남매둥이는 이미 잊혀진듯 했다.  


그 날 매와 같은 1번의 눈을 피해 화해한 부부를 연출하는 일이 이어졌다. 다같이 교회에 가고, 식사를 하고 계획해 둔 캠핑을 떠났다. 말 그대로 노룩육아였다. 남편과 나는 육아라는 팀프로젝트에 고용된 사람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한껏 표현하고 아이들이 사라지면 딴청을 피웠다. 눈을 마주치지않고 하는 육아는 곤혹스러웠지만 우리는 적어도 프로였다. 아이들과 가족셀카를 찍고 서로에게 콜라를 주고 받았다. 그렇다고 화해를 한 것은 아니었다. 부부 두 사람의 평정을 찾는 일은 세 아이들 앞에 사치랄까. 전쟁만큼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다는 엄마 아빠의 싸움. 아이들 마음에 문신처럼 남기는 일만큼은 하고싶지 않았다.


노룩육아의 스킬은 늘어갔다. 다음 날은 보지도 않고 아침을 차려주고 가족채팅창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서 토의했다. 간밤의 어머님 생신에는 아이들 앞에서 서로의 밥을 챙기기도 하고 노룩으로 말이다. 아이를 처음 가진 30대 중반에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철판 육아가 점점 가능해진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 노룩육아는 이어지지만 남편의 아침 커피를 챙기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 정서와 교육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못내 일상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부부의 삶이다. 그게 그냥 모두가 사는 방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전히 외롭고 힘든 육아지만 고달픈 건 나만이 아니니까.


언제쯤 나의 전남친과 조우할 수 있을까. 종종 그리워지는 사람이 되었다.

내 남편도 전여친을 그리워 하겠지? 뭐든지 즐겁다고 하하호호하던 그 사람-

나도 그립다 그때의 나와 너. 오늘 육아의 단상 끝-


싸우고 다음날 캠핑떠난 삼남매. 육아에 부부싸움은 사치다. 같이 육아하기도 바쁨주의!


매거진의 이전글 꽃은 늘 옳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