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르바 Oct 07. 2022

나도 이제 '결혼을 말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1)

어른들이 말리는 결혼은 하지 말라는데...

 결혼하기 전에 '어른들이 말리는 결혼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랑의 힘을 부정하고 조건으로 결혼생활을 예단하는'어른'들의 말을 굳이 들어야 할까 싶었다.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조건만 가지고 결혼을 말리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시작은 힘들어도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거 아냐?’



 신랑을 가볍게 소개하러 친정집에 간 날, 우리 엄마는 나를 보고 웃으며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눈을 떠, 이것아! 눈을!"

 '엄마는 내 남자 친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당연히 서운했었다.



 


 결혼을 하고,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나도 '결혼을 말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 다섯 명의 지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중 아직 미혼인 남자분(앞으로는 A 씨라고 하겠다.)이 '요새 무척 결혼이 하고 싶다'라고 화제를 던졌다. A 씨는 대기업의 하청 기업에 다니며, 25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고, 나이는 30대 후반이고, 술을 좋아하여 매일 저녁이면 혼자서 집에서 소주를 반 병에서 한 병 정도는 마셔야 잠이 오는 사람이다. 얼마 전에는 티브이에 나온 것을 흉내 내어 선풍기에 잔을 매달아 자기의 잔과 짠을 하며 술을 마셨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키는 평균보다 약간 크고, 머리숱이 눈에 띄게 적다 보니 제 나이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인다. 그는 친구들도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데, 언제까지 혼자서 지내기에는 외롭다고, 요즘따라 더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여자를 만날 수가 없으니, 이러다 외국인 여자를 데려와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때 B가 말했다. "뭐하게 그 나라에서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을 멀리 타국까지 데리고 와서 고생을 시켜. 그냥 혼자 살아." A 씨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결혼할 자격을 박탈당한 자의 분노가 스쳤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가만히 술을 따르면서 "에이, 형님. 왜 그래요. 저한테." 하고 귀여움을 떨었다. B는 A의 간지러운 너스레에 헛웃음을 지으며, A의 말을 들어주는 것으로 방금 전 내뱉은 말의 날카로움을 풀어보고자 했다. "그럼 네가 원하는 여자는 어떤 사람이야? 조건을 한 번 말해봐.", "그냥 뭐 직업은 없어도 돼요. 제가 혼자 벌어도 되죠. 예쁘면 좋겠지만, 제가 지금 이 나이에 머리도 빠지고 뭐 여자 외모 따질 땝니까? 적당히 보기 밉지만 않으면 돼요. 성격은 좀 좋았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저녁에 퇴근하고 오면 나랑 술 한 잔씩 할 수 있는 여자면 좋겠네요."




 나는 그 순간 A의 결혼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A가 원하는 그런 적당히 밉지 않은 외모에 성격이 좋은 여자를 떠올리면서.


 A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있다 보니 늘 일이 고되다고 했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술을 한 잔 걸쳐야 잠이 온다고 했다. 가끔은 주문이 밀리면 휴일도 반납하고 일을 했다. 신혼 때는 A가 피곤에 절어 퇴근하고 오면 부인이 빨간 국물이 있는 찌개를 끓여 저녁상을 준비해 두었다가 같이 술을 한 잔 걸치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부인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면 A를 술주정뱅이 취급하며 신혼부터 분위기가 험악할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벌써 이혼을 논할 수도 있지만 이건 상상이니까 술을 좋아하는 여성이라고 가정을 하자. 그렇게 신혼의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상황은 전과 달리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부인은 더 이상 술을 마실 수가 없다. 가끔은 혼자서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는 신랑에게 서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부인은 몸이 무거워져서 전보다 부지런할 수도 없을 것이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설거지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같은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A 씨는 "내가 혼자서 돈을 버는데 집에서 노는 네가 해야 할 일이 아니냐."라고 할 것이다. 부인이 "내가 임신을 했는데 그런 것도 못 도와주냐"라고 하면 A 씨는 "내가 얼마나 힘들게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라고 응수할 것이다.


 이 시기도 그럭저럭 지내고 아이를 낳았다고 하자.


 아이가 뱃속에 있는 것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천지 차이다. 부인은 아이를 낳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잠도 못 자고 아이를 돌보아야 할 것이고 예민한 아이라면 엄마에게 맘 편히 화장실에 갈 시간도, 몸을 씻을 시간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인은 신랑이 퇴근하고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A 씨는 고되게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부인이 이것저것 낮 동안 아이에게 치여하지 못한 집안일이며 아이 돌보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나는 돈을 벌어오는데, 당신이 전적으로 애를 돌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 육아나 집안일은 당신의 일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쯤 되면 A 씨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혼자서 편히 쉴 수 있었던 결혼 전의 시기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하여 “퇴근하고 와서 피곤하니까 조금만 쉬었다가 할게.”라고 말하고 쉴 수도 있다. A 씨는 천성이 부지런한 편이 아니라 분명 조금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한두 시간 이상 휴대폰 게임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며 술을 기울일 것이 뻔하다.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인은 마음이 상하고, 결국 남편에게 부탁했던 설거지며 방청소를 하다가 서러움이 폭발하고 말 것이다. 둘은 서로 자신이 지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에 대해 상대를 설득하려고 목에 핏줄을 세우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다 부인이 포기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모두 전담하게 되던지, A 씨가 집안일을 돕게 되던지 하겠지. (내 생각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는 엄마 혼자 아이를 돌보는 일이 너무 버거운 일이니 전업 주부라 하더라도 남편이 퇴근 후 집안일과 육아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다면 엄마는 집안일을 할 여유가 생기니 외벌이를 하는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남편이 호의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집안일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말이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적적인 문제다.


  A 씨가 벌어오는 250만 원의 돈은 두 식구가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조금 부족한 돈이다. 아이가 둘이 되면 더욱 빠듯하다. (2022년 3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2,516,821원이다.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3,072,648원이다.) 부인은 신랑이 벌어오는 돈이 너무 부족하다고 하고, A 씨는 더 벌어올 방법도 없는데 자신을 무책임한 가장으로 몰아세우는 부인에게 정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다 A 씨는 아이가 자라면 부인에게 맞벌이를 하자고 요구를 할 것이다. 늘 벌이가 부족하다고 탓하는 부인에게 제안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기는 하다. 부인은 ‘벌이가 적어서 나를 고생시키는 남편’을 원망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두려움을 안고 직업을 찾을 것이다. 부인은 결혼과 육아로 인한 공백으로 조건이 괜찮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 결혼하기 전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으로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받는 보수는 적을 것이다. 일하느라 피곤에 쪄든 부인은 A 씨에게 “이제 우리도 맞벌이를 하니, 집안일과 육아를 반반씩 하자.”라고 제안을 하고, A 씨는 “네가 벌어오는 돈이 나보다 훨씬 적은데, 네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 적은 돈을 벌면서 나한테 집안일을 해라, 육아를 해라 잔소리를 늘어놓을 거라면 차라리 직장을 그만둬라. 네가 나만큼 벌어오면 내가 집안일을 반반 하겠다.”라고 요구할 것이다. 부인은 직장생활이 피곤하고 힘든 데다 보수도 적고, 어린 나이에 긴 시간 어린이집에 있거나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냥 맞벌이를 포기하고 신랑의 적은 월급에 맞춰 살면서 바보 같은 결혼을 한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며 살아갈 것이다. 반대로 부인이 직장을 계속 다닌다면 A 씨와 육아와 집안일에 대한 분담으로 엄청난 다툼을 이어가다가 결국 급여가 적은 본인이 대부분의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도 불행한 결혼 생활이다.


 250만 원의 외벌이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니까,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요즘에 아이까지 키우며 살기엔 너무도 삶이 팍팍해서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맞벌이를 하게 되면, 누가 더 벌고 덜 벌고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육아와 살림은 반반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누가 더 힘든 일을 하고 있는지, 누가 더 벌고 있는지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이기는 하지만 상대가 배려해주기 전에 자신이 그것을 무기로 상대에게 더 많은 육아와 살림을 요구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분명 집 밖을 나서면 가정의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할 것이고, 돈을 적게 버는 쪽이라고 해서 일을 편하게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직업이 어디 있겠는가.)




 A 씨의 결혼 생활은 내 상상 속에서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물론 이상적인 상황으로 A 씨가 결혼하고   매우 가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남자로 변하여, 퇴근 후에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낸다면 상상이 달라질  있겠지만, 지금 눈앞의 A 씨는 그렇게 다이내믹하게  변하지 않을  같다. 지금의 직장일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해하고  피곤함을 술로 풀고 있는 .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아이를 키워 내느라 금전적인 문제로 싸운다던지, 그로 인해 맞벌이를 해야 해서 버거운 육아와 집안일로 싸우지 않으려면 말이다.


 짧은 상상 끝에, 나는 A 씨가 외롭더라도, 그대로 혼자 사는 것이 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A 씨. 결혼하지 마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작가의 이전글 소개팅을 일주일에 두 번씩 하며 깨닫게 된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