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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덕 Sep 16. 2020

심야버스에서 꿈꾸기

 


심야버스를 타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은 꿀만도 한 게 나는 한 번도 심야버스를 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현실에서 탔다면 꿈에서까지 탈 필요는 없죠. 꿈은 현실의 여집합입니다. 그게 말이 되는 건가, 근데 당신 누구에요?  


저는 심야버스 맨 뒷자석에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있으면 버스에 탑승하고, 하차하는 사람을 모두 볼 수 있어요. 거기 계속 서있지 말고 제 옆에 앉으시죠. 아니요, 바로 옆에 말고 두 칸 떨어져 앉으세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합시다. 아직 2단계인 걸 잊으셨냐요!  


나는 심야버스 맨 뒷자석에 사는 사람 옆옆옆 칸에 앉았다. 잠시 후에 버스가 멈추고 한 여자가 탔다. 아니, 엄마였다. 심야버스에 왜 엄마가? 뜬금없지만 꿈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엄마는 친구랑 등산을 하고 막걸리를 한 잔 했다고 한다. 


이 밤에? 

얘는, 요즘 누가 낮밤을 가리고 다니니. 


하긴, 꿈에서 낮밤을 가리는 게 더 이상하지. 하지만 밖은 여전히 어둡네. 엄마에게서 막걸리 향이 났다. 취한 것 같았고 비틀거리면서도 앉지 않고 서 있으니까 버스기사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꽤액! 꽤액!  


뭐지 하고 보니까 운전석에 오리가 있었다. 버스기사가 오리라니 참 재밌는 꿈이네, 근데 여태 모르고 있었네 하며 자세히 보니 정말 흔히 보는 버스 기사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날개에는 맞춤형 흰 장갑까지 씌워져 있어서 감쪽같았다. 신호가 바뀌었는데 앞차가 안 가니까 긴 주둥이로 크락션을 터프하게 울렸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오리다 싶어 가만 보니 동네 하천에서 본 오리였다. 우이천 산책을 할 때마다 오리를 보는데, 그 중에서도 날갯짓이 남다른 오리가 있다. 속으로 항상 될성부른 오리라고 생각했다. 꿈에서도 여전히 될성부른 오리가 버스기사로 취업을 하였구나 싶었다.  


잠시 후에는 고양이 두마리가 탔다. 한 마리는 엄마와 같이 살다가 가출한 다미,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집 1층에 자주 나타나는 길고양이 미료였다. 다미와 미료는 각각 임산부석과 장애인석에 앉았다. 다미는 열살이고 가출하기 전에는 15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두 명의 집사(엄마, 아빠)와 살았다. 외출은 거의 안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거실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취미가 있었다. 어느 날은 창 밖으로 무언가를 보고 표정이 심상치 않더니 그 다음날부터 집에서 보이지 않았다. 생후 10년만에 집과 집사들을 버리고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배가 불러 임산부석에 앉은 녀석을 꿈에서 다시 만나다니. 미료는 동네 어느 캣포비아가 막대기로 후려치는 바람에 뒷다리 한 쪽을 못쓰게 됐다는 이야기를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할머니에게 들었다. 


설마 다미와 미료가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 거라고? 집고양이와 길고양이가 만나면 말이 통할까, 평생 사료만 먹은 고양이와 길 위의 온갖 음식을 먹은 고양이가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까, 과연 교미를 할 수 있을까, 다미는 중성화 수술까지 했는데, 거기다 다미는 수컷이라고! 아 꿈이니까 그럴 수 있지. 꿈이 아니어도 고작 사피엔스의 뇌로 유구한 번식의 역사를 가늠하는 짓은 부질없다. 진화론은 부질없다. 종의 기원은 아담과 이브다. 지구는 평평하다. 여긴 꿈이니까. 아무말, 아무 생각. 


버스에는 이제 심야버스 맨 뒷좌석에 사는 사람, 그 옆옆옆 칸에 앉아 있는 나, 내 앞자리에 앉은 엄마, 임산부석에 앉은 다미, 장애인석에 앉은 미료, 그리고 될성부른 오리 버스기사까지 총 6명이 탑승하고 있다. 심야버스는 어디로 가는 거지, 앞으로 또 누가 타게 되려나, 또 얼마나 희안한 상황이 펼쳐지려고, 코로나로 세상이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지니까 노아의 방주 대신 오리의 심야버스가 나타났나? 아님 꿈 제2막엔 뒷자석과 앞좌석이 갑자기 분리되어 설국열차 패러디를 하게 되나?  


내가 꾸는 꿈이지만 정말 내가 꾸는 걸까? 어쩌면 오리의 꿈에 내가 들어온 걸수도, 그것도 아니라면, 난 그저 “심야버스를 타는 꿈을 꾸었다” 라는 첫문장을 적어 놓고, 이후엔 아무 말이나 적고 지우고 적고 지우고, 순서를 바꾸고 단락을 나누고 기억을 짜집기 하고, 마감에 쫓기며 텍스트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마지막 문장을 찾을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꿈은 언제 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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