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 광진무중력지대 무진장에서 진행한 <글쓰기에서 나를 보다> 수업 소책자가 출간되었습니다. 원래 오늘 오프라인 출간기념회를 갖기로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만나지는 못했네요. 무진장에서 빠르게 택배 발송을 해주셨고, 잘 받았다는 참여자 분들 후기 메세지로 채팅방에서나마 소소하게 출간을 기념했습니다. 이번에 강사로 참여하면서 소책자 편집, 디자인까지 맡는 바람에 아주 아찔하고 보람된 11월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편집디자이너 분들 리스펙트합니다).소책자 서문에 쓴 에디터의 편지 공유합니다.
어느 10월에 특별한 글방이 열렸습니다. 방에서, 카페에서, 한적한 야외에서, 또 무진장 센터 스튜디오에서 줌 화면을 켜고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던 첫 만남이 떠오릅니다. 매주 화요일 3시는 서로의 얼굴을, 목소리를, 또 서로의 글을 기다리는 시간이었지요. 또 세상에 없던 온라인 글방이 만들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소개글 쓰기, 나의 버릇 쓰기, 잊지 못할 기억 쓰기, 나의 최애 쓰기. 총 네 편의 길거나 짧은 글을 쓰고, 낭독하고,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만날 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 편의 글을 써왔습니다. 문득 동화 <어린왕자>에서 사막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꺼야.”
우리는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누군가는 오후 2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했을까요. 그 사람은 아마도 그 주에 써오기로 약속한 글을 일찌감치 쓴 사람일 겁니다. 마감까지 글을 못 써서 모임 전까지 급하게 써야하는 경우라면 마냥 행복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날의 만남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모임 직전에, 혹은 쉬는 시간에 글을 보내주시는 임기응변과, 열정, 순발력 덕분에 우리는 매번 무사히 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밖에서 이동중이라 화면과 오디오를 켜지 못하는 상황일 때는 채팅으로 소중한 피드백 남겨주셨습니다. 또 누군가는 시험 기간 중에도 기어코 글을 쓰고 참여하다가 시험 직전에 뿅 하고 사라지는 대담한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지요. 그 땐 정말 모두가 놀랐습니다.
저는 강사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매주 써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살짝 미안하기도 했어요. 대신 수요일마다 조금은 바쁘고 특별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글방이 열리는 수요일이면 전날에 채팅방에 올려주신 여러분의 글을 모아서 무진장 센터 옆에 있는 스타벅스로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한 분 한 분의 글을 반복해서 곱씹어 읽고, 밑줄과 별표를 치고, 적절한 코멘트를 고민했어요. 글 속에서 반짝이는 장면과 문장을 마주할 때면 괜히 들떠서 이런 일기를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한 분 한 분의 글을 읽고, 소감과 코멘트를 적는 시간이 꽤나 즐겁다. 글을 읽으며 바로 몇 시간 후에 만날 글쓴이들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담주 마지막 수업까지 잘 마치고, 소책자 출간까지 잘 마무리되길 바라본다."
그리고 정말 책이 출간되었네요. 우리의 짧지만 돈독했던 온라인 글방의 흔적들, 함께해주신 분들의 글과 그림, 후기가 담겨있습니다. 이 엄혹한 시국을 통과하는 데 이 책의 출간이 모두에게 작은 격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모임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해주신 최영 팀장님, 무진장 센터에 감사드립니다.
2020년 11월
권경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