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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Feb 06. 2019

44. 다시 혼자가 되어 국경을 넘어가던 밤

2017.7.24. 에콰도르-콜롬비아 국경(D +168)

"미안한데 바뇨스(Banos)는 너네끼리 가. 나는 먼저 콜롬비아로 갈게."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였다. 어젯밤까지도 우리는 액티비티의 천국이라 불리는, 키토 남쪽의 작은 도시 바뇨스로 다 같이 이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 나는 그 약속을 깨버리고 혼자 콜롬비아의 국경으로 떠났다. 밤새 생각해봤지만 난 액티비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콰도르보다는 콜롬비아에 더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게다가 이제 출국까지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 여행길에서 만나 나의 마지막 동행이 되어준 K, R, I와 그렇게 헤어졌다.




처음부터 밝혔듯이 나는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나 외로움 같은 것에 대한 걱정이 왜 없었겠냐마는, 그보단 기회가 와도 그런 걱정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될 나 자신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다행히도 여행길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여행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진짜 혼자인 채로 다닌 날을 꼽아보면 양손가락을 다 채우지도 못한다. 늘 곁에는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동행이 있었고, 대부분이 며칠 잠시 함께 다니다 헤어지는 사이가 아닌 꽤 오랜 시간 함께 보내며 서로의 일상까지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발전했다.


여행자들 간의 커뮤니티라든가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미리 동행을 구해서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친구끼리 가도 싸우고 돌아온다는 여행길에 굳이 낯선 사람으로 곁을 채우고 싶진 않았다. 생각해보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동행이 되는 것도 뭐가 다르겠냐마는, 그래도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고 밥이라도 한 끼 함께 먹고 나면 조금 더 같이 있어도 좋겠다든가, 여기까지가 좋겠다든가 하는 미묘한 판단이 섰다. 다행히 그런 판단은 대체로 맞았던 거 같다. 그간 함께 했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쌓아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나의 마지막 동행들과 헤어짐을 앞두고. 우리 의리(?)의 징표는 다름 아닌 내가 만든 팔찌.


혼자서 택시를 탄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오랜만의 적막이 싫지 않다. 이젠 이런 시간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도 들던 참이었다. 남은 여행길은 조용히 혼자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피로함도 찾아왔다. 배낭에 캐리어까지 이고 지고서 터미널을 헤집고 다니며 국경행 버스를 찾아야 했다. 보통은 한쪽에 가방을 쌓아두고 짐을 지키는 사람과 표를 사는 사람으로 나눠서 움직였다. 혼자 다니는 게 처음은 아닌데 안 하다 하려니 그 빈자리가 이렇게 클수가.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다. 버스 터미널은 크게 두 군데 있다고 들었는데, 하나는 우리가 몬타니타에서 과야킬을 거쳐 키토에 올 때 도착했던 남쪽 터미널, 한쪽은 콜롬비아 국경 등 북쪽 방향을 향할 때 이용하는 북쪽 터미널이다. 키토 자체가 에콰도르에서 많이 북쪽이기도 하고, 그래선지 주요 도시가 대부분 아래 있다 보니 남쪽 터미널은 크고 신식 건물이었는데, 북쪽 터미널은 규모도 작도 건물도 허름하다. 표를 사고 사람이 빼곡한 낡은 대합실 한쪽 구석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긴장은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동행들과 함께 있을 때만큼 편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가장 곤란한 건 화장실. 칸막이 안쪽까지 짐을 다 들고 가거나, 배짱 있게 화장실 앞에서 이용료를 받는 사람에게 짐을 맡겨야 한다. 보통 맡아주기는 하는데, 그게 "내가 보고 있을 테니 그(입구) 앞에 두고 가라" 정도이니 선택은 정말 자신의 판단을 믿는 수밖에.


낡고 낮은 이곳은 키토의 북쪽 터미널.


곤란한 일은 또 있었다. 지금껏 그런 적이 없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자꾸 말을 걸더니 애인이 있느냐 키스는 자주 하느냐, 야한 농담을 하더니 스킨십까지 하려고 한다. 처음엔 그런 건지 모르고 대꾸를 해주다가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큰소리로 화를 내고 고개를 아예 창가 쪽으로 돌려버렸다. 주위를 의식해서인지 급 자는 척을 하던 할아버지는 중간 터미널에서 내렸다. 아, 곁에 K가, R이, I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친구들은 바뇨스로 잘 가고 있는지. 그냥 조금 더 따라서 같이 이동할걸 싶은 후회도 살짝 들었더랬다.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에콰도르는 내가 무한 애정을 품고 있는 페루에 비해 전반적으로 거칠고 무뚝뚝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선지 더 정이 붙지도 않고 빨리 떠나도 아까울 것 없어 보였는데, 버스 창문 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니 그제야 또 아쉽다. 출국을 미뤄서라도 이 나라에 더 머물러볼걸, 왜 정 붙이지 못했던 걸까.


버스 창문 너머로 보이던 에콰도르의 풍경.


그러고 보니 혼자 걸어서 국경을 넘는 일은 처음이다. 남미에서 적어도 6개국의 국경을 육로로 넘었는데, 그때마다 누군가가 곁에 있었다. 그전까지 내가 걸어서 국경 혹은 그 비슷한 것이라도 넘어 본 것이라곤, 대학생 때 DMZ를 넘어 북한으로 금강산 여행을 갔던 일이 유일하다. 당시의 그 삼엄한 경비와 무장한 채로 서있던 군인들 모습에 잔뜩 얼었던 기억에 육로로 지나는 국경이란 다 그런 무서운 곳일 것만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걸어서 넘은 국경은 티티카카 호수 인근의 페루-볼리비아 국경이다. 잔뜩 긴장했던 내 마음을 달래듯 국경 마을은 너무나 평온했고 여행객을 잔뜩 태운 버스와 택시, 오토바이 등으로 소란스러웠다. 그 길에 함께 했던 이는 동갑내기 P. 마침 하늘도 참 파랗고 날씨가 좋아서 친구와 함께 교외에 놀러 나온 기분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웃다가 국경을 지났다. 생각보다 무서울 것도 어려울 것도 없는 길이었다.

내내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남미에선 보통 상대가 어느 나라이든 볼리비아의 국경이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기억 속에 가장 힘들게 남아있는 곳은 칠레와 볼리비아, 그리고 파라과이와 볼리비아의 국경이다. 날씨는 춥지 버스는 열악하지, 그런데 짐 검사도 어찌나 꼼꼼하게 하는지 온 힘을 쏙 빼놓는다. 그래도 그때마다 옆에 함께 있던 동행들과 투덜거리다 보면 어느새 국경을 넘어가 있곤 했다.


버스가 에콰도르의 국경마을인 툴칸(Tulcan)에 도착했다. 이제 택시를 타고 국경까지 가야 한다. 해지기 전에는 도착할 거라 계산했는데 벌써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다. 다행히 춥지 않았고, 짐 검사가 없어 캐리어와 배낭을 열지 않아도 됐다. 출국 도장을 찍고 다시 콜롬비아의 입국장까지 가는 길에는 이 국경을 몇 번 넘어본 적이 있다는 두바이 청년과 택시를 함께 탔다. 그는 콜롬비아에서 다시 미국 라스베가스로 건너가 잭팟을 터트릴 거라고 했다. 역시 두바이하면 재벌이라더니... 물론 잭팟을 터트렸다면 말이겠지만.

콜롬비아 입국 도장을 찍은 뒤에는 잭팟을 꿈꾸는 청년과 인근 도시인 이피알레스(Ipiales)까지 가는 택시를 또다시 함께 탔다. 같이 이동할 사람이 있어 좋은 이유 중 한 가지는 교통비를 아낄 수 있다는 거다. 아무튼 결국 혼자가 아니게 됐지만 역시나 혼자 넘는 국경도 해볼 만했다. 어디나 다 사람 사는 동네였다.

어느새 사방이 어둑. 두바이 청년이 밤 버스를 타고 곧장 보고타로 갈 거라고, 같이 가겠냐고 물었지만, 난 이곳에서 하루 묵겠다고 했다. 떠나는 그의 버스를 배웅해주고 터미널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콜롬비아의 첫 도시. 이피알레스(Ipiales)의 풍경. 도착한 다음날 낮에 찍은 사진들이다.


정말 오랜만에 깨끗한 1인실 방을 잡았다. 씻고 나오니 하루가 그렇게 길었을 수 없다. 와이파이를 연결하자 바뇨스에 도착한 친구들로부터 그곳의 풍경이 담긴 사진이며 안부 등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문득 펼쳐본 일기장에는 페루 리마 이후로 한 번도 흔적이 없다. 우리 정말 쉴틈 없는 나날을 보냈었구나. 헤어지기 싫었지만, 아쉽지만, 왠지 그래도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워도 외로워도 결국엔 각자의 길을 걸어야 했을 테니까. 같이 있던 만큼 또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니까. 함께 있었기에 혼자라면 어려웠을 일들을 해낸 것처럼, 혼자일 때는 또 함께라서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이들이 바뇨스에 있는 동안 내내 날씨가 안 좋아 원하던 액티비티를 다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함께 바뇨스로 갔다면 투덜거리며 그들을 탓하진 않았을까. 물론 모든 여행이 끝난 지금이야, 그때의 이야기가 나오면 난 그저 제3자가 되어 놀리면 그만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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