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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Mar 12. 2019

45. 콜롬비아, 어디까지 가봤니 ① 성당

2017. 7. 25. 이피알레스, 콜롬비아(D +169)

멕시코 아래로 카리브해를 따라 줄줄이 과테말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가 이어진다. 보통 쿠바까지 포함해 이 나라들을 중미라고 부른다. 그리고 중미의 끝이자 남미 대륙이 시작되는 바로 그곳에 콜롬비아가 있다. 어찌 보면 진정한 시작점이자 종착점 같기도 한데, 사실 남미를 여행한다는 사람들에게 이 나라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국경이 밀림으로 둘러싸여 다른 나라로의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장 큰 건 아무래도 이미지다. 남미 어디보다도 치안이 불안한 무서운 곳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나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런데 여행길에서 만난 콜롬비아 사람들을 보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새 내 머릿속의 콜롬비아는 마약보다 커피가 먼저 떠오르고, 권총을 든 갱단보다 춤과 미소가 먼저 떠오르는 곳이 됐다. 무엇보다 남미라는 장소에 대한 자신감에 물이 올라있으니, 아직 미지의 나라인 이곳을 내 여행의 종착지로 삼고 싶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콜롬비아는 지나는 발걸음 내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줬다.



이피알레스에 들린다면 꼭 가보아야 할 곳. 라스라하스 성당


육로로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에 온다면 대부분이 에콰도르에서 올라올 테다. 여행자들이 그렇게 도착한 콜롬비아의 국경도시 이피알레스(Ipiales)에 머문다면 그 이유는 십중팔구 라스라하스(Las Lajas) 성당 때문이다.


깎아지른 듯한 산 사이 깊은 협곡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성당은 얼핏 동화에 나오는 오래된 마법의 성 이래도 믿을 것만 같다. 과거 폭풍우가 몰아치는 협곡에 갇힌 모녀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그들을 보호해줬고, 그걸 계기로 성지순례지가 되어 지금과 같은 성당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기적 같은 일화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가파른 협곡 사이 위태로우면서도 웅장하게 세워진 그 자태를 바라보니 종교가 없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경건해지는 기분이다.


성당으로 가는 길엔 성모마리아에게 남긴 전 세계 순례객들의 메시지(아마도 기원문이겠지)가 가득하다. 얼핏 너무 새것 같은 성당의 겉모습에 관광지를 잘못 찾았나 싶기도 했지만, 성당이 세워진 것이 20세기에 이르러서라니 아직 깨끗할 만도 하지. '성지순례'라면 왠지 몇 백, 몇 천 년 된 오래된 장소만 해당될 거라던 내 생각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협곡의 바위 사이로 정교하고 단단하게 붙어있는 벽과 엄숙한 분위기의 예배당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성지순례라도 떠나온 기분이다. 마침 스산한 바람에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가 모녀의 일화를 자꾸만 상기시켜 주고, 비바람이 더 세지더라도 왠지 이 곳에선 안전할 것만 같다.



운무가 가득하던 날 다녀간 라스 라하스 성당.



유럽 가톨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남미에는 작던 크던 대부분의 도시마다 성당이 하나씩 꼭 있다. 수십 개의 도시를 지나온 만큼 수많은 성당을 봐오며 이제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기분이 남다르다. 생각해보면 오로지 성당 하나를 보겠다고 행선지를 정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 얼마 안 남은 여행길을 무사히 지켜봐 달라고, 그리고 돌아가면 또다시 시작될 나의 일상이 계속 행복하길 바란다고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주룩주룩 내리던 비는 다시 마을에 도착할 때쯤 그치더니 더 내리지 않았다. 




* 라스라하스 성당가는길
이피알레스 버스 터미널 인근에 라스라하스 행 콜렉티보가 있다. (주차를 하고 서있는 기사 아저씨에게 일단 "라스라하스?" 물어보자.) 편도 요금은 2017년 당시 2,500페소(한화 약 900원 가량). 셔틀버스처럼 상시 운행하는 편이고, 정해진 출발 시각 없이 차에 사람이 다 차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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