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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l 31. 2019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 너머에 대한 이야기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 ‘비밀’에 대한 사전적 의미다. 그러니까 비밀은 알려지지 않아야 하는 무엇인가 인데, 사실 알려지지 않으면 비밀이 될 수 없다. 말 그대로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많은 비밀들이 사람들의 입을 입을 타고 퍼져나간다. “이건 사실 비밀인데…”, “정말로 너만 알고 있어야 해…”. 심지어 모두가 볼 수 있는 포털 뉴스조차도 아무도 알아선 안될 이야기들로 도배되어 있다. “… 극비에 진행”, “극비 문서 입수…” 어쩌면 애초에 비밀이란 알려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영어 원제는 ‘Everybody Knows’. 비밀은 빼고 ‘누구나 아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그 이야기는, 영화에 대한 소개글을 미리 읽은 사람이라면 혹시나 하고 유추해 볼 수 있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나 대부분의 비밀이 그렇듯 영화는 그 이야기를 꽁꽁 숨긴다. 따스하고 아름다운 스페인 시골 도시의 목가적인 풍경 사이로, 결혼이라는 경사를 맞이한 가족들의 분주한 발길 너머로, 늘 열정이 넘치는 흥겹고 활기찬 마을사람들의 환호 뒤로. 이곳은 마치 어떤 비밀도, 걱정도 없는 행복한 곳인 것만 같다.



영화의 전반부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과 흥겹고 유쾌한 사람들의 열기에 흠뻑 빠져들었다면, 후반부는 이들에게 들이닥친 예상치 못한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해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들에 몰입할 시간이다. 숨겨진 진실은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다정했던 이웃과 가족들까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극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비밀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 꺼풀씩 새로운 이야기가 밝혀질 때마다 견고해 보였던 관계는 금이 가고, 뒤틀린다. 사실 균열의 조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말하지 않았을 뿐 짐짓 모두가 알고 있었던 그 비밀들처럼 말이다. 


과연 모두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숨겨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는 숨기는 것과 알려주는 것 사이를 넘나들고, 그때마다 묘하게 달라지고 어긋나는 관계들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두가 알고, 그러나 모른 척하고, 비로소 드러난 진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사는 게 늘 그렇듯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각자의 삶은 계속되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끝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물을 뿌리며 도시를 청소하는 청소부들이 등장한다. 한바탕 지나간 소동의 그 어떤 흔적이나 비밀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도시의 이곳 저곳을 깨끗이 청소한다. 그러나 뿌려지는 그 물줄기 뒤로는 또 다른 진실을 알게 된 이가 무거운 표정으로 남았다. 과연 이 세상에  ‘알리지 말아야 할 일’ 혹은 ‘밝혀지지 않은 일’이란 존재하는 걸까.


영화의 내용이나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흐름도 굉장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페인 시골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두 명배우의 다채로운 모습을 아낌없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복잡 미묘하게 생각할 거리, 여운을 많이 남긴 영화였음에도  ‘스페인 가고 싶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을 만큼 영상 또한 매우 아름다웠던 작품.


*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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