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학원강사들은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 아주 짧거나 없다. 그날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10분 후 바로 다음 수업에 들어가야 했지만 배가 무척 고팠다. 계단을 뛰어내려가 자주 가던 단골 김밥집으로 갔다. 다행히 손님은 많지 않았고, 포장을 빨리 받으면 김밥 반 줄이라도 욱여넣고 수업을 시작할 수 있을 듯했다.
참치김밥 하나 포장이요.
늘 같은 말 한마디를 내뱉고 나는 기다렸다. 가게에 달린 디지털시계는 초침도 없으면서 매 초마다 노려보는 내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2. 그 무렵 다른 어느 날 오후엔 엄마가 스마트폰과 씨름 중이었다. 어플로 버스표를 예매하고 싶은데 혼자 있는 엄마에게 그게 너무 생소해서 어렵게 느껴졌던 거다. 엄마는 내게 연락했다. 고민 없이 바로 나를 찾았는지 아니면 망설임 속에 수 분이 흘러간 뒤였는지는 알 수 없다.
예매하면 QR코드로 승차권이 발행된다는데... 내 폰도 되는겨?~~
한창 일하고 있는 평일 시간대에 읽어버린 메시지에 나는 급한 대로 짧게, 간결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지막엔 아예 텍스트 대신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토끼가 콧바람을 내뿜어대며 좋아하는 이모티콘이었다.
1-1. 아주머니가 내 포장 주문을 잊으셨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졌다. 나보다도 늦게 온 사람들이 음식을 받아가고, 먹고 있었다. 혹시 제가 주문한 건 언제 나올까요, 여쭤보기도 전에 이미 나는 3~4분 따위를 굳이 180~240초로 받아들이며 시간을 헛되이 낭비했다는 그 자체로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 화났어요?
내 나이가 곱절이 되어도 겨우 어깨동무나 할, 그런 단골 김밥집 아주머니가 내 참치김밥을 막 만들기 시작하시며 겸연쩍은 웃음을 섞어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는 순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민망해졌고, 어색하게 웃어드리는 것으로 아니라는 대답을 대신해야 했다.
2-1. 그건 별 뜻 없는 이모티콘이었다. '읽씹'을 대신해서 나 엄마 카톡 확인했어, 를 말해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하지만 엄마에게는 읽힌 의미가 달랐는지 뜬금없는 답장이 대번 날아왔다.
엄마 고구마야?
답답하냐구
엄마가 지레짐작하고 있던 내 답답함이 토끼의 콧바람에 섞인 것처럼 보인 것이다. 사근사근, 길게 대답할 걸. 그제야 아차, 싶었다. 엄만 아니라고 했지만 내게 엄마를 헤아릴 여유가 있었다면 답장에 좀 더 성의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 저녁과, 그런 오후에, 나는 내 심장이 과속방지턱 위를 널뛰고 있음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