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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21. 2024

강풀 유니버스 연착륙 성공

드라마 '조명가게' 리뷰

'무빙'을 완주한 뒤, 디즈니+를 구독해지했던 구독자들이 관심 가질 작품이 왔다. '무빙' 원작 웹툰을 집필했던 강풀 작가의 또 다른 웹툰이 드라마화되었는데, 바로 '조명가게'다.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강풀 작가와 '무빙'으로 인연을 맺은 배우 김희원이 첫 연출작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첫 주에 공개된 네 편의 에피소드는 원작 웹툰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인물과 세계관을 소개하는 대신 표면적인 상황들을 계속 보여주고 있기 때문. 야심한 밤 버스정류장에서 캐리어를 한 쪽에 둔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지영(김설현)과 계속 기다리는 지영이 신경 쓰이는 현민(엄태구)부터 엄마 유희(이정은)의 전구 심부름 때문에 원영(주지훈)이 운영하는 조명가게를 매일 방문하는 현주(신은수), 중환자실 간호사 영지(박보영)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담는다.


큰 연관성 보이지 않는 인물들, 옴니버스식처럼 진행돼 단편 모음집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인물들 때문에 도시괴담을 보는 기분도 든다. 이들이 점프 스퀘어처럼 불시에 툭 튀어나와 정석 공포영화처럼 놀라게 만드는데, 강풀 작가의 웹툰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 스타일인 걸 단번에 캐치하며 이를 영상으로 잘 살려냈다고 호평할 것이다.


알쏭달쏭한 괴담물은 4회 중반을 넘어서부터 정체를 드러낸다. 파편처럼 흐트러진 이야기는 어두컴컴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조명가게와 연결되어 있고, 10명의 등장인물의 얽히고설킨 타래가 한 방향으로 가리킨다. 뒤이어 이들이 영지가 근무하는 중환실에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으로 교차하는 엔딩 연출을 통해 '조명가게'는 독특하고 오싹한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단번에 가슴 뭉클한 휴먼드라마로 장르 변환한다. 영지가 말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완성하는 빌드업이다.



초반부터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1, 2회에 엄청난 힘을 주며 시선을 끌만한 요소와 장치를 몰아넣는 요즘 드라마 문법들과 비교하자면, 전반부 내내 모호한 사건들의 연속을 배치한 '조명가게'의 구성 방식은 모험에 가깝다. 4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중도하차하는 시청자들도 생겨날 수 있어서다. 이에 공개 첫 주에 4회까지 한꺼번에 공개하는 방식을 선택한 디즈니+와 '조명가게' 제작진의 뚝심이 주효했다.


5, 6회에서는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누워 조명가게가 위치한 동네를 배회하게 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떡밥 회수에 나섬과 동시에 이들이 어떻게 의지로 버텨내는지를 따라가며 캐릭터의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룬다. 지영이 '슥' 소리를 내며 반복하는 바느질이나 선해(김민하)의 집에 잠겨 있는 방문의 불빛이 깜빡이는 등 생명줄을 붙잡는 이들의 의식을 웹툰 이미지처럼 구현해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등 보편적인 정서를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전달한다. 8회 중반에 이후에 깜짝 등장하는 쿠키영상은 '강풀 유니버스'를 만들려는 큰 그림을 제시해 기대감을 높였다.


'조명가게'가 용두용미로 끝낼 수 있었던 건 '신인 감독' 김희원의 공이 컸다. 원작 웹툰을 콘티 삼아 실사화하는 방향으로 힘을 주며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보다 이야기에 포커싱했다. 이에 맞춰 시종일관 어두컴컴하고 직선적인 화면에서 빛과 구도, 색채 대비 등을 적절히 활용해 배우들의 감정을 돋보이도록 연출했다. 영화 '미성년'으로 입봉한 배우 김윤석에 비견되는 디테일함을 느낄 수 있다.


'조명가게'에 출연한 배우들과 캐릭터 간 싱크로율도 매우 훌륭하다. 주지훈, 박보영을 비롯해 엄태구, 김민하, 신은수, 이정은, 배성우, 박혁권, 김선화, 김기해 등 출연진들 모두 웹툰을 찢고 나온 캐릭터처럼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돋보였던 배우는 이지영 캐릭터를 연기한 김설현이다. 4회까지 그는 전형적인 도시 괴담에 나올 것 같은 귀신처럼 섬뜩하고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그러다 지영이 농인인 점과 동시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반전이 드러나는 5, 6회부터 사랑하는 연인 현민을 살리려는 애절한 감정선을 끌어낸다. 특히 그의 바느질 행위를 힘차게 표현하는 김설현에게서 잔혹함과 애틋함이 보였고, 이는 '조명가게'의 원동력이 됐다. 김설현의 재발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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