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랑 Feb 09. 2023

잘 모르는 반가움

기억을 같이하는 잘 모르는 사람

 작년 봄에 떠났던 여행에서 만난 몇 명의 사람이 있다. 짧은 시간 알게 된 사이인지라 연락처를 물어보는 게 서로 신경 쓰일 것 같아 메일 주소를 물었다. 거절당할 것에 슬플 마음을 대비하고 물은 질문에 다들 반갑게 답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오며 가며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과 이메일을 차곡차곡 쌓아 돌아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번, 크리스마스 가까이 연말에 한번 안부를 물었다. 아무 때나 연락하는 것보다 아주 대단하지 않아도 적당히 마음먹고 쓰는 메일의 속도가 더 좋다. 드문드문 기억이 흐려질 때쯤 받은 인사가 어째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서. 그렇게 같은 햇볕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이 달라진 계절을 말하며 인사를 보냈다.


 연말을 맞이하여 떠난 여행 이야기, 배우기 위해 학교에 입학한 소식 등 다양한 근황이 그들의 속도에 맞춰 도착했다. 비록 메일이지만 오랜만인 사람들의 글에서 목소리와 얼굴이 떠오른다. 그중 에블린은 새해가 지나고 가장 마지막으로 답장이 왔다. 연말동안 긴 휴가를 다녀와 연락이 늦었다고 말하는 그는 거주지 주소를 알려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멋진 카드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글씨, 우표, 종이 내가 좋아하는 것의 종합체인 손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에 나는 당장 적어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몇 주 뒤 에블린과 주고받은 메일 내용이 조금 잊힐 때쯤 다시 편지가 도착했다. 우체국 도장이 꽝 박힌 사람의 손으로 배달된 종이 편지가. 하얀 면에 파란색 펜으로 적힌 에블린과 나의 이름에 마음이 크게 동하여 한참을 책장에 걸쳐 놓고 바라보았다. 이 편지가 그 나라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상상하면서.


 그와 나는 서로를 잘 모른다. 가늠할 수 있는 건 최소 열 살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 언어도 달라 뚝 뚝 끊기는 대화일지라도 우리는 그저 좋았더란다. 바다 바람을 맞고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손등으로 막으며 조금이라도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려는 우리의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다.

 이곳 반대편에 살고 있는 그이지만 그때의 기억으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게다가 손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라면 더욱.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매년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계절처럼 가끔씩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다시 쌓인다. 차곡차곡 잘 모르는 우리가 서로에게 쌓일 수 있도록 오늘 에블린에게 편지 잘 받았다고 말을 건네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돌아갈 시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