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의 오래된 취향
마이크와 스피커로 걸러 나오는 소리가 좋아 오래전 라디오를 가까이했다. 학교에서 보내는 지루한 저녁, 긴 머리 안으로 이어폰을 숨겨 웃음을 참으며 듣기도 하고 하루를 마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지나간 어제를 말하는 새벽 라디오를 듣기도 했다. 그중 새벽 라디오를 가장 좋아했는데, 깜깜한 방 안에 울리는 정갈한 목소리와 분위기가 지금으로 말하자면 ASMR 같이 느껴져 좋은 기분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
나는 식물과 같은 생활을 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눕는다. 그런 사람이 새벽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정말 큰 애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매번 라디오 1부가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었다. 오프닝을 겨우 듣고 라디오를 켜 둔 채로. 라디오를 좋아하지만 끝까지 들을 수 없는 몸이라니 서로 닿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 애틋하다.
성인이 되고 더욱 혹독해진 낮을 보내다 보니 라디오를 생각할 겨를 없이 침대로 몸이 고꾸라진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기를 한참이 지나자 길고 긴 출, 퇴근 시간의 지루함이 몸이 꼬이는 모양으로 나타난다. 비틀어진 모양을 바로 하기 위해 애틋한 새벽 라디오를 뒤로하고 선택한 것이 팟캐스트이다. 엉망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힘 있는 말하기를 듣고 있으니 침체되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올라오는 듯하여 또 한 번 오랜 시간 가까이 두고 있다.
여러 팟캐스트를 이동할 때, 정리 정돈할 때처럼 손과 발만 움직이고 있을 때면 항상 듣는다. 어쩌다 많은 시간을 팟캐스트와 함께하게 되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는 나와 많이 다르지 않다. 일하는 여성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듣고 있으면 직업은 다르지만 마음이 비슷하게 느껴져 힘을 얻을 때가 많다. 일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물입양봉사, 자동차 관리 방법, 운동 이야기 등 나의 삶에서 필수적으로 닿아 있는 부분도 함께하기 때문에 유용하기까지 하니 꽉 붙잡고 있을 수밖에.
목소리로만 내용을 전달하는 오디오 매체는 오로지 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영상처럼 시선을 분산시키는 화려함이 없어 상대적으로 간단해 보이는 점이 오히려 더 돋보인다.
색깔과 시끄러움이 가득 찬 화면을 보고 있으면 영화 ‘마틸다’에서 저녁 시간 불을 끄고 TV 앞에 앉아 화면 속 색깔을 얼굴로 담아내는 마틸다 부모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보는 것도 아닌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몸이 나빠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내 할 일을 하면서 적당히 즐거움도 있고 응원과 정보를 받을 수 있는 팟캐스트에 더 매료되는 듯하다.
끈덕지게 하는 일이 없어 덕질은 나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오랜 시간 오디오 매체에 관심을 두고 있는 모습에서 나는 목소리 덕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각자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매체.
어떤 사람들은 오디오 매체가 종이책과 함께 저물고 있고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주류의 기준을 숫자로 본다면 분명 오디오 매체는 주류가 아니다. 하지만 숫자로 세워진 기준에서 밀렸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목소리의 매력은 더 오래 이어질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소리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는데 어떻게 이 즐거움이 쉽게 없어질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