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곳이 아니라 살고 싶은 곳을 찾아서
오랜 준비 끝에 겨우 떠날 수 있었던 여행지에서 첫날은 얼떨떨함과 어색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익숙할 리 없는 나라에서, 장소에서 홀로 뚝 떨어진 기분은 ‘이제 뭐 하지’라는 더욱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뀌어 나에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바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 쉴 틈 없이 쏟아지자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랬던가. 첫날 숙소를 찾기 위해 같은 길을 몇 바퀴를 돌고 온몸이 땀으로 가득해졌을 때 겨우 찾을 수 있었던 그 시간이 결국은 흘러 지도 앱을 보지 않고도 동네를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길이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데 왜 숙소를 겨우 찾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그뿐이랴. 숙소를 중심으로 음식의 맛과 가게의 특성을 파악한 곳이 늘어나고, 노을이 질 때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날도 함께 늘어난다. 내가 한 발씩 지나간 만큼 흐리기만 했던 동네가 머릿속에 분명히 그려지고 그렇게 지역에 익숙해져 갔다.
결국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지려면 밖으로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장소를 지정하고 길을 걸으며 주변을 탐색하는 것. 한 번에 많지 않아도 조금씩 자주 범위를 넓혀 가다 보면 생각할 필요 없이 도착지를 향해 걷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낯선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는 삶을 살러 왔다. 지난 여행의 첫날처럼 마음이 한없이 불안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흔들리는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살아갈 지역을 걸음으로 익히기. 그리고 우리동네라고 부를 만큼 살고 싶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친구를 만드는 것.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한참 뒤까지 한 동네에서 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네를 떠나는 친구를 잡을 수 없어 혼자가 되었다. 즐겁기만 했던 지난 시간을 홀로 추억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외로웠다. 그 외로움에 밀려 다른 사람들처럼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 거리를 반복하다 익숙한 마음이 들었다. 익숙하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 자리에 멈춰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기분, 상황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면 정(情)이 자리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 사람이 없다면 정착하고 싶은 나의 정(情)은 또 어디론가 방황할 수밖에 없다. 욕심부리지 않고 나와 비슷한 생각이 몇몇 모인 곳에서 눈으로 한 번, 말로 한 번 인사를 주고받으면, 그때 천천히 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수 있게 된다. 그럼 나는 동생이 자주 하는 말, ‘다 살게 되어있어’처럼 바쁘게 움직이던 다리를 멈춰 땅에 단단히 묶어두면 된다.
아직은 어색한 이곳을 걸음으로 천천히 외운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길이, 사람이, 동물이 내일은 얼마나 익숙해질지 궁금하다. 아무도 모를 이 호기심으로 매일 실험을 한다. 그만두지 않으면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이 다른 계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매일 걸어가는 길이 내가 될 수 있도록, 내가 되는 길을 오래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