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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랑 May 14. 2023

가족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숫자를 채우기 위한 가족은 (나에게) 바라지 말 것

 가족의 재정의를 말한다는 것, 어디서도 흔히 다뤄지는 주제가 아니다 보니 더욱 필요한 논의다. 최근 가족이 무엇인지, 가족의 개념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원가족과 살고 있는 사람, 결혼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든 사람, 내가 나를 챙기는 1인 가족이 모여 각자의 생각을 나눴다. 환경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가족의 개념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그 속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비슷한 생각과 메모를 부르는 새로운 생각으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역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웃과 연결되기 위해 어쩌다 보니 다양한 동아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주제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과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어느 때보다 건강한 생각이 쑥 자란다.


 두 번은 안 될, 처음이 영원해야 할 말로 '인생에 한 번 있는 결혼식', '평생의 동반자'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가족에 있어서 실패는 절대 있어선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한껏 들어간 말들. 물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영원한 관계가 있다면 좋고 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부단히 애쓰지 않는다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 영원한 관계라는 것을, 관계가 영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혈연, 결혼으로 맺어진 것뿐 아니라 가치관, 장소로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서 가족 형태가 시시때때로 변할 수 있다. 가령 나의 경우, 밥을 같이 먹고 공간을 나눠 쓰는 관계를 가족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오랜 기간 지속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공간을 어떻게 정돈하는지, 어떤 이야기와 밥으로 우리를 챙길 것인지 고민하는 관계를 가족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개인이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족의 형태는 더욱 무궁무진할 테다. 의문만 가득한 '정상가족(정해진 정상가족은 없다)'과는 전혀 다른 가족 개념들 말이다.

 사실 가족의 개념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가족을 정의하는 것, 생각할수록 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소피 루이스가 쓴 '가족을 폐지하라'에서 '이제는 가족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인종, 혈통, 정체성보다 지식, 실천, 장소로 연결되는 가족을 근족의 의미로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넓은 의미의 가족 관계를 만든다면 가족 폐지는 자연스러운 수순일터. 또한 '정상가족'이라는 잘못된 표현을 부끄러워하고 가족에 집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불어 가족이 무조건 따뜻한 것으로만 이야기되지 않고 1인 가족으로 충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이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고 깨달아야 한다.


 동아리에서 나눈 가족 이야기의 끝은 '이 시간만큼은 우리도 가족이 될 수 있다'였다. 저마다의 삶을 살지만 근족의 의미로 또 다른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모두 반기는 분위기. 열 명 남짓 모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려왔던 모습을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하지만 생각하고 실현하는 것을 말하는 자리는 중요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니까. 그럼에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장은 언제나 반갑다.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공간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누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더욱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그 틈에서 같은 고민을 시작하는 나. 고민의 정도가 달라 부끄러운 날도 있지만 그래도 하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날이 점점 쌓이고 있으니 언젠가 지역에 폭삭 감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 서툴지만 그런 바람으로 공부를 이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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