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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랑 Jun 25. 2023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잠시 왔다 깊게 남은 우리들의 시간

 처음으로 친구들이 내가 사는 지역에 다녀간 지 2주가 지났다. 초대한 건 나인데 막상 온다고 하니 뭘 할지, 고민을 넘어 걱정이 됐다. 마침 손모내기 체험 행사가 있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웬걸 둘 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하겠다는 것. 당황했지만 알겠다고 말하고는 손모내기 행사에 대해 알아봤다. 어떤 준비물이 필요하고, 어떤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친구는 나보다 먼저 친환경 텃밭을 일군 경험이 있는데, 특히 손모내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모내기는 나의 관심사 밖이지만 친구가 좋아한다고 하니 물어보길 잘했다.

  

 6월 초이지만 햇살이 따갑다. 모내기 후 몸에 남을 근육통 걱정은 두 번째고 피부가 상하지 않도록 쿨토시, 모자, 손수건으로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곳을 열심히 가려본다. 하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논에서 몸을 허둥지둥하다 보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가린 곳에 틈이 생긴다. 물에 닿기까지 한 나의 몸에는 어느 때보다 빨리 해의 자국이 남는다. 농사를 하다 보면 피부가 타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다만 제일 먼저, 제일 빨리 타는 손가락이 눈에 띈다. 어떻게 하면 골고루 태울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 보지만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 농부가 일을 시작할 시간보다 훨씬 늦었지만 구름이 많은 덕에 더위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생각보다 괜찮은 날씨 덕분에 모내기에 속도가 붙는다. 하지만 체험 행사답게 한 시간이 조금 안되게 모내기가 진행됐다. 논의 절반 밖에 못한 것이 영 아쉬운 친구는 "하루 종일 하라면 했을 텐데"라고 반복해 말한다. 평소 모내기 체험을 쉽게 할 수 없기에 아쉬운 마음이 더욱 들지만 수확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렁이가 안 닿는 곳 없이 구석구석 던지며 활동을 마무리한다. 논에서 맨발로 나란히 서서 우렁이를 하늘 높이 던지는 친구와 나, 그저 그런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는 대신 쌀 한 톨의 무게를 느끼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사람이 귀한 시골에서 산책하며 별 것 아닌 것으로 웃고, 초등학교에 심어진 가장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시원한 바람을 사방으로 맞이하는 8각 정자에 누워 쉬어간다. 골목을 걸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함께 해주는 친구들. 얼마나 소중한가.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조건 없이 흔쾌히 함께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이 살아가기 좋은 곳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어느새 이주한 지 4개월이다. 익숙함과 어색함 그 어디쯤에 있는 지금, 꼭 필요한 말이다. 내가 선택한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불쑥 쏟아 오르는 질문이 마음을 흔들곤 하는데, 그 마음을 토닥여주는 고마운 이들 덕분에 씩씩하게 힘을 낸다.

 

 늘 혼자 가던 곳에 친구들이 다녀갔다. 일상에서 이곳저곳 친구들이 묻어 있는 것을 보니 하루동안 바쁘게 다녔다. 가장 많이 친구가 생각나는 곳은 아무래도 집. 꼭 필요한 물건만 있는 소박한 집을 좋아해 줬다. 책 읽기, 음악 듣기, 요리하기, 사색을 하기 좋은 곳으로. 친구들의 말을 들으니 나만의 공간을 만든 것이 참 뿌듯하다. 오며 가며 편히 들를 곳으로, 한 번쯤 생각나는 곳으로 많은 이들이 다녀갈 수 있도록 부지런히 가꿔야겠다. 그전에 지독하게 걸린 여름 감기를 떼어 내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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