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cherry Mar 31. 2024

감상기록 - #2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하마구치 류스케

 주말에 시간이 될 때마다 책 한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하곤 했는데, 이번주는 퇴근 후 집에서도 계속 업무를 했더니, 주말에도 영 머리가 꺼지지 않아서 강제로 머리를 끄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사전 정보 없이 제목이나 포스터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정적이며 문학적인 영화를 택했다. 

 지나치게 아무 정보 없이 무작정 택한 것인지, 더 전해야 할 얘기들이 많이 남은 것 같은 상태로 크레딧이 올라갔고, 몇 없는 관객들 가운데 "죽은거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약간의 혼란과 큰 여운이 밀려왔고, 관객들의 약간의 웅성거림에 이 혼돈이 나만의 것임은 아님에 잠시 안심했다. 


 전반적으로 자연 배경 묘사와 인물들에 대한 시선이 한편의 소설을 읽은 것처럼 상당히 상세하고 미학적이었으며, 느릿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아름다운 배경음악과 흐르던 음악이 의도적으로 끊기면서 나는 자연적인 소리들이 집중도를 높였다. 


 다만, 난무하는 메세지들과 극단적인 결말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진 현재의 나는, 다양한 종류의 예술에서 창작자가 의도적으로 전하는 메세지들이 심지어 난해해도, 진심으로 (때로는 멋으로라도) 이해해보려고 했던 어릴 때와는 달리,  이 영화가 열린 결말이라면 좀 더 따뜻하게 닫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사업을 강행하는 사람들과 주민들, 또는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연 사이에서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데 이 또한 이 영화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사슴이 피할테니 글램핑 사업 진행에는 문제가 없겠다던 인간의 입장"인 것인지 모르겠다. 


 대략적인 메시지는 전해졌지만, 그럼에도 잘못 이해했을까 하여 집에 돌아오는 길 다른 해석들을 보았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얘기이며, 혹자는 이 영화 속 자연은 신적 영역으로 표현이 되어있다고도 했다. 또한 상처를 준, 혹은 자연을 거스른 인간 앞에 보이는 자연(영화 속 사슴)의 폭력성은 인간이 맞이한 코로나와도 연관성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한 때 좋아했던, 그러나 냉소적인 분위기를 감당하기 어려워 멀어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생각난다. 산업화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자연이 도시 속에 다소 기괴하게 공존하고 그림 속 인물들은 혼자 있건 함께 있건 고독한 분위기를 뿜어내었다.


 감독의 결말에 온전히 공감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과 같은 기분이고,  꽤 오랜 여운과 생각할만한 거리를 남겨주었다. 스토리 속에서, 그리고 나의 일상 속에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과 매칭될만한 장면들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된다. 배경음악과 영상미, 꾸준히 보여지는 자연 경관과 일본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 그리고 찬찬히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스토리가 이 영화를 선택할 때 포스터에 대한 감상과 일치했고, 영화 감상 후 몇시간 지난 지금도 마음에 잔잔하게 남아있다.


작가의 이전글 감상기록 - #1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