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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cherry Apr 13. 2024

감상기록 - #4 (책)

휴식의 말들 (나를 채우는 비움의 기술) - 공백

 어깨와 목이 뻣뻣해지고, 납득이 완전하게 되지 않은 것들이 머릿속에 한가득인데 풀지 못한 것이 수개월 쌓이고 쌓이다가 소위 현타를 느끼고 퇴근한 어느 날, 마치 진통제를 찾듯이, 밀리의 서재에서 "휴식"을 검색했다. 우연한 발견은 힘이 되고 때로는 확 달아오르는 머리를 식히는데 도움이 된다.


  "휴식의 말들"은 저자가 휴식에 관한 100개의 문장들을 골라 쓴 100편의 글이다. 개인적으로 책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마음이 가는 문장들이 있으면 기록하고 생각들을 적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이 처럼 문장들에 대한 생각이 적힌 글들, 이를테면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나 성수선 "밑줄 긋는 여자"와 같은 류의 책들은 읽으면 "이 구절에서 작가는 이러한 마음이 들었구나,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데" 하며 마치 작가와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 감상할만한 따위의 것들 전체에서 마음에 남는 말들을 직접, 또는 우연히 찾는 과정을 즐기는 동시에, 종종 타자들의 시선으로 걸러낸 문장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마음이 가는 문장들을 한번 더 걸러본다.


 002 휴식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다.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같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 헨리포드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 대학부터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이 어쩌면 일이 전부인 듯 성실하게 일해온 이전 회사 동료와 만나서 비슷한 주제로 얘기했던 터이고 이 문장 만으로는 다소 표현이 과격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효율과 생선성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주 5일 40시간 근무제를 처음 도입한 사람이며 양질의 근무조건을 갖춰야 좋은 인재가 나온다고 믿었다는" 저자의 설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여졌다. 개인적으로는 워라밸보다는 "자발성"과 "자유도"에 가치를 두는 편인데, 이 가치들은 여유와 여력, 그리고 좋은 환경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믿는다. 지난 사회 경험들로 미루어볼 때 사회는 대부분 범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의 대부분은 시야가 한정적이며 단기적일 수밖에 없기에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005 나는 회복하는 느낌을 안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기분. - 김화진, 나주에 대하여 중침묵의 사자
006 나는 혼자 있을 수 있기를, 그것이 단지 기다림이 아니라 내게 가치 있기를 바란다 - 수전 손택, 다시 태어나다: 일기와 노트들
042 방법이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일상과 일상 사이에 숨구멍을 만들고 여기저기 다정한 자국을 내며 발견할 수 있는 비법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 내게는 그게 드라마인 것이다. - 오수경, 드라마의 말들

 나는 회복하는 느낌을 안다. 가장 치열했던 시간들, 수면시간 마저 줄여가며 일하는 와중에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기분이, 그리고 나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기분이 마치 휴식과도 같아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일했던 시간이었다. 나의 세계 중 큰 부분이었던 일에 있어서, 지인 없는 이직을 할 때에도 그곳에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항상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최근 읽어보려고 하는 책 중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백혜선"의 타이틀을 빌리면 나는 혼자 노는 것의 (feat. 좌절도) 스페셜리스트이다. 혼자 잘 놀고 휴식하고, 또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주말 혼자 있는 시간, 커피와 조금은 값비싼 디저트,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쓰면서 부리는 사치를 사랑한다. 그러나 요즈음 든 생각인데 오롯이 고독을 즐기고 충분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나 역시 그러한 마음이 드는 주변의 존재들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숨구멍, 주말에 부려보는 작은 사치
009 책은 늘 휴식이자 즐거움이 되어 주지만, 가끔은 나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책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작가 이레네 바예호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책을 읽는 경험의 일부"이며 "안도감보다는 안절부절못함이 훨씬 더 교육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종종 '불쾌한 책'이 주는 피로감과 언짢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진다. 불쾌한 책이 주는 철학적 딜레마에서 벗어나 좀 더 안전해지고 안락해지고 싶다. - 작가의 말

 책뿐 아니라, 영화, 노래 가사, 드라마, 심지어 사람들의 언어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기에 다름을 인정하지만, 그렇다면 저자가 해당 챕터 말미에 적었듯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곁에 두겠다. 이렇게 "편식쟁이"가 되어간다.

 또한 일부 작품들이 특정 그룹에 있는 존재들을 "타자화"하고 "납작하게" 그려냄에 대한 저자의 불편한 생각이 담겨 있었는데, 특히 저자의 생각보다도 "납작함"이라는 표현에 관심이 갔다. 당연한 구분들이 있겠지만, 그보다 인간은 더 다양하다고 생각하기에, 세대 간 구분, MBTI 등이 사람들을 그룹화하고 납작하게 규정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이다. 사람들의 언어 속에서도 편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업무에서 "개인화", "추천"이 키워드로 들어갈 때마다 결과적인 기획은 개인화보다는 그룹화에 가까운 방향일 때가 많다. 분명 그룹의 특성은 존재하고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개인화"라는 말 대신, 그룹화가 적당할 것 같다. 더불어 인간의 독립적인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하면 편견이나 그룹 간의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


020 명심해.
꽃밭에서는 절대로 돈이 나오지 않아. - 정지음, 언러키 스타트업
040 "놀기만 하니까 왜 이렇게 좋을까요?" "인간이 일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니까 그렇죠." - 김신지, 여행의 장면

 그러나 돈이 나오는 곳도 충분히 꽃밭이길, 그리고 내가 앞으로 그 꽃밭을 찾을 수 있길 희망한다.

 

036 애당초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정리하는 것일까? 결국 방이든 물건이든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정리를 한다.
051 그렇게 바람이 차가워질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이유는 없다. 너는 그저 바다를 보러 온 것이다. - 오사다 히로시, 심호흡의 필요
069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위로부터 강렬한 즐거움을 얻었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보는 것'이 매우 긍정적인 행위이며, 늘 신중하게 그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즐거움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응시와 관조, 멈춤과 경탄이 교차하는 옥탑 위에서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한아해지는 중이다.  - 작가의 말

 정리와 "강이나 사람 등을 바라보며 멍 때림"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마다 하는 일이다. 인스타 감성으로 하얀색이 유행인 지금보다 훨씬 전부터 개인적인 취향이 하얀색이나 파스텔톤이고, 물건들은 각자의 자리에 숨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쉬면서 혼자 제주 여행을 갔을 때, 일정 없이 해변에 가서 하늘색 파스텔톤을 띠고 넘실대던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027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 박찬욱 외, 헤어질 결심 각본
060 안전하게 항해하려면 여러분의 기관을 잘 통제해서 '어제와 내일을 차단하는 오늘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물을 밀어내듯 오늘의 기분을 내일로 넘기지 않기 위해, 기관을 잘 통제해서 '어제와 내일을 차단하는 오늘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마무리할 때 머릿속에서 하루동안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을 리스트업 하고,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는 상상을 한다.


048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 가며 연주해야만 한다.
090 견뎌 내지 못할 때까지 버티는 건 멍청한 짓이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에 스스로 쉼표를 매겨야 한다는 말처럼, 견뎌 내지 못할 때까지 버티는 건 멍청한 짓이라는 말처럼, 쉼표 없이 질주하는 대신 건강하고 여유 있게 살고 싶다.


 저자가 심사숙고하여 고른 문장이기에, 이외에도 많은 문장들과 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휴식"이라는 키워드로 작정하고 검색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각 문장들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 마지막 문장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100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 양희은, 그러라 그래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이 인간관계에서 기인하며 우리는 타인들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쉼은 스트레스의 대상이 되는 관계와 나를 분리하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다. "그러라 그래"하며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 "타인들의 요구나 희망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하고 자각할 때마다 한번 숨을 고르며 나를 지키는 선에서 할 것, 그것이 요즘 하는 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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