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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씨 Aug 17. 2021

떨어지고 더 좋아지는 회사

면접의 디테일을 갖춘 회사

취업을 준비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단연 막막함일 것이다.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의 막막함이 있을 텐데

진로를 정하지 못해 막막한 게 한 축일 테고, 

진로를 정한 뒤 회사에 지원하지만 서류, 면접에서 떨어지며 나아질 방향을 모를 때가 나머지 한쪽일 것이다.

특히, 공들여 지원한 곳에서 영문도 모른 채 떨어질 때의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합격이 아니고서야 면접에 대한 경험이 좋긴 쉽지 않다.

나 역시 몇 번의 면접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첫 면접이었던 갤러리에서는 면접관께서 내 면전에서 담배를 피우며 면접을 진행하셨다. 열심히 쓴 이력서와 자소서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외국 갤러리는 큐레이터 시작할 때 무급인 것 아시죠? 우리 갤러리는 월 150을 줘요. 내가 조금 적게 주는 건가 생각도 해봤는데 다른 지원자들은 150이라니까 엄청 좋아하던데? 명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


마케터로서 직무를 정한 이후, 기대를 안고 첫 면접에 임했던 스타트업에서는, 

현재 회사의 브랜딩 전략이 퍼포먼스 쪽에 중점을 더 두고 있냐는 나의 질문에

"퍼포먼스와 브랜딩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여기서 강의해주지 않아도 지원자께서 충분히 공부하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더 공부를 해보는 게 좋겠다."라는 다소 공격적인(?)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고 나쁜 일만 일어나리라는 법은 없지.


스타트업 면접을 본 다음날 면접을 봤던 기업이 있었다. 모두가 잘 아는, 배달시켜먹는 그 회사였다.

전날 스타트업 면접에 대한 기억으로 잔뜩 웅크려져 있던 탓인지, 엄청 긴장을 했다.

면접관께서 면접을 시작하기 전 긴장을 덜어주시려 "점심에는 뭐 드셨어요?"라고 물어봐주셨는데, 뭘 먹었는지 아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우려와는 다르게 면접은 매우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지원자의 경험에 집중해 질문을 주셨고, 제출한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도 유심히, 친절하게 물어봐주셨다.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져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의 역량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게 새로워서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곳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면접을 마치며 이런 말도 붙이셨다. 

"면접의 과정 중에 혹시 지원자님께 실례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말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회사에 대한 호감을 더 높이게 되는 섬세한 포인트였다. 면접을 봐주셨던 직원들에게서 뿜어져 나왔던 선하고 일 잘할 것 같은 아우라는 그 기업에 대한 애정을 더 갖게 만들어주었다. 해당 면접에서는 불합격했지만, 이후 함께 일하게 되길 소망하며 꾸준히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최근 면접을 본 스타트업에서는 앞으로의 취업준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지원자님의 이런 이런 경험들이 저희 회사에서 진행하는 이런 부분과 잘 맞는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면접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는 말씀으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무려 두 시간을 면접을 봤는데, 한시간 가량이 회사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시간이었다. 충분히 시간을 주시며 어떤 질문이든 좋으니 천천히 생각해보고 질문해달라고 하셨다.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서 많은 질문을 하다 보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용기 있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면접을 마치는 마지막 질문에서 "저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마케터로 저를 포지셔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겠다고 준비를 해왔는데, 면접을 통해서 제가 받은 질문들은 제작 역량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회사에 기여하고자 했던 부분들이 잘 전달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라고 여쭤보았다. 


"그렇게 질문하시니, 대답을 해드리자면.."으로 시작하여 면접 과정 중 좋게 느껴졌던 부분, 어떤 맥락들이 궁금했는지 등을 말씀해주셨고, 나의 객관적인 강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면접을 보고 일주일 후에 이메일로 결과를 받아보았고, 아쉽게도 불합격이었다. 아쉬운 와중에 참 감사한 부분이 있었는데, 나의 어떤 부분이 회사 입장에서 좋은 점으로 작용했고, 나의 어떤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았는지를 코멘트를 달아주셨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보여주신 역량과 학습과 관련된 태도는 높게 평가되었으나, 마케터 관련 경험이 저희가 기대하는 바와 달라 채용 부적합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라는 문구에 이어서 구체적으로 나의 어떤 강점과 태도를 높이 평가했는지, 회사에서 집중하는 마케팅 경험이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말씀해주셨다. 회사의 단계에서 원하는 마케팅 경험이 없어서 떨어진 것이니 아쉽지만, 한편으론 아쉬울 게 없었다. 적어도 내가 가진 경험들은 높이 평가를 받았으니깐. 또 언급된 마케팅 경험은 이제 채우면 되니깐. 


이메일의 말미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지원 과정에서 좋았던 점 또는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향후 채용 과정에 반영해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보통의 경우, 불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으면 거기서 끝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지원자'도' 존중하며 채용 전체의 과정도 브랜딩하는 역량이 회사를 더 높이 평가하게 했다. 당연히 채용의 과정 중 내가 느꼈던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을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장문의 답장으로 보냈다.  


회사에는 붙지 못했지만

좌절보다는 다음 단계로의 준비로 빠르게 이동하고 싶다는 용기가 되는 면접이었다.

그리고 회사의 다음을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면접이라는 기회를 통해 지원자를 팬으로 만들 수 있는 기업이라면, 몇 번이고 지원하고 떨어져도 좋을 것 같다.

아니다. 그래도 몇 번이고는 아니고, 앞으로 딱 몇 번까지만 떨어지면 좋을 것 같다.

몇 번의 피드백을 거쳐, 이제는 회사의 팬이 아닌 성숙한 동료로 일하게 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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