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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l 09. 2022

#7 작작 좀 하세요

북카페 피터캣, 8년의 기록

#7 작작 좀 하세요 


지금은 하루 8시간 일하고 매주 하루 씩 꼬박 꼬박 쉬고 있지만, 오픈 초기에는 하루 12시간 일하고 휴일은 한달에 하루였다.  


가게 준비를 핑계로 반년이상 느긋한 시간을 가졌으니 체력에 여유가 있기도 했고, 또 가능한 오래 문을 열어 놓고 매출이 높은 요일이나 시간대를 직접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거기에 초심자의 의욕과, 자신의 선택에 도피가 아닌 더 적극적인 도전이라는 명분을 얹고 싶은 심리적 요인에, 열심히 일하면 우주의기운이 어깨라도 슬쩍 만져주지 않을까 하는 주술적인 바램도 더해졌던 것 같다. 


결국 그 때문에 생전 처음 탈진이라는 걸 경험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뭘 해야 할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을 때는 그저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게다가, 그때는 12시간의 영업이 끝난 이후에도 매일 두 시간씩 청소라는 걸 했다. 밤 11시에 영업이 끝나면 커피 머신 청소하고, 주방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한쪽에 테이블 몰아 놓고 바닥 쓸고, 닦고 하면 새벽 한시였다. 손님이 적어서 화장실을 사용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날은 오기로 더 박박 닦았던것 같다.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는 자책감이 그런 행동으로 씻기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하루를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가 말한 것처럼,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운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인간으로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고, 그땐 그게 청소였다. 


카뮈의 문장들을 암송하며 대걸레로 바닥을 닦다 보면 입구 유리문 앞에는 삼삼오오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매장 안 한 인간의 실존을 지켜보며 알 수 없는대화를 나누곤 했다. 주로 근처 매장 사장님 들이었는데, 아마도 한겨울 비수기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나 보다. 


그분들은 주로 ‘손님도 없는데’, 라는 주어는 예의상 생략한채 ‘밤마다 뭘 그리 박박 닦고 있냐’는 말을 건넸을 것이고,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라고 답했을 것이다. 대화는 아마도 ‘30년된 집들도 한가한 계절인데, 손님은 날씨가 풀리면 알아서 찾아올 테니 작작 좀 하세요’는 말로 이어졌을 것이고, 그리고 30년 성공비결이 아이템이 좋아서, 마케팅을 잘해서, 운이 좋아서, 사장이 잘 생겨서 같은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손으로 직접 고른 가장 좋은 고기와 채소만을 썼기 때문이라는, 평범하지만 가장 소중한 조언을 건넸을 것이고, 당신도 지금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겠지만 그것만은 잊지 말라고, 질 떨어지는 재료로 좋은 맛을 내는 비법 같은 건 없다고, 가장 좋은 재료를 쓰면 그 맛이 나는 것이고, 그리고 손님들은 그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말을 건네며 내 지친 어깨를 토닥거렸을 것이다. 


잊지 못할 대화를 나눈 그날 이후 피터캣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보다 구체화 되었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과, 아쉽지만 깔끔하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서서히 구분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킬 것은 지키고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선택들이 이어지고 거기에 시간이 더해진다면 뭔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순대국 맛집이 있고, 설렁탕 맛집이 있지만, 둘 다 맛있는 집은 없는 것처럼. 


시간이 꽤 흘렀고, 이 세계에도 몇 차례 유행이 지나갔다. 로스터리 카페로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고, 그 발길은 베이커리 카페로 그리고 디저트 카페로 옮겨 갔다. 그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도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견뎌왔다. 물론 트렌드를 모른 체한다는 것이 결코 좋은 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는 각종 원두를 테스트하고, 또 누군가는 밤새워 새로운 메뉴를 개발 할 때, 나는 유튜브에 책 소개 영상을 올리고, 영업 외 시간에 온라인 북클럽들을 운영하는 선택을 한 것 뿐이다. 선택 이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기의 품질일 것이다.


지금도 오래된 단골들과 8년 전 겨울 밤의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누곤 한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한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좋게 남아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지금은 할 일을 많이 찾아서 청소에 그렇게 집중하지는않는다’고 농담 속에 변명을 섞어 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답하며 웃는다.






경의선 책거리 문학 카페/책방 피터캣의  8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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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 @petercat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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