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변신 피터캣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일본 대학가는 반정부투쟁인 전공투로 인해 꽤나 시끄러웠다. 학생들은 대학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고,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젊은 날의 하루키는 초기에는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친구에게 도시락을 전해주기 위해 점거중인 학교를 찾았던 한 학생이 프락치로 몰려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후 양측 모두에 실망하고 일종의 개인적인 중립지대로 물러나게 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결심한 하루키는 도쿄 변두리의 한 다세대 주택에 자리를 잡고 주로 음반매장이나 프렌치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게 되는데, 이때 덩치가 크고 몸에 줄무늬가 있는 수컷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고양이는 해가 지면 하루키의 집에 들어와 먹이를 먹고 밤을 보냈고, 날이 밝으면 자기만의 일상을 위해 집을 나서곤 했는데, 하루키는 그 고양이에게 피터 캣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왜 고양이의 이름을 미미나 코코가 아닌 피터 캣이라고 지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유연하게 담벼락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마치 동화 속 피터 팬을 닮아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이런 하루키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결혼 때문이었다. 하루키는 스물 두 살에 '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미도리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요코 여사와 결혼하게 되었고, 두 사람 모두 가진 게 없어서 당시 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하던 처가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고양이가 문제였다. 이불이 더러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장인은 고양이를 반대했지만, 정든 피터와 헤어질 수 없었던 하루키는 장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고양이와 함께 처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한 손에는 옷가방을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고양이를 안고 처가로 향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막상 피터를 만난 장인은 고양이를 꽤나 예뻐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낭만적인 얘기는 계속되지 않았다. 변두리 들판에서 자유롭게 뛰어 다니던 고양이가 좁은 시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 마음 내키는 대로 생선을 물어 가는 피터에 대해 주변 상인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결국 하루키는 피터를 시골에 있는 지인에게 보내기로 결심하지만, 시골에 도착한 고양이는 어느 날 집을 나선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키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기 보다는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는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들었는데, 교과서 안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숨겨서 세 번이나 읽을 정도였다. 그렇게 그의 꿈은 자연스럽게 문학을 향했다. 자신이 정말 작가가 될지, 만약 작가가 되면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그 모든 것들이 막연했지만, 그렇다고 문학 말고 다른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역시 공부보다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주로 읽었던 재수 생활을 거쳐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절이었다.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 만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 하루키는 작가가 되는 대신 하루 종일 재즈를 들으며 돈도 벌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임대료가 저렴한 지하에 가게를 열고, 좋은 음악을 틀고, 칵테일을 만들고, 또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배운 실력으로 간단한 요리까지 내놓을 수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문을 연 재즈 바 이름은 피터 캣.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담긴 이름이었다.
피터 캣 시절 하루키는 친절한 주인은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음악이 좋고 음식 맛도 좋아서 단골이 꾸준히 늘었고, 덕분에 가게도 지하에서 2층 더 넓은 공간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저 유명한 야구장 일화가 등장하는데, 점심 장사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야구장에 들렸을 때, 마침 타석에 들어선 외국인 타자가 2루타를 치는 순간 문득 글을 써보자 결심했다는 얘기.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피터 캣을 운영하는 7년 동안 하루키 내부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고, 그것들이 조금씩 축적되어 가던 중 외국인 타자가 안타를 치는 순간 딸깍 하고 스위치가 켜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루키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살아 있었고, 그럴 때마다 도스토예프스키라는 벽에 부딪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중요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다르게 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던 당시 자신만의 쉽고 간결한 문체를 찾기 위해 먼저 영어로 쓰고 그것을 거꾸로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일화는 그 깨달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얻기 위해 피터 캣이라는 공간과 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면, 그것은 그렇게 아까운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루키는 피터 캣을 7년 동안 운영했다. 그동안 첫 장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신인상을 수상했고, 두번째 장편 '1974년의 핀볼'과 첫 단편집 '중국행 슬로보트'까지 발표하면서 마침내 한창 잘 나가던 피터 캣을 접고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연히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덜컥 무모한 결정을 내리지 말고, 가게는 믿을만한 직원에게 맡기거나 하면서 안전장치를 두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고, 하루키 또한 머리로는 그들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시작도 하기 전에 도망칠 구멍부터 준비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결국 1974년 일본 도쿄에 등장했던 피터 캣은 7년 만에 영원히 사라지고 그 후로 40년 넘게 활동할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만 남게 되었다.
소설 '마의 산'에서 작가 토마스 만은 시간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듯 공간 또한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적고 있다. '마의 산'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스위스 다보스의 해발 1,500미터 산중에 위치한 베르크호프 요양원에서 7년을 보내는 동안 내면으로부터의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마의 산 7년과 피터 캣 7년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피터 캣 또한 베르크호프 요양원처럼 하루키의 내면으로부터 변화를 이끌어 내었고, 결국 7년이 지난 후 하루키는 그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니. 마치 잉크 한방울이 투명한 용기에 담긴 물 전체를 파랗게 물들이듯이 공간도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렇다면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저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장소가 아니라, 매일 매일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에 닿자, 마침내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시인이 되고, 뮤지션이 되고 싶은 사람이 뮤지션이 되고, 자기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이 되어 돌아가는 작은 공간 하나가 떠올랐고, 그 생각은 '피터 캣'을 '피터캣'으로 붙여 쓰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피터캣 10년 살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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