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변신 피터캣
서른 아홉 여름,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지리산에 올랐다. 목요일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후 옷을 갈아입고, 미리 준비해 놓은 배낭을 메고 용산역에 도착한 뒤 22:30분쯤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밤새 달려 구례구역에 도착하면 04시경. 역에서 택시를 타고 노고단에 올라 아침을 먹고 나면 2박 3일의 지리산 종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종주 둘째 날 저녁, 해발 1,500미터에 위치한 장터목 대피소에서 쏟아지는 별빛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기억을 잊을 수 없지만, 등산에 관심도 없던 내가 지리산 종주에 나선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서른 아홉이면 인생의 반환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나온 반생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큰일이다 싶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마냥 이대로 있다가는 나머지 반생도 마찬가지가 될 텐데, 그래서 나머지 반 만이라도 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고, 그런 실존적 질문에 무심한듯, 여유있게 답해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산신령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리산이었다. 하루는 몰라도 2박 3일이면 잠깐의 면담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정말 아름다운 경험을 했지만 아쉽게도 산신령을 만나지는 못했다. 바쁜가 보다, 하고 내려와서 일요일 오후 다시 서울로 향했고, 다음날부터 지난주와 다름 없는 일상을 시작했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찾아간 성의도 몰라주고.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꿈에 그(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을 왜 찾았는지 물었고, 나는 부랴부랴 준비했던 질문을 꺼냈고, 그것에 대해 그(그녀)는 "너는 지금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그것은 이 세상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너만의 삶이었고, 삶이란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너는 타인과 비교되는 삶이 아니라 오직 네게 주어진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곤 볼 일이 있는지 총총 사라져버렸다.
사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것은 뭔가 대단하고 특별한 삶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으니 그 길을 계속 가도 된다는 누군가의 응원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길을 가는데 불필요한 것, 그리고 이제는 오직 미련으로만 남은 것들은 모두 털어버려야겠지.
90의 연세에도 눈과 귀와 입이 모두 맑았던 옆집 개성할머니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신촌 땡땡거리는 전쟁 당시 경의선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했던 사람들이 머물렀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잠시 머물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던 피난민들은 철로 주변에 움막을 짓고 옹기종기 모여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그렇게 70년이 지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자리 잡은 장소가 일종의 국유지이다 보니 마음대로 건물을 짓거나 고치거나 할 수 없었다는 것. 결국 서울 전체가 아파트로 뒤덮이는 동안에도 개발을 하지 못해서 역설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몇 안되는 골목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땡땡거리에 대학생이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들기 시작한 것은 약 50년전 부터. 허름하지만 대신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고, 그들을 위한 상점들도 하나씩 생겨났다. 천막이나 가건물에 앉아 열차가 지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잔 할 수 있는 저렴하고 맛있는 술집들은 또다른 젊은이들을 불러들였고, 열차가 지날 때 건널목 차단기에서 울리는 땡 땡 하는 소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땡땡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갈매기살과 된장찌개에 비빈 밥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그때 진로 소주는 25도 였고, 그걸 각자 몇 병씩이나 마시고는 알 수 없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곤 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이 되지 않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그 많았던 말과 친구들 모두 사라져버렸지만 취한 눈으로 뚫어지게 바라보던 열차의 모습은 왠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저걸 타면 신의주에 가는 건가? 아니 서울역으로 가는 거지, 너 취했냐?
그래서 소극장 산울림에 갈 때는 당연히 땡땡거리를 통과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좁은 골목에 늘어선 오래된 술집들 사이를 걷다가, 숨어있는 헌책방에서 두세권의 책을 골라서 카페에 앉아 읽다 보면 현재의 내 자신위로 막연했던 과거의 내가 내려 앉는 느낌이 들곤 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되길 원했던 나인지,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진 것인지, 그것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종의 어른의 의무 같은 것인지, 아니면 나이와 상관 없이 떨쳐버려야 하는 것인지.
그날도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연극이 한 시간쯤 남았을 무렵, 책을 덮고 고개를 들어 골목을 걷는 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멋을 부린 사람, 화장기 없는 얼굴에 큼직한 백 팩을 짊어진 친구, 다양한 표정의 친구들이 주말 오후의 골목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 사이에 놓이게 될 때에만 풀어지는 긴장이 있다. 이 골목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참 많구나. 많구나?
카페라고 하면 딱 연상되는 색깔이 있다. 브라운. 나무 바닥, 나무 테이블, 나무 의자, 나무 벽. 일본 사람들도 그것에 슬슬 질리기 시작했는지 당시 도쿄에는 하얀색 카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이 오래된 골목에 모던한 분위기의 흰색 카페가 하나 들어서면 꽤나 잘 어울리겠는데? 손님을 기분 좋게 하려는 건지, 아니면 다 마셨으면 어서 나가라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는 뻔한 과일 TOP100 음악이 아니라 칙칙하지 않은 클래식과 재즈가 흘러 나오고, 고급 원두로 내린 진한 커피와 서가를 가득 채운 책들. 그리고 큼직한 유리문과 그 문이 열릴 때마다 조그맣게 울리는 풍경의 땡 땡 소리. 마침내 생각난 헤밍웨이의 소설 속 문장.
사람은 누구나 밤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감싸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 필요한 거야
북카페 피터캣은 2014년 12월 12일 땡땡거리에 문을 열었다. 그해 여름에는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 출간되었고, 나는 가족과 직장을 떠나서 조용한 골목에 '기노'라는 이름의 작은 술집을 연 한 남자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술집을 연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그렇게 그동안 제대로 듣지 못했던 음악을 듣고, 역시 멀어졌던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어린 암컷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와 가게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뒤를 이어 손님들이 찾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겨울이 되면서 골목의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옷깃을 여민 채 오가는 행인들 또한 새로 생긴 카페를 힐끔거릴 뿐 크고 묵직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한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방금 빠져나온 세계와 새로 만나게 될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 잘해왔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아쉽지만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아마도 나는 친절한 카페 주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지 못하게 될까. 그(그녀)가 말해준 것처럼 계속해서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면,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가게를 열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쌓일까 싶어 빗자루를 들고 나갔다가 조용히 눈을 맞고 있는 가게와 눈이 마주쳤다. 앞으로도 너는 결코 친절한 주인은 되지 못하겠지, 하지만 모두에게 젠틀한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겠지.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피터캣 10년 살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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