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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Oct 23. 2018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서양미술사 - 곰브리치

8. 서양미술사 – 곰브리치

 

우리의 목표는 이 책을 단순한 명화 모음집이 아니라 역사책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 유명한 책을 읽는 목적은 꽤 다양한 것 같다. 우선 미술 전공자에게는 미술사 기초 지식을 쌓기 위한 필독서가 될 것이고,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유서 깊은 미술관들을 보다 진지하게 감상하고 또 그를 통해 여행의 인상과 추억의 깊이를 더 하기 위한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는 미술은 또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한번쯤 알아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아마도)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선사 시대 동굴 벽화를 제외한다면, 이 책은 대략 5천년 정도의 미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기간을 크게 나눠보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같은 고대 미술과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미술, 그리고 종교가 중심이 되었던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 미술이다. 


긴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초보자가 알아듣기 힘든 전문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끝까지 쉽게 풀어내고자 하는 곰브리치의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특히 초반 고대 미술 이야기는 낯설고, 길고, 지루하다. 교과서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내용이다. 게다가 미술은 곧 회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회화는 전부 사라지고 남겨진 건축과 몇 조각의 조각만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것은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큰 마음 먹고 이 작품에 도전한 이들이 가장 많이 포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건 어떨까. 네 번째 볼 때였는데, 문득 메소포타미아인들의 부조가 눈에 들어왔다. 메소포타미아왕이 전쟁 승리를 기념해 패배한 부족과 빼앗은 전리품들을 조각으로 새겨놓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사진 속 부조를 한참 쳐다보다가 마침내 이유를 깨닫고 혼자 한참 웃었다.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이 조각은 기원전 2,270년경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300년 전쯤에 제작된 것인데, 그러니까 곰과 호랑이가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사람이 되려던 무렵 살았던 사람들의 조각 솜씨가, 그러니까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좋았던 것이다. 



앞부분은 그렇게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진지하게 말하자면,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간과 문명은 얼마나 발전했으며,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마치 우리가 엄청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끼는 평소의 착각들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돌아보면서 말이다. 역사가들이 말하는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말이 앞으로도 영원히 유효한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서기 311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며 중세가 시작되었다. 역사상 가장 재미없는 천 년이 시작된 것이다. 그 긴 기간 동안 다루어졌던 미술의 주제는 (과장해서 말하자면) 통틀어 열 가지도 되지 않을 것 같다. 예수 탄생, 수태 고지, 예수의 삶, 예수의 죽음, 아담과 이브와 뱀, 쫓겨나는 아담, 천지창조 그리고?


이슬람 쪽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예술의 주제를 인위적인 방식으로 통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조금 시끄럽더라도 개성과 다양성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장면들이다. 물론 이런 평가는 편견에 사로잡힌 나 같은 사람의 것이고, 곰브리치는 역시 다르다. 그는 한정된 소재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혼을 타고난 이들이 그 한정된 주제 안에서 그들의 예술혼을 어떤 방식과 노력으로 표현하였으며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어떻게 미술을 발전시켜 왔는지 친절하고 끈기 있게 설명한다. 신의 영광을 더 감동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노력 속에 숨겨진 예술의 영광에 대한 이야기들을.


중세 이야기가 끝나면 적어도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등장한다. 1485년 제작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 소재 때문이다. 드디어 미술이 기독교에서 벗어나 그리스 신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르네상스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라는 말에는 ‘다시 태어난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위대했던 헬레니즘 예술의 부활, 그것이 르네상스다. 



르네상스까지 오는데 성공했다면 더 이상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걱정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를 비롯 우리가 아는 미술가들의 이름이 쉴 새 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곰브리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그리고 다시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이 작품의 또 다른 장점이 빛을 발한다. 수록된 모든 작품이 현재 어떤 장소에 소장되어 있는지를 전부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며 자유롭게 여행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 피렌체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작품 리스트를 작성하며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기도 하고, 그 여행은 어느새 파리나 런던, 뉴욕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마도 이 여행은 1890년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까지 계속될 텐데, 고흐와 고갱 그리고 세잔까지, 세 명의 위대한 화가에 대한 곰브리치의 무한한 애정이 담긴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두껍고 무겁고 낯선 이 작품을 지루함을 참아가며 끝까지 읽어낸 보람을 아마 만 배쯤은 보상받고도 남은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축하는 아직 이르다. 현대 미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피카소나 칸딘스키,잭슨 폴록 등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곰브리치의 글이 매우 신중해짐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역사적 평가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작품에 대해 개인의 의견을 내세우기 조심스러운 것이다. 끝까지 신중함과 객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작가의 자세가 감동으로 다가오며, 왜 이 작품이 반 세기 넘게 전 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 작품을 꽤 여러 번 읽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림을 감상하는 눈이 확 떠진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술사에 대해서는 한참이나 떠들 수 있을지 몰라도 막상 그림 앞에 서면 그림이 하는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슬픈 예감이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작품만큼은 읽고 또 읽고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보다는 쇼펜하우어의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천재의 노동은 음악, 철학, 회화, 혹은 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용도나 이익과는 무관하다. 무용하고 무익하다는 것이 천재의 노동의 특징 중 하나로서, 이 점이 바로 그것의 고귀함의 징표이다. 다른 모든 인간 노동은 우리의 존재의 유지와 위안을 위해서만 존재하나, 여기에서 논하는 노동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것 자체를 위해 존재하며, 이런 점에서 존재의 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가슴은 이것을 향유하며 기뻐하는데, 왜냐하면 이때 우리는 필요와 욕구의 저 둔중한 세속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중에서





https://youtu.be/dtsCpCUnC6Q



https://youtu.be/Ckl3Mrebr4E


https://youtu.be/M4R3waar_P4





홍대와 신촌사이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중입니다. 피터캣은 문학, 인문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북카페 운영기와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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