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지 않는 책을 내려놓을 용기
가게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책 좋아하시나 봐요?' 이다.
벽 선반에 쌓아 올려둔 책들 덕분인데 그 질문을 한 사람들 중 절반은 자신의 독서 취향과 비슷한 나의 책 목록을 반가워하고 절반은 숙제를 미루다 들킨 아이같은 표정으로
'나도 책 좀 읽어야하는데......'
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후자의 경우 처럼 '독서'라는 단어의 무게에 눌려 책읽기를 숙제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그들의 마음 속 높은 곳에 올려 둔 '독서'를 끌어내려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놓아주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곤 한다.
책에 씌워진 실체없는 권위와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한 꺼풀씩 벗겨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랄까.
한 달에 몇 권, 일 년에 몇 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권장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영화나 미술작품, 음악, 드라마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계를 두지 않으면서 유독 책에 대해서만 그런 기준을 두어 읽지 않았다는 죄책감 혹은 많이 읽었다는 우월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과연 독서를 권하는 좋은 방법일까.
나는 그런 죄책감과 우월감이 '진짜 독서'를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읽히지 않는 권장도서를 끝까지 부여잡고 책읽기는 괴롭다는 것을 확인 받거나, 한 달에 몇 십 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채우기 위해 그저 '글자'를 읽어 내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 처럼 말이다.
독서는 숙제가 아니라 유희다.
영화는 영화만이 음악은 음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것 처럼 책은 책만이 줄 수 있는 기쁨과 위로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없는 영화를 중간에 멈추거나 듣기 싫은 음악을 끄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유독 책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읽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이것이 '책=고귀한 것' 이라는 낭만적 환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책은 고귀하다.
영화,음악,미술,드라마,예능이 고귀한 것
만큼의 무게로 고귀하다.
정서를 안고 있는 껍질의 형태가
'책'이기 때문에 고귀한 것이 아니고 그 속의 내용물의 귀함이 가지는 무게 만큼, 그것이 나에게 주는 울림 만큼 고귀하다.
그것이 책이라는 이유로 더 무거울 필요는 없다. 때로 우리가 무한도전을 보면서 어떠한 예술작품을 볼 때 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 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책읽기를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 책은 과감하게 덮으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그저 재미없는 예능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죄책감 없이 덮으면 된다.
다만, 어쩌다 본 예능이 재미없다고 모든 프로그램을 보지않으리라 다짐하지 않듯이 지금 덮은 책이 감흥이 없다고 해서 독서 자체를 포기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을 찾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인생의 한 부분을 흔들 만큼의 강렬한 교감을 주는 책을 분명히 만나게 될 것 이니까.
아래의 글은 작가 김연수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쓴 글이다.
인생의 어떤 순간, 우연히 펼친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강렬한 변화를 아름답게 표현한 여섯 문단을 함께 읽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담아 왔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책의 무게가 좀 더 가벼워 지기를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읽기의 기쁨을 경험하기를 그리고 미묘하게 혹은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이 그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본다.
김연수 작가의 데미안 서평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6&contents_id=5087